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쩨리 Jun 08. 2019

온가족 취업기, <기생충> 후기 1부

이건 수직형 설국열차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황금종려상을 받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영화를 찍으면서 그는 받을 줄 알았을까? 이 영화를 보러가면 CJ 엔터테인먼트 시그니처 영상이 뜨지만 소리는 종이 땡땡 울린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컷'과 '오케이'를 외치면서 머릿속에 종이 울리지 않았을까?


#1. 계급 사회라는 것

사진 출처_네이버 영화

 그동안 봉준호 감독이 찍어온 것처럼 이 영화도 계급 사회를 정면에 드러내놓고 아주 재밌게 그려나간다. <설국열차>가 뭔가 비극 같다면 <기생충>은 이 영화의 포스터에 나와있는 것처럼 "희비극"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장치들을 정면에 보여주면서도 진부하지 않다. 

 

  반지하에 사는 가족, 그리고 지상보다 조금 더 위에 사는 가족, 그리고 반지하보다 더 아래, 저 깊은 지하에 사는 가족. 이 영화는 이 세 가족의 계급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과외 면접을 받으러 언덕배기를 올라가야 마주하는 집, 그리고 그 현관에서도 몇 계단 더 올라가야 비로소 집으로 들어가는 그 집. 그리고 그 집에서 나와 언덕을 내려와 수많은 계단과 터널, 그리고 또 내려가는 계단을 거쳐야만 비로소 마주하는 주인공의 집. 그런데 그 곳보다 더 내려가야 마주할 수 있는 그들(문광 부부)의 집.

 

 때론 노골적이고 때론 은유적으로 부에 의해 수직적으로 나뉜 계급 사회를 보여준다. 특히나 비오는 날 기우네 가족이 몰래 다송이네 집에서 빠져나와 비를 쫄딱 맞아가며 한참을 내려가 비로소 그들의 집에 도착하는 장면은 대단히 노골적이다. 그리고 겨우 천 한 장으로도 억수같은 비를 막으면서 다송이를 뽀송하게 잠들게 해준 강사장네 '미제 인디언 텐트'와 달리 기우네 집은 겨우 창문하나 열려있었을 뿐인데 집에 물이 가득차 버리고 나와야 할 지경이다. 


 갑자기 모여도 '쿨'하고 '자연스러운' 지상에 사는 사람들과 홍수로 집이 물에 잠겨 어쩔 수 없이 강당에 모인 사람들과 너무나 대조된다.


#2. 부잣집에 온 가족이 취업을 했다

사진 출처_네이버 영화

 피자박스 하나 제대로 접지 못해서 일당도 떼이던 가족이 문서 위조로 기우가 부잣집에서 과외를 하게 되고 그들의 치밀한(?) 계획 덕분에 마지막으로 엄마까지 그 집에 취직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 대해 기우의 엄마 충숙은 자조적으로 말한다. 그 가족들이 오면 자기네들 집의 바퀴벌레들이 사사삭 숨는 것처럼 우리도 사사삭 숨으면 된다고.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다송이네 가족이 돌아오자 침대밑, 테이블 밑으로 숨는다.


#3. 전형적이지 않은 '부자'

출처_네이버 영화

 이 영화가 재밌는 것은 영화 후반부가 될 때까지 흔히 이런 영화에 나올법한 부자들의 추악한 모습, 악덕상자 같은 것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설국열차>에서처럼 대놓고 핍박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잘 대해준다. 게다가 이들은 좀 순진하기까지 하다.


 "이제는 사람을 잘 못 믿겠다"는 연교는 어찌나 사람을 잘 믿는지 그저 '아는 사람', '아는 분'이라는 말 하나에 철써덕 철써덕 믿는다. 강사장은 차에 버려진 속옷을 보고 짐짓 예리한 추측을 하는 것 같지만 전혀 잘못 짚으며 심지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은연중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달리 이들 가족은 굉장히 화목하며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가진 아이를 위해 특별한 생일 파티를 준비한다. 


 그래서 얼핏보면 관객조차 이 '부자들'을 맘편하게 욕하기가 좀 그렇다. 차라리 <설국열차>에서처럼 대놓고 핍박하거나 나쁜짓이라도 했으면 되는데 그게 아니다. 


 또 재밌는 점은 우리가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 특히 영화에서 그려지는 재벌 계층의 모습과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뭔가 바람을 필 것 같고 아이들은 좀 건방질 것 같고 부모는 뭔가 뒤틀린 욕망으로 아이들을 대할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고 바라는 '평범'한 가정이다. 


#4. 오히려 기우네 가족이 더 무섭다

출처_네이버 영화

 오히려 더 무섭고 소름끼치 지점은 이 가족이 기존에 다송이네집에 일하던 사람을 내쫒는 방식이다. 기우네 가족이 취업하는 과정은 전부 사기와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 사기극에서 비롯하는 웃긴 지점도 분명히 있긴 하지만 그들은 기존에 다송이네 집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거짓말, 몰아가기로 꽤 매몰차게 쫒아낸다. 기우네 가족이 취업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쫒아내는 사람들의 사정따윈 안중에 없다. 이는 기정이의 대사에서 더 잘 드러난다.

아빠, 아빠는 우리만 신경쓰면 돼! 


 기정이가 다송이네 집 거실에서 이렇게 소리칠 때 하늘이 마치 천벌이라도 내리듯 천둥이 요란하게 치는데, 이런 장면은 그다음 이어지는 이야기와 함께 봉준호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5. "난 불우이웃 아니야"

출처_네이버 영

  기우네 가족이 진짜 무서워지는 시점은 다송이네 지하에서 문광네 가족을 발견했을 때이다. 그들은 숨어들어온 그들의 처지를 잠시 망각하고 경찰에 신고를 해야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언니'라고 부르는 문광에게 매몰차게 대하며 '같은 불우이웃끼리 돕자'라는 말에 대답하는 충숙의 말은 주제의식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난 불우이웃 아니야


 그들(반지하)보다 더 아래(지하)에 사는 그들과 구분하는 이 대사는 왜 봉준호 감독이 기우네 가족을 메인으로 세웠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일 무섭고 소름끼치는 부분은 문광이 겨우 1층으로 올라왔을 때 서슴없이 무표정으로 계단에서 밀어버리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봉준호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영화 전체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할 이야기가 많아서 1부와 2부로 나누어 썼다. 1부는 여기까지.


©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저자에게 있습니다. 무단 전제, 배포 등을 금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 <미성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