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처가 아니기에
지난 주에 이어 이제 두 번째 심리상담을 받았다. 2회차는 기질 및 성격 테스트 결과를 들을 수 있어서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인식은 하고 있지만 그냥 테스트 결과 자체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상담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어서 저녁을 편하고 든든하게 먹은 뒤 도착해서도 시간이 조금 있어서 상담소 근처를 돌아다녔는데 참 살기 좋은 곳이라 생각이 들었다. 서초구라서 그런 건 아니다. 대학교가 근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흥가와는 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오후 7시가 넘었는데도 주변이 매우 고요했고 높은 건물이 크게 없어서 골목들 사이로 하늘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하필 또 하늘이 예뻤던 날이라 상담 시간이 가까워진 것이 아쉬워질 정도였다. 그리고 상담시간이 되어 상담소로 들어갔다.
나는 바로 테스트 결과를 들을 줄 알았는데 오늘 하루 어땠었냐는 질문을 들었다. 마치 네이버 블로그씨의 질문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주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뭐랄까, 예상했던 상황으로 흘러가지 않아서 조금 당황했었다.
주로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테스트 결과를 얘기하기 전에 테스트를 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물어서 더 당황했다. 검사지 결과를 작성하는 페이지는 마치 OMR카드처럼 칸을 메꾸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 네모칸을 전부 색칠해서 메꾸었더랬다. 그런데 상담사님이 그런 사람은 처음이라고 자기도 한 500 문항쯤 하다 보면 마지막에 귀찮아서 대충 체크하는데 이렇게 끝까지 전부 다 꼼꼼하게 칠한 사람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테스트를 하면서 주로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묻는데 정말 어려운 질문이었다. 한 10초 정도 망설였다가 생각을 정리해서 어떠어떠했다고 말했는데, 생각보다 어떤 생각이 들었냐는 질문이 참으로 어려웠다. 어떤 책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고 심지어 사회 현상도 아니고 그냥 내 생각 자체를 물은 거였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평소에 마주하기 힘든 질문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이쯤되니 면접 단골 질문 리스트가 있듯이 심리 상담 예상 질문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또 곰곰히 생각해 보면 아예 그런 리스트를 만들지 않는게 맞다 싶기도 했다.
내가 받은 테스트지는 다면적 인성검사(다면인성검사인지 다면적성인성검사인지 하여튼 다면적 어쩌구다)와 성인용 기질 및 성격 테스트였다. 이번에 우선 들은 결과는 기질 및 성격 테스트의 결과였다.
누군가는 기질이나 성격이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조금 다르다고 한다. 기질은 타고난 특성을 말한다. 속된말로 '그렇게 생격 먹은'것이다. 그래서 좀처럼 거의 바꿀 수 없다. 흔히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 바로 기질을 말하는 셈이다. 또한 타고난 것이기 때문에 기질에 대해서 올고 그름 혹은 더 나음을 논할 수는 없다.
성격은 자라오면서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성격이 기질을 조절하기도 한다. 때론 기질이 성격을 건드리기도 한다. 그래서 성격과 기질이 이렇게 저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드러난다고 한다.
내가 가진 기질과 성격에 대해서 조곤조곤 설명을 듣고 있으면 '아,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하게 된다. 그동안 머릿속에 뜬구름처럼 붕붕 떠다니던 것들이 마음에 콘크리트처럼 차분히 안착하는 기분이다. 그냥 어렴풋이 짐작만 하던 내용들을 이성적이고 전문적인 언어로 들으니 정리가 되었다.
그게 나쁜 게 아니라
우리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니까요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해온 행동이나 내가 가진 생각들이 비로소 이해된다. 성격 항목 중 바꾸고 싶었던 것은 '관대함/복수심(좀 더 온건한 단어였는데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였는데 상담사님한테 '나는 관대해지고 싶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복수심이라는 마음이 드는 게 절대 나쁜 게 아니라며 우린 사람이고,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그게 절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행동하느냐, 어떻게 표현하느냐라고 했다.
이렇게 듣고 나니 내가 심리 상담을 하는 내내 (겨우 2회차에 불과하지만) 나를 관통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설명이 되었다. 기질 및 성격테스트에서 나는 안전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감정을 표현한다고 했다. 그래서 감정 개방성이 매우 낮게 나왔었는데 이 부분을 언급하면서 표현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면서 표현을 안하면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상담사님의 이야기로 미루어 볼 때 아마 나는 앞으로 어떻게 '잘', 보다 나은 방식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