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나에게 쉬어가는 점(출근)

[오늘의 단어] 출근(出勤: 부지런히 나가 몸을 두는 곳)

[오늘의 단어] 출근(出勤: 부지런히 나가 몸을 두는 곳)


월요일은 늘 어젯밤의 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엄마, 내일도 일찍 출근해?”

불을 끄고 누웠을 때, 옆에서 들려오는 그 질문 하나가 새벽 알람보다 먼저 가슴에 꽂힌다.

“응, 내일도 일찍 나가야 해.”

입으로는 익숙하게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늘 같은 생각을 삼킨다.

‘이번엔 그냥, 안 나가면 안 될까.’


아침 4시 30분, 알람이 울린다.

아직 밤 같은 새벽, 집 안은 조용하고 나 혼자만 하루를 조금 먼저 시작한다. 부엌 불을 켜고 밥솥 뚜껑을 열고, 그날의 반찬을 꺼내어 천천히 아침상을 차린다. 한 접시, 두 접시. 누군가는 이 밥으로 수업을 버티고, 하루의 걸음을 시작할 것이다.

“오늘도 건강하게, 배고프지 않게, 어지럽지 않게.”

마음으로만 작게 빌어 보면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자리에 올려둔다. 아침밥을 준비하는 손동작에 나의 하루도 같이 데워지는 느낌이 든다. 식탁 위가 어느 정도 갖춰지면 이제야 비로소 나를 준비하는 시간이 온다. 욕실 거울 앞에 서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한다. 눈 밑의 다크서클과 어제보다 조금 더 부은 눈두덩이를 바라보다 나는 속으로 늘 비슷한 말을 건넨다.

‘너 진짜 대단하다. 오늘도 멋진 하루를 보내 보자.’

누가 들으면 우스울지도 모르는 작은 자기 세뇌.

그래도 이 말을 한 번 해두면 기운이 완전히 바닥까지 내려가는 걸 조금은 막아주는 것 같다.

“그래, 오늘도 여기까지는 잘 왔어.”

거울 속 나에게 그렇게 한 번 말해주고 나면 몸이 조금 덜 무겁게 현관으로 향한다.


출근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일터로 나가 일을 시작함’이라고 되어 있다.

한자로는 出勤. 나갈 出, 부지런할 勤. 글자 그대로 풀면 ‘부지런히 나가 몸을 두는 곳’이다.

경제적인 이유든, 줄일 수 없는 책임이든, 각자의 사정은 다르겠지만 결국 우리는 지키고 싶은 것들을 위해 오늘도 몸을 어딘가로 보내는 사람들이다.


6시 무렵, 지하철을 탄다. 이른 시간인데도 칸 안은 이미 꽤 차 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듯한 사람, 교복 위에 패딩을 걸친 학생들, 작은 공구 가방을 든 작업복 차림의 누군가, 출근길을 함께하는 부모와 아이, 그리고 나처럼 각 잡힌 옷을 입고 나서는 사람들. 서로의 이름도, 직업도,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이 시간, 이 공간에 서 있는 이유는 어쩌면 비슷하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버텨야 할 하루”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 핸드폰 메모장에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적어 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바라본다. 누군가는 이미 지쳐 보이고, 누군가는 아직 잠에 덜 깨어 있고, 누군가는 벌써부터 메신저에 답장을 쓰고 있다.


출근길이라는 건 이렇게 서로의 사연이 겹쳐져 만들어지는 하나의 긴 풍경 같다.

나만 힘든 것도 아니고, 나만 특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나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 다들 이렇게 나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이상하게 조금 덜 외로워진다.


출근이라는 단어를 조금 다르게 정의해 본다.

‘나를 소진시키는 일’이 아니라, ‘지키고 싶은 것들을 위해 오늘도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일.’


줄이고 싶어도 줄이기 어려운 업무, 미루고 싶어도 미룰 수 없는 숫자들,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믿고 싶은 자리,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각자의 생활비와 대출과 장바구니.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떠올리면 출근은 선택이 아니라 거의 반자동으로 몸이 움직이는 습관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그 안에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 내가 이어가고 싶은 삶”이 있다는 걸 떠올리면 조금은 덜 허무해진다. 생각해 보면 출근길은 집과 회사를 잇는 선이기도 하고, 그 선 위에서 가끔 나에게 찍어 주는 마음의 점이기도 하다.


잠에서 완전히 다 깨지 않은 상태로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그 순간, ‘그래, 오늘도 나는 여기까지는 나왔다’고 나에게 점 하나 찍어 주는 일. 그 점이 찍히는 순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가도 이상하게 조금은 버틸 힘이 생긴다.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사람도, 단축근무를 꿈꾸지만 자리 특성상 쉽지 않은 사람도, 가장이라는 이름이 버겁지만 그래도 일을 놓을 수 없는 사람도,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이 시간, 이 칸에 서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그 중 한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말들을 마음속으로 반복해 본다.

‘오늘도 여기까지 나온 나, 정말 잘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아마 비슷한 길 위에 서 있을지 모른다.


버스 안에서, 지하철 창가에서, 혹은 회사 앞 횡단보도에서 잠깐 멈춰 이 문장을 읽고 있다면. 출근이 언젠가부터 당연한 의무로만 느껴졌다면, 오늘 하루만큼은 “그래도 나는 지키고 싶은 것들을 위해 다시 한 번 몸을 움직이고 있구나” 그 사실만큼은 조용히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


월요일 아침, 나는 다시 거울 앞에 섰을 때처럼 속으로 이렇게 되뇐다.

‘너는 정말 대단해. 오늘도 멋진 하루를 보내 보자.’ 그리고 지하철에서 내릴 준비를 한다.


출근이라는 긴 선 위에서 나에게 찍는 마음의 한 점.

그 점 하나가 오늘 오후를 살아낼 작은 힘이 되어주기를,

그리고 이 짧은 기록이 당신의 월요일에도 아주 조용한 점 하나로 남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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