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습니다. 그동안.
※ 스포일러 주의
<토이스토리4>가 개봉했다. <토이스토리3> 엔딩을 보고 다들 후속작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토이스토리4> 발표 소식에 놀랐을 것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결코 이전 시리즈에 뒤지지 않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한번 더 놀랐을 것이다.
<토이스토리4>는 여러가지면에서 신기한 영화다. 다들 어떻게 후속작을 이을지 의문을 품었음에도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토이스토리>가 탄생 기반에 대해 정면으로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토이스토리> 시리즈는 '아이들'의 장난감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주인에게 버림받아 상처 받은 장난감이라던가, 나쁜 주인을 만났다던가 하는 등 결과적으로 그들의 주인에게 속한 장난감들의 이야기였다면, <토이스토리4>는 장난감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 삶을 찾은 거지.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이전의 <토이스토리>들이 한때 장난감을 갖고 놀았던 '인간들'의 관점 속에서 그 추억들을 자극하며 전개해 나갔다면, <토이스토리4>는 그동안 <토이스토리> 시리즈를 이끌고 와준 장난감들을 자유롭게 보내주는 느낌이다.
자신들을 갖고 놀아줄 아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넓은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나갔던 장난감들을 보여주면서 주인이 만들어 주지 않아도 장난감 스스로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고 훨씬 더 넓은 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이는 보니에게 점점 홀대받으면서 포키에게 집착하는 우디나 갖고 놀아줄 주인을 찾기 위해 우디의 사운드박스를 뺏으려는 개비개비의 모습과 주인 없이 자유롭게 노는 보핍을 비롯한 다른 장난감들의 모습이 대조되면서 더 잘 드러난다.
보니는 괜찮을 거야
특히 우디를 보내면서 버즈가 하는 이야기는 그동안 장난감들이 집착해온 존재에 대해 꼭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토이스토리>의 근간 자체에 대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개비개비라는 캐릭터는 다시 한번 <토이스토리> 시리즈의 주제를 상기시켜준다.
장난감의 가장 소중한 사명은 끝까지 아이 곁을 지켜주는 거야
개비개비는 주인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집착하다시피하며 우디의 사운드박스를 뺏으려고 한다. 그래서 개비개비의 캐릭터에 대해 처음에 관객들은 경계하게 되는데 계속 개비개비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경계심이 누그러진다. 특히 우디한테 장난감의 사명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개비개비의 집착이 이해가 된다. 게다가 우디의 사운드박스를 받고 나서는 오히려 친절하게 보내주는 모습과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통해 장난감스러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개비개비가 주인을 찾게 되는 과정을 보면 결코 첫 번째 이야기와 완전히 모순되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최초에 개비개비가 가고자 했던 주인에게 버림받자 "세상에 아이들은 많다"라며 밖으로 나가 길을 잃은 아이를 만나게 된다.
결국 나만의 주인을 찾는 방법이라는 것이 결코 하나만 있지 않다는 것, 어떤 하나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첫 번째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토이스토리4>에는 독특한 존재가 등장한다. '포키'다. 포키는 보니가 직접 만든 장난감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쓰레기'라며 끊임없이 쓰레기통으로 달려간다. 이런 포키에게 마치 세상에 태어나게 한 아버지처럼 보살펴 주는 것이 우디다. 물론 우디가 포키를 보살펴 주는 이유 중 하나는 궁극적을 보니를 위함이지만 이와 동시에 그동안 배제된 자신을 투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계속 자신의 본래 모습이라며 쓰레기통을 찾아가는 포키의 모습과 그런 포키에게 '장난감'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주며 결국 보니의 곁을 '끝까지 지켜주는' 장난감으로서의 가장 소중한 사명을 수행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포키가 주장했던 자신의 본래 모습과 무관하게 '장난감'으로서 완성된 포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다시 한번 존재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토이스토리4>는 그동안 <토이스토리>가 그려온 여성 캐릭터 장난감 이미지에 대해 반성이라도 하듯 보핍을 아주 강하고 멋진 캐릭터로 그렸다. 대개 첩보 영화에서 작전을 망치는 민폐형 여성 캐릭터의 역할을 우디에게 넘겨버리고 작전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설계해서 이끄는 리더로 보핍을 내세운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 다시 말해서 주인이 없이 스스로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그 세계를 향한 문을 열어주는 것도 보핍이다. 그동안 남성 캐릭터들이 가져갔던 리더십을 보핍이 가져가고 연신 '어떡하냐'고 안절부절하며 작전을 망쳐버리는 우디가 싼 똥을 수습하는 것도 보핍이다. 풍성한 드레스 대신 멋진 점프 수트를 입고 팔 하나 떨어져도 그저 깔깔대며 웃고 으레 있을 법한 남자 캐릭터(=우디)의 도움없이 척척 팔을 붙인다. 솔직히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좀 지루하다 싶으면 등장하는 게 이 두 캐릭터다. 이 둘은 신기한 게 절대 서로 잡은 손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는 버즈 등장 이후부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그동안 감자 캐릭터가 하던 역할을 대신하는데 이들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어서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다.
이번 <토이스토리4>는 시리즈의 마침표임을 영화 주제를 통해 명백히 드러냈다. 더이상 주인이 필요없는 보핍과 우디의 모습으로 마무리하면서 우리가 그동안 사랑해왔던 <토이스토리> 시리즈가 진짜 '토이'들의 '스토리'를 만들어가게 풀어주었다. 마치 우리를 즐겁게 해준 <토이스토리>에 대한 헌사이자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떠나보내며 애도하는 기분이어서 뭉클했다. <토이스토리3>이 파도같은 감동을 주었다면 <토이스토리4>는 난로같은 감동을 선사했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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