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를 넘어선 새로운 선택 기준
2025년 국내 SPA 시장은 분명한 변곡점에 진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상위 5개 SPA 브랜드의 총매출은 약 4조 원으로 전년 대비 5,000억 원 이상 성장했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브랜드 간 희비는 극명하게 갈립니다. 유니클로와 무신사 스탠다드는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한 반면, 탑텐과 스파오는 전년과 유사한 매출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단순한 실적 격차라기보다, SPA 시장 경쟁 구도가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현재 SPA 시장의 변화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소비자의 선택 기준이 ‘가장 저렴한 브랜드’에서 ‘가격이 비슷할 때 더 사고 싶은 브랜드’로 이동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스마트폰 시장이 단순한 통화 기능 중심에서 카메라·디자인·브랜드 경험을 함께 고려하는 시장으로 진화한 흐름과 유사한 패러다임 전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가성비가 충분조건이었습니다. 가격만 저렴하면 선택받을 수 있었던 시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 가성비는 필요조건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이 기본값이 되고 분위기와 서비스가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처럼, SPA 브랜드 역시 저렴함 위에 어떤 가치를 더 얹느냐가 경쟁의 핵심이 된 것입니다.
유니클로는 상품 고도화를 통해 브랜드 인식을 전환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올해 매출 1조 3,524억 원으로 전년 대비 27.5% 성장하며 2년 연속 1조 원을 돌파했는데, 이는 노재팬 이후 단순한 회복을 넘어선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가격 경쟁력은 유지하되, 디자인 완성도와 실루엣을 개선하고 컬러 전략을 고도화했으며, 글로벌 디자이너 및 브랜드 협업을 통해 상품 인식을 ‘무난한 기본템’에서 ‘사고 싶은 옷’으로 전환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니클로는 가성비 브랜드에서 가치 중심 브랜드로 포지셔닝을 이동시켰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무신사 스탠다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같은 목적지에 도달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 운영을 통해 축적한 소비자 데이터와 트렌드 감도를 기반으로, 소비자가 이미 ‘입고 싶다’고 느끼는 디자인과 핏을 빠르게 상품화했고, 이를 오프라인 매장 확장으로 연결했습니다. 오프라인 매출이 86% 증가하고 누적 방문객 수가 2,800만 명에 달했다는 점은, 무신사 스탠다드가 단순한 PB 브랜드를 넘어 소비자에게 ‘선택되는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유니클로가 상품 품질 고도화를 통해 접근했다면, 무신사는 소비자 니즈를 정밀하게 포착하는 데이터 기반 기획력으로 접근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탑텐과 스파오는 여전히 가성비 측면에서는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으나, 성장세는 정체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두 브랜드 모두 기본 아이템 중심의 안정적인 상품 구성에는 강점이 있지만, 소비자가 해당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선택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는 킬러 상품이나 디자인 차별화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가 가능합니다.
특히 탑텐은 2020년 노재팬 특수로 매출 6,300억 원을 기록하며 유니클로를 넘어섰으나, 유니클로 회복 이후 성장세가 둔화되었습니다. 현재 6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내년에는 매장 수를 줄이고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을 밝힌 점은 양적 확장 중심 전략의 한계를 스스로 인식한 결과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상황의 배경에는 몇 가지 구조적 요인이 존재합니다. 전통적인 기획–생산–유통 프로세스는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따라가기 어렵고, 실시간 소비자 반응을 상품 기획에 즉각 반영하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저렴하고 무난한 옷’ 이상의 명확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소비자에게 “왜 굳이 이 브랜드를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점도 한계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SPA 시장의 경쟁 구조는 명확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가격이 충분조건이었다면, 현재는 가격·디자인·브랜드 경험이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작동하는 시장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 변화 속에서 유니클로는 가성비에 디자인 완성도와 브랜드 신뢰를, 무신사 스탠다드는 가성비에 트렌드 감도와 데이터 기반 기획력을 결합하며 경쟁 우위를 확보했습니다. 반면 전통 SPA 브랜드들은 여전히 필요조건인 가성비에 머물러 상대적인 성장 한계에 직면한 상황입니다.
결론. 가성비 이후 경쟁력이 승부를 가른다
올해 SPA 업계의 희비는 가격 경쟁력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가성비 이후 단계인 상품 기획력·디자인 경쟁력·브랜드 선호도를 누가 먼저 구조화했는지에 따라 갈렸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가성비는 이제 출발선에 불과하며, 앞으로 SPA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비자에게 “왜 굳이 이 브랜드를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