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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할 수 없는 너

영혼을 채워주는 요리

by BESTHYJ

3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을 가족과 함께 살다가 직장을 타지로 옮기면서 요리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요리라는 단어는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는데 환경이 나를 요리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하루하루 먹고살기 위한 요리를 하나씩 하기 시작했고,

집에서 엄마가 해주시던 그 맛은 아니지만 비슷한 맛이면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위로했었다.

요리를 하긴 했지만 더 맛있게 만들어보자던지,

나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보자는 식의 창의력을 발휘하기는 힘든 시기였다.


3년쯤 직장생활을 하다가 베트남 호찌민이라는 낯선 나라로 파견 근무를 가게 되었다.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일을 진행하다 보니

그 나라의 낯선 음식이 나의 허기를 채우지 못했다.

어딘가 익숙한 맛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근처한식당을 찾아서 한국 음식을 먹었다.

베트남은 베트남 음식은 저렴한데 한국 음식은 대체로 한국보다 가격이 비쌌다.

아무래도 베트남에서 매일 한국 음식을 사 먹으며 3년 정도를 버티는 것은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하루종일 고된 업무로 녹초가 된 몸이지만

익숙한 고향의 맛을 찾아 요리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마트에서 한국음식을 요리하기 위한 재료들은 대부분 구할 수 있었고,

그래도 부족한 재료가 있으면 한국 마트에서 구할 수 있었다.

한국 음식으로 간단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된장찌개와 김치찌개였다.

한국에서도 비교적 자주 그리고 쉽게 할 수 있었던 요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된장찌개부터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된장찌개를 끓일 때 필요한 재료를 정리해 보았다.

먼저 육수를 끓이기 위해 멸치와 다시마가 필요하고,

기본 재료로 된장과 감자, 애호박, 양파, 파, 두부, 청양고추,

해물 된장찌개를 위해 꽃게와 새우가 필요했다.

육수를 위한 재료들은 한국에서 올 때 많이 챙겨 와서 걱정이 없었고

나머지 야채와 해산물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야채와 해산물은 베트남 마트에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어서

근처 마트만 가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웠다.


필요한 재료를 모두 사고 드디어 된장찌개를 끓여서 먹을 수 있다는 설렘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마저 가벼웠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다른 재료들은

한국에서 사용하던 재료와 같은 재료를 샀는데

베트남 마트에는 한국사람들이 매운맛을 내는 데 사용하는 청양고추가 없어서

새빨갛고 작은 베트남 고추를 샀다는 것이다.

야채 코너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이 고추가 맵다고 해서

청양고추 대용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구매를 망설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빠른 속도로 재료를 손질하고 된장찌개를 끓였다.

마지막에 청양고추와 파, 두부만 넣으면 된장찌개가 완성된다.

내 인생에 이토록 설레는 순간이 있었던가?

된장찌개가 완성되도록 기다리는 1분 1초가 긴장되고 설레어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렸다.

드디어 완성된 된장찌개와 갓 지은 밥을 퍼서 식탁에 앉았다.

드디어 나의 허기를 잠재울 뿐만 아니라 영혼의 허기까지도 채워줄 수 있는

요리가 완성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겨우 된장찌개 한술을 떠서 맛보았다.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국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었다.

혼자서 먹으면서 왜 다른 맛이 나는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재료 하나하나를 맛보면서 같은 맛인지 아닌지 확인했다.

분명 같은 재료이고 같은 방법으로 끓였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한 그릇의 된장찌개를 분석하며 먹다 보니 맛이 다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베트남 고추가 원인이었다.

똑같이 매운맛을 내는 고추라서 그렇게 크게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작은 고추는 된장찌개와 같이 조리되면서 동남아 느낌의 맛을 내는 것 같았다.

어렵게 장을 보고 요리했는데 결국 내 영혼의 허기를 채우지 못하고 마무리되었다.

남은 된장찌개는 아쉽지만 다 먹지 못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그 된장찌개의 맛을 찾기 위해

다음번에는 한국 청양고추를 꼭 넣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청양고추만 넣으면 내가 원하는 맛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처음 실패한 된장찌개가 실패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그 맛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섰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한국 청양고추를 찾아 베트남 마트와 한인 마트를 모두 뒤졌는데 청양고추를 찾을 수 없었다.

한인 마트에도 청양고추가 있을 때가 있고 없을 때가 있다고 했다.

지금 시즌에는 청양고추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점원이 해주었다.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당분간 그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것에 살짝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 간절하면 방법이 생기는 건지 그때쯤 한국에 갈 일이 생겨서 한국에 갔다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한국산 청양고추를 몇 봉지 사서 베트남으로 가져왔다.

베트남은 다른 나라의 농산물을 가지고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드디어 청양고추를 넣고 된장찌개를 끓일 수 있게 되었다.

베트남 집에 돌아오자마자 된장찌개를 끓일 준비를 했다.

다른 재료는 다 똑같이 하고 마지막에

한국에서 가져온 청양고추를 넣고 잠깐 끓인 후 완성했다.

따뜻한 흰쌀밥에 된장찌개가 준비되었다.

한 숟갈 떠서 맛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났다. 내가 찾던 바로 그 맛이었다.

엄마가 해주시던 바로 그 맛!

평소에 밥을 많이 먹지 않던 내가 너무 맛있어서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비로소 영혼의 허기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던 식재료 하나가 이렇게 소중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 이후로 음식을 만드는데 작은 재료 하나도 너무 소중하고,

재료 하나하나의 맛을 살려야 비로소 맛있는 요리가 완성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내가 베트남에서 근무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실을

경험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고,

그 경험을 통해 내가 원하는 식재료를 마음껏 구할 수 있는 곳에서 살아가며

내가 원하는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가 매일 익숙하게 먹는 음식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나에게 일깨워준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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