썩은 어금니 한 개가 3,740만 원에 팔렸다. 2011년 영국의 한 경매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실 썩은 어금니는 그 기능적 유용성은 차치하고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특별한 의미가 부여됨에 따라 가치가 급등하게 된 것이다.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이라는 존재감 때문이었다.
‘내 어금니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치과 의자에 반쯤 불편하게 누워 생뚱맞게 이런 생각을 했다. 50여 년 동안 내 몸의 일부였으나 요 며칠 동안 나를 지독히도 힘들게 했던 또 다른 나의 분신, 그 고통의 실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의자의 손잡이를 부여잡고 상체를 일으키려는데 온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몸이 많이 부실해진 것이 분명했다.
지난해부터 부쩍 몸 곳곳에서 이상신호를 보내온다. 눈가와 이마의 주름 그리고 흰 머리카락이 늘어나는 것이야 지천명이라는 나이에 맞는 훈장쯤으로 못내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며칠 전부터 시작된 왼쪽 아래 어금니의 통증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었다. 눈물이 절로 날 것 같이 시리고 욱신거리는 괴로움. 진통제를 먹어대도 소용이 없었다. 찬물이나 딱딱한 음식은 언감생심. 치통은 참으로 고약한 것이어서 오죽했으면 유명한 독일의 시인 빌헬름 부슈는 치통을 “어금니의 그 좁은 구멍 안에 내 영혼이 집중되어 있다.”라고 까지 표현했을까.
의사는 내 치통의 주범으로 평소 이를 악무는 습관과 스트레스를 지목했다. 우리 가족은 6년 전 거짓말처럼 한국에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6개월 만에 홀연히 캐나다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사고무친에 사전답사도 없이 단행한 이민, 한겨울의 나목처럼 우리는 온전히 알몸으로 세상을 마주했고 새로운 희망을 싹 틔우기 위해 나름의 방식대로 혼신의 힘을 다 해왔다. 흔히 죽을힘을 다해 어떤 일을 헤쳐나갈 때 ‘이를 악물고 한다’라는 표현을 쓴다. 이민이라는 것이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서 이식한 식물과 다름없어서 그 뿌리를 튼실히 땅에 착근시키려 우리 가족은 고군분투했고, 부지불식간에 이렇듯 ‘이를 악무는’ 습관이 만들어지게 된 듯싶다.
치과를 나서는데 소설 <안나 카레니나>가 생각났다. 안나가 죽은 후 브론스키가 느끼는 치통이 단순히 육체적인 아픔만이 아닌 정신적인 맥락에서 해석되듯이 내 치통도 그저 육체적인 이유를 넘어 익숙한 곳과 결별하고 낯선 곳에서 새롭게 뿌리를 깊이 착근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살아가는 이민자로서의 삶의 피곤함이 누적되어 치통으로 발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스산해졌다.
사실, 꼭 이민생활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녹록지 않으며 남몰래 마음의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는 완강한 삶의 벽들에 수시로 직면하게 되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니던가. 바라보는 건조한 눈길 속에 담겨 있는 거북의 등 껍질 같은 편견과 선입견의 고리를 절감하며 우리는 스스로 하나씩 깨달아 간다. 넘어져 나뒹구는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오직 절치부심, 스스로 담대해지는 것이며 자신을 갈고닦아 견디어 내는 길 뿐임을. 시련과 고난이 사람을 더 성장시키는 건 바로 이런 까닭 이리라.
요즈음, 시나브로 와인의 맛을 알아가면서 얻게 된 지식 하나가 나에게 위안을 준다. 최상급 포도주로 유명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토양은 모래와 자갈 그리고 석회석이 주성분이라고 한다. 그 땅이 한없이 척박하여 비가 와도 물이 고이지가 않는다. 따라서 포도나무들은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뿌리를 아래로 뻗어 내려가야 하는데 깊게는 지하 20미터까지 뻗어 땅속의 좋은 자양분을 흡수한다고 한다. 이렇게 메마르고 척박한 토양에서 살아남기 위해 땅속 깊숙이 착근한 포도나무에 열린 포도만이 높은 당도와 깊은 풍미를 품게 되어 최고급 와인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오묘한 복음이 아닐 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믿어본다. 시련과 고난은 사람을 보다 깊고 성숙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의 치통은 내 중년의 성장통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