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아이가 찍어주는 점(괜찮아)

[오늘의 단어] 괜찮아

[오늘의 단어] 괜찮아(괜찮다: 아직 무너지지 않은 마음)


“엄마, 괜찮아.”

어느 날 저녁, 설거지를 하다가 접시를 하나 깨뜨렸을 때 옆에서 그림을 그리던 아이가 먼저 이렇게 말했다.


물 한 방울 튄 것도 보기 싫어 바로바로 닦아내던 엄마가 접시 조각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아이 눈에는 그 장면이 조금 낯설어 보였던 모양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괜찮아”라는 말을 쓴다.

아이들이 넘어졌을 때, 시험을 망친 것 같다고 울먹일 때, 친구와 다투고 돌아와서 문을 쾅 닫고 들어갈 때.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괜찮아, 이 정도면 잘한 거야.”

대부분의 “괜찮아”에는 얼른 이 상황을 지나가게 하고 싶은 어른의 마음이 조금 섞여 있다.

눈물과 한숨이 길어지는 걸 마주 앉아 버티기엔 우리도 사실 여유가 많지 않으니까.


사전에서 ‘괜찮다’를 찾아보면 “별로 나쁘지 아니하다, 별 문제가 없다” 정도의 뜻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가 이 말을 꺼내는 순간을 떠올려 보면 대부분은 ‘별 문제가 있는’ 상황이다.


마음이 많이 다쳤다거나, 자존심이 많이 눌렸다거나, 그냥 눈물이 날 만큼 속상할 때.

그럴 때 입 밖으로 나오는 “괜찮아”는 사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그래도 나는 네 편이야.”

“지금 이 모습 그대로도 널 미워하지 않을게.”

이 말을 두 글자로 줄인 것에 더 가깝다.


문제는 어떤 날의 “괜찮아”는 감정을 허락하는 말이 되지만

어떤 날의 “괜찮아”는 감정을 빨리 치우라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괜찮아, 그만 울어.”

“괜찮다니까, 잊어버려.”

위로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이제 그만 느껴도 돼”라는 말에 가까울 때가 있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에게 “괜찮아”라고 말하기 전에 잠깐 한 박자 쉬어 보려고 한다.

정말 괜찮다고 말해도 될 만큼 충분히 같이 들어주었는지,

아니면 내가 버거워서 서둘러 덮어 버리고 싶은 건 아닌지.


회사에서는 또 다른 “괜찮아요”가 오간다.

연말 성과평가가 한창인 12월, 회의실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요, 괜찮아요.”

그 말 뒤에 충분한 설명과, 내년을 위한 현실적인 계획과, 함께 바꿀 수 있는 조건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면 그 “괜찮아요”는 결국 혼자 끌어안고 내려가야 하는 무거운 말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평가 시즌에 쓰는 “괜찮아요”에는 조금 더 긴 문장을 같이 붙여보려고 한다.

“실망될 수 있어요. 그 마음도 괜찮아요. 대신 내년엔 이 부분을 같이 바꿔 봐요.”

완전히 괜찮아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당장 밝게 웃지 않아도 된다고, 그 자리에서만큼은 감정을 급하게 치우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가 조금이나마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어느 날 퇴근 후, 지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었더니 아이가 슬쩍 다가와 물었다.

“엄마, 오늘 회사에서 속상한 일 있었어?”

“응, 뭐… 조금.”

내가 대답을 채 끝내기도 전에 아이 입에서 조용히 한 마디가 나왔다.

“그래도 엄마는 괜찮아. 엄마는 잘하는 사람이잖아.”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아이에게서 들은 “괜찮아”는 “하나도 안 힘들어야 해”가 아니라 “힘든 거 알아. 그래도 나는 엄마를 믿어.”라는 뜻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자주 나 자신에게는 “괜찮을 만큼 해야만 한다”는 기준만 들이밀고 정작 “괜찮아”라는 말을 건네는 걸 잊고 살았는지 조금 부끄러워졌다.


생각해 보면 어른의 “괜찮아”는 종종 감정을 숨기는 가면이지만, 아이의 “괜찮아”는 그 가면을 잠깐 벗겨 주는 말이 되기도 한다. “괜찮아”는 상처를 없애는 주문이 아니라 상처 옆에 같이 앉아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아프겠지만, 그래도 너는 너야.”

“이 일이 네 전부는 아니야.”

이 긴 문장들을 두 글자로 줄인 말.


〈點心〉은 하루의 한가운데, 마음에 작은 점 하나를 찍는 기록이다.

하루를 돌아보면 전혀 괜찮지 않았던 순간들이 분명히 섞여 있다.

억울했던 말, 실수한 장면, 눈물 삼켰던 회의실, 집에 와서도 계속 떠오르는 표정 하나.

그래도 그 모든 순간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나에게 조용히 찍어 줄 수 있는 점 하나가 있다면 그 점의 이름을 오늘은 이렇게 적어 보고 싶다.


“그래도, 괜찮아.”


오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쩌면 아직 하나도 괜찮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굳이 지금 당장 괜찮으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다만 이 말만은 전하고 싶다.


“지금 괜찮지 않은 당신도 괜찮다.”


오늘 하루 끝에서 거울 속의 나에게, 그리고 곁의 누군가에게 이 문장을 아주 천천히 건네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말이 마음에 찍히는 작은 점 하나가 되기를 바라며, 제2장, 아이가 찍어주는 점의 두 번째 점을 조용히 여기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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