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경험도 나를 성장시킨다.
30살이 훨씬 넘는 늦은 나이에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했다.
직장 때문에 처음으로 내가 거주했던 부산을 떠나
새로운 지역에서 살게 된 것도 새롭고
낯선 곳에서 새로 맡게 된 업무를 시작하는 설렘도 있었다.
입사하고 초반에는 이 기관의 시스템과 업무에
이 조직의 사람들에게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이 기관에 적응하고 3년이 지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만약 이 일을 몇 년 더 계속하게 된다면
나에게 어떤 발전이 있을까?
답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였다.
나는 지금의 상황에서 변화가 필요함을 감지했다.
변화를 원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변수가 나타났다.
이 조직에서 베트남으로 직원을 파견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것이 나에게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경력이 오래되진 않았지만 지원하기로 했다.
여러 명이 지원하고 면접을 본 결과,
내가 파견을 가게 되었다.
사실 나는 현지에서 할 일과 겪게 될 일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용기 있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었다.
만약 정확히 알았다면 나는 지원할 용기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낯선 땅에 혼자 덩그러니 떨어진 느낌이었지만
나에게 주어진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단단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도착한 다음 날부터 나는 스펙터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외국에서 살아본 것은 대학시절 미국 교환학생으로의 경험이 전부인데
학생으로 공부를 하는 것과 직장인으로 일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학생으로서는 성적을 조금 못 받아도 크게 문제 되지 않았지만
사회인으로서는 주어진 모든 일은 뭐든 해결해 나가야 했다.
나는 미션이 주어지면 해결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미션의 천국이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상황과 일들이 주어졌고,
현지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은 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현지 베트남 직원과 매일 할 일을 리스트를 만들어놓고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새로운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지 하고 있는 상황에
코로나가 유행했다.
누군가 나에게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인지
초반에 세팅하는 것도 너무 고되었는데
코로나라는 상황까지 내가 이겨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당황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이 상황을 우울해하지 않고 버티기로 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기도 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해결할 일을 해결하고,
매일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일하며 지내다가
때로는 나는 왜 이런 일을 경험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했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내가 이 일을 통해 배우는 것이 있겠지... 하며 버텼다.
그렇게 2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베트남에서 버티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베트남과 다른 기후에 적응하는 것부터가 힘들었다.
뭔가 기력이 부족한 사람처럼 쉽게 지치고 활력이 없는 사람 같았다.
한국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또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업무이기도 했고
영어를 잘해야 하는 업무였는데 그 일이 나에게 주어졌다.
처음에는 내가 잘할 수 없는 업무인데 맡게 되어서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베트남에서 2년을 넘게 버텼는데 내가 못 할 일은 없어.’
‘하다가 못하고 실수하면 한 대 맞지. 뭐...’ 하는 생각 말이다.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된 그날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못할 일은 없다는 생각으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또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고, 적극적으로 일을 실행해 나갔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인생에서 불필요한 경험은 없다는 것을...
베트남에 있을 때, 코로나가 유행했을 때,
나는 왜 이런 경험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수없이 했었는데
나는 어떤 힘든 고난이 찾아와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고민과 좌절의 경험을 통해 결국 나는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