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내려놓으니 기회가 온다.
보건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현재 졸업한 대학에서만 강의를 하기 보다
여러 학교에서 강의 경험을 쌓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방법을 고민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뭐라도 시도 해 보는 것이 낫겠지.
이력서를 작성하고, 박사 논문을 동봉하여
내가 강의할 수 있을 만한 대학의 학과장님들께 보냈다.
그것을 받고 나를 기특하게 생각하신 학과장님들이 강의 자리를 주었다.
한 번도 본적 없는 나를 내가 한 노력이 가상하다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냐며, 생각을 했어도
실제도 실행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했다.
나는 강의 자리가 너무도 간절했다.
실행하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강의 자리를 얻었다.
대학에 강의자리 외에 다른 곳도 알아보기로 했다.
집 주변에 일반인 대상 교육기관이 있었다.
마침 내가 가르칠 수 있을 만한 과목이 있을 것 같아
이력서와 논문을 들고 방문했다.
그 기관의 대표님은 마침 준비 중인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에서 특정 과목을 강의해달라고 했다.
운 좋게 대학과 일반 교육기관에서 강의 자리를 얻었다.
이제는 나의 지식과 능력을 보여줄 차례다.
강의를 처음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다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학생들과 만난 경험이 많은 숙련자처럼
강의 시간을 채워갔다.
나의 강의 스킬도 조금씩 늘었고,
학생들이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중간중간 섞어넣는
여유도 생겼다.
다만, 계약직으로 일해야 하는 나를
엄마는 항상 불안하게 생각했다.
직장에 들어가서 안정적으로 일하기를 바라며
적당한 곳에 취업을 하길 바라셨다.
나는 강의를 계속하면서 논문도 쓰고,
책도 집필하며, 나만의 영역을 넓혀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나이 많은 어른의 입장에서는 늘 불안해 보였던 것 같다.
적당한 곳에 취업하라는 엄마의 잔소리 횟수가 늘어나고
내가 더 이상 엄마와 같은 집에 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적당한 곳을 검색하고 있었다.
검색하던 중 내가 공부한 분야와 딱 맞는 기관이 있어서
그곳에 지원해 보기로 했다.
내 직무와 맞는 곳에 지원을 해야 하는데
딱 맞는 직무는 찾기 어려울 것 같아
무작정 기관에 들어가서 이동을 할 수 있겠지 생각했다.
채용담당자도 내가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는 느낌이 들었는지
서류에서부터 탈락시켰다.
어떤 부분이 부족했을까 지원서를 다시 살펴 봤다.
딱히 잘못된 건 없었지만 내가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계속 이런 실수를 반복하며 여러 번 같은 기관에 지원했다.
결과는 계속 좋지 않았다.
이유를 알고 싶어 인사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다.
어떤 사람을 채용하기 원하는지 알고 싶었다.
담당자는 회신하지 않았다.
나는 또 다른 루트를 생각했다.
이 기관에서 진행하는 설명회에 참석해서
기관 사람을 만나서 물어야지 생각했다.
설명회에서 직급이 높은 분을 붙잡고
나는 보건학을 전공했고, 이 기관에 입사하고 싶다고 했다.
그 분은 충분히 입사할 수 있을 것 같으니
궁금한 것이 있으면 명함에 연락처로 연락하라고 했다.
그 이후에 그 기관에서 또 다시 채용을 진행했다.
이번에는 정규직을 채용했다.
지금까지 내가 지원했던 건 단기 계약직이거나 인턴 자리였다.
무조건 그 기관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기에 정규직, 계약직 가리지 않았었다.
나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지원을 했다.
이번에도 안되면 나는 내가 원하는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가족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지원을 했고,
이후 채용 일정에 목매지 않았다.
내가 가야 할 길이면 가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다음 전형을 진행하라는 메일을 받았다.
다음 전형은 NCS 시험과 논술이었는데
논술은 내가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쓰면 되기에 문제가 아니었는데
NCS 시험이 그해 처음 도입되었기에
무슨 시험인지 조차 알지 못했다.
서점에 가서 조사를 했더니
시중에 나온 책도 몇 권 없었고,
막상 책을 펼치니 내가 공부한다고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도 어떤 종류의 문제가 나오는지 정도는 파악했다.
나는 미련을 버렸다.
이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서 내가 합격하지 못한다면 내가 갈 곳이 아닌 거지
학교에서 강의할 강의안을 준비하는데 집중했다.
시험과 논술을 봤는데 합격했고,
면접을 보라고 했다.
면접도 잘 보지 못한 것 같았는데
면접관들의 질문을 독차지하며 합격했다.
너무나도 간절할 때는 서류부터 탈락이었는데
안되면 그만이라고 자포자기 상태로 임하니 합격이 되었다.
너무 간절해서 이루어지지 않았던건지
막상 내려놓으니 기회가 왔다.
간절하게 지원하고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했을때
내가 느꼈던 설움의 감정이 한 순간에 몰려왔다.
힘을 빼야 자연스러워지고 그래야 기회도 오는구나!라고 생각한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