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

자녀의 독립, 아내의 이별 연습

by 황규호

아내는 유난히 눈물이 많다. 내 입장에서는 별 게 아닌 것 같은 일에도 쉽게 눈물을 훔쳐내곤 한다. 남자인 나도 기실은 나이가 들어가니 주책스럽게 눈물이 흔해지는 것이 어쩔 수 없어졌다. 전에 없던 눈물샘이 하나 새로 발견된 모양새다. 수시로 물기가 눈가를 적셔 아이들 몰래 화장실 출입이 빈번해졌다. 거울에 비친 충혈된 눈동자를 보며 괜히 겸연쩍어 멋쩍은 웃음을 짓곤 한다. 그러니 여자인 아내는 오죽하겠는가?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그 빈도가 더해지는 듯하다. 아내는 콧잔등이 약간 벌게지며 목소리가 시나브로 떨려오면 여지없이 슬그머니 크리넥스 휴지를 집어 든다.


며칠 전이었다. 우리 가족의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서로 각자의 향후 미래의 진로 계획을 주고받던 자리였다. 아들 녀석의 한 마디가 아내의 목소리를 떨리게 만들었다. “저도 이젠 길게 잡아 2년이나 3년으로 잡고 있어요.” 요컨대, 대학교에서 강사 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 녀석이 자신의 독립시기를 2년 내지 3년으로 예정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아내는 슬며시 휴지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어갔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감출 수는 없었다. 엄마의 눈에는 아직도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토닥토닥해줘야 할 코흘리개 어린이다. 아들은 이제 엄마의 품에서 떠나갈 시간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을 떠났었다. 내가 복이 있어 가정 형편이 나름 괜찮은 상황이었다. 부모님은 큰 아들이자 장손인 나를 비교적 일찍 당신들의 품 안에서 떨쳐 보내신 것이다. 주말에 간혹 시골 고향집에 들러 하룻밤 지내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곤 했다. 그때마다 내 손에는 어머니가 바리바리 싸 주신 음식들로 한가득 했다. 그러면 나는 무겁다고, 여학생 애들이 보면 창피하다고 자주 짜증을 내곤 했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어머니는 나를 떠나보내고 한참을 우두커니 동네 어귀 길가에 서서 한없이 눈물을 훔치셨다고 한다.


이제는 내가 반백의 나이,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나의 어머니의 눈물 젖은 모습을 본다. 고향 시골 동네 길가 모퉁이에 깨금발로 서서 목을 길게 뺀 채, 손에 든 것이 무겁다고 투덜거리며 터벅터벅 멀어져 가는 철딱서니 없는 어린 아들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 계신, 그리운 내 엄마의 고운 얼굴을 본다. 내 엄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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