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일하는 사이에 숨겨진 점(보통)

[오늘의 단어] 보통(普通: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자리)

[오늘의 단어] 보통(普通: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자리)


연말이면 회사 곳곳에 이 단어가 떠다닌다.

“이번에도 보통이네.”

“그래도 보통이면 괜찮지 뭐.”


성과평가표에서 제일 많이 찍히는 칸,

눈에 잘 띄지도 않고,

누구의 자랑도 되지 않는 그 칸.


보통.

사전에서 ‘보통’을 찾아보면 “수준이 특별하지 아니하고 예사로움”이라고 되어 있다.

한자로는 普通. 널리 普, 거느릴 通.

‘대부분의 경우에 두루 통하는 상태’ 정도의 뜻이다.


딱히 뛰어나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그냥 “대부분이 이 정도쯤”이라는 자리.

문장으로 읽으면 멀쩡한데 막상 내 이름 옆에 붙어 있으면 괜히 마음이 살짝 내려앉는 단어이기도 하다.


평가 시즌이 되면 누군가는 “우수”라는 칸 안에 앉고, 누군가는 “미흡”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나온다.

하지만 회사의 대부분은 아무 말도 없이 ‘보통’이라는 칸에 조용히 놓인 사람들로 채워진다.

눈에 띄게 빛나지도 않지만 눈에 띄게 무너지지도 않은 사람들.


매일 출근해서, 주어진 일을 큰 사고 없이 해내고,

때로는 위로부터 내려온 급한 일도 받아내고,

때로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고민도 들어주는 사람들.


이 ‘보통’이라는 자리 위에 회사의 일 년 치가 고스란히 쌓인다.

그래도 막상 평가표를 펼쳐놓고 자기 이름 옆의 “보통”을 보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나도 열심히 했는데… 그래도 이 정도가 최선이었나.’

‘이번에도 특별한 게 없었나 보다.’


눈에 보이는 숫자나 등급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조금 더 가혹한 쪽으로 끌고 간다.

“보통”이란 말이 “그저 그런 사람”처럼 들리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조금씩 작게 만들어 버린다.

인사팀에서 평가 테이블을 정리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보통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구나.’


하지만 바로 다음 장면을 떠올리면 그 ‘보통’이 얼마나 단단한 자리인지 알게 된다.

매번 맡은 일을 제때 해내는 사람,

주어진 역할을 조용히 책임지는 사람,

큰 사고 없이 팀의 흐름을 지켜주는 사람들.


그들의 일은 대개, 뉴스에도, 사내 메일에도, 공로자 명단에도 오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만약 이 “보통인 줄 알았던 하루들”이 당연하게 지켜지지 않는다면,

회사라는 이름의 풍경은 생각보다 쉽게 삐걱거릴 것이다.


“나는 왜 늘 보통일까.”

스스로에게 그렇게 묻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비교’의 언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게 된다.


‘우수’와 ‘미흡’의 사이,

마치 중간 계단처럼 보이는 “보통”이 사실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하루를 버티고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은 평가표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종이에 적힌 칸과 등급은 언제나 사람보다 단순하다.

그 안에 담긴 365일의 표정과 심장 박동까지 다 적어둘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요즘은 이 단어를 조금 다르게 보고 싶다.

“보통”은 그저 ‘평범함’이 아니라,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회사를 움직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름이라고.


한 해 동안 매일 출근해서 수많은 메일과 회의와 보고서 사이를 지나온 사람들이

연말에 도착해서 잠시 앉아 쉬어가는 자리.

그 자리에 “보통”이라고 적혀 있는 것뿐이라고.


평가 면담을 할 때면 나는 가능한 한 이런 말을 꼭 한 번은 건네보려고 한다.

“올해 이만큼 ‘보통’으로 버틴 것도 사실 저는 되게 큰 일이라고 생각해요.”


기대한 만큼의 성과가 안 나와서 속상한 마음이 훨씬 클 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출근했고, 중간에 회사를 박차고 나가지 않았고,

여기까지 와서 내년 얘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실은 꽤 많은 것들을 이미 해낸 셈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인생도 대부분 “보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엄청난 성취가 있는 날보다 그냥 별일 없이 지나가는 날이 훨씬 많고,

눈부신 칭찬을 듣는 날보다 조용히 업무일지를 쓰고 집에 돌아가는 날이 더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날의 가치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날들을 견디는 힘,

특별하지 않은 하루를 또 살아내는 힘이

우리를 내년으로,

그다음 해로 이어준다.


〈點心〉이라는 이름으로 하루의 한가운데

마음에 점 하나를 찍어두는 글을 쓰면서 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만약 우리의 올해를 하나의 평가표로 만든다면,

그 대부분에는 아마 “보통”이라는 단어가 적힐 것이다.


대단한 업적도, 치명적인 실패도 아닌,

그냥 오늘도 약속된 시간에 일어나 제자리로 가서 해야 할 일을 하고 돌아온 날들.


그리고 그 보통의 날들 위에 우리가 조금씩 변하고, 배우고, 조금은 더 단단해진 마음이 쌓여 있을 것이다.


오늘 당신의 하루가 그저 그런 날처럼 느껴진다면, 이렇게 적어 보고 싶다.

“오늘도 나는 보통의 힘으로 꽤 많은 것을 지켜냈다.”

성과표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지만, 그 문장은 분명히 당신의 마음에 찍힌 하나의 점이 될 것이다.


보통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된 당신의 올해가,

실은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버틴 365개의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이 글을 읽는 지금만큼은 조용히 인정해 봐도 좋겠다.


당신의 오늘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그 “보통” 위에 서 있는 당신이야말로

회사와 삶을 함께 버티게 만드는 가장 많은 사람들 중 하나라고

조용히 속으로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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