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광, 사라진 후 내게 남은 것들>
1부 잔광 | 〈빈 의자와 같은 속도〉
어느 날부터
집과 회사 사이에 공기가 생겼어요.
문을 열고 닫는 일은 늘 같았는데,
닫히는 소리 뒤로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더 또렷해지더라고요.
누군가의 자리를 부르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속도를 다시 조절해야 했던 시기.
그래서 오늘은
비어 있는 의자 하나가
내 하루의 속도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그 이야기를 써보려 해요.
<빈 의자와 같은 속도>
빈 의자는
서두르지 않는다.
아무도 앉지 않는 자리에서
의자는
먼저 차가워지고
나중에야 익숙해진다.
집의 공기는
문턱에서 한 번 바뀐다.
밖에서 들고 온 숨은
안쪽에서 다른 높이로 내려앉는다.
기압차.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가
가끔, 귀를 먹먹하게 만든다.
나는 그 먹먹함을
말로 풀지 않는다.
그 대신
손이 하는 일을 믿는다.
물을 받는다.
밥을 짓는다.
양말을 짝지어 놓는다.
작은 의자들을
먼저 제자리에 세운다.
그리고
내 의자 하나는
잠깐 비워 둔다.
비워 둔다는 건
기다림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기 위한 방식이다.
나는 안다.
따뜻함에도 선이 있다는 걸.
너무 뜨거우면
나는 타 버리고,
너무 차가우면
나는 굳어 버린다.
그래서 나는
국의 온도를 먼저 본다.
손끝이 안심하는 온도,
그 근처에
내 마음의 온도선을 맞춘다.
세상은 종종
내게 빠른 말을 요구한다.
괜찮냐고,
어떻게 됐냐고,
이제는 됐냐고.
하지만 내 하루는
빈 의자가 아는 속도로 간다.
빨라지지 않고,
멈추지도 않는 속도.
기압차가 큰 날에는
한숨이 길어지고
말이 짧아진다.
그럴수록 나는
의자를 비워 둔다.
내가 나에게 돌아올 자리를.
빈 의자는
상실의 증거가 아니다.
내가 지켜낸 리듬의 표시다.
나는 오늘도
그 의자를 닮은 속도로
하루를 넘긴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무너지지도 무표정하지도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