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한다는 건 말이에요.
3번째 심리 상담.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한 심리 상담이 이제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내원하는 기분이 든다. 다만 아직까지도 '오늘 어땠어요?'라던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라던가, '그래서 감정이 어땠어요?'라는 질문은 여전히 어색하다.
그렇게 했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어요?
내가 상담을 하면서 제일 답하기 힘들고, 이상하게 계속 딴 얘기를 하게 되는 질문이다. 그래서 상담사님이 자꾸 반복해서 질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마음이 어땠어요?'라고. 그럼 나는 이러이러한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는데 상담사님은 다시 물어본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어땠어요?'라고.
그동안 나는 내 감정에 매우 예민하게 감지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내 감정에 대해서 꽤나 잘 안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동안 내가 감정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생각'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감정 자체를 정확히 생각해 본 적 없어서 어떠어떠한 감정이었는지 상담사님한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지 어려웠다.
특히 내가 제일 어려운 부분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상황에 느끼는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회차에서는 회사에서 갑자기 하게 된 프로젝트 때문에 원래 정시퇴근을 하다가 야근을 하게 된 이야기를 하고, 그 일 때문에 어떤 부분은 힘이 들다고 얘기를 했었다. 그래서 상담사님이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냐고 물었는데, 애초에 내 상황이 지극히 일반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정을 고려해 본 적이 없다. 설사 느꼈다고 해도 어차피 누구나 겪는 거니까 그렇게 심각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담사님은 아무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고,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해도 그것이 내가 힘들지 않다는 뜻은 아니며 그때 어떠하다고 감정을 느꼈다면, 그 감정이 맞는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회사에서 갑자기 맡게 된 일 때문에 힘든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상담사님은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했다. 내가 그 일을 진행하면서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느라 결정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려 기획안이 예상보다 늦게 나온 것, 그래서 디자인을 부탁하는 다른 팀의 팀원에게 미안했던 것 그러면서 내가 아니라 결정을 좀 더 빨리 하는, 좀 더 기획안을 빨리 쓸 수 있는 다른 사람이 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고 얘기했다.
상담사님은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나 대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를 바랐던) 다른 사람의 능력을 원하는 것은 연차도 차이가 너무 많이 나고 경험도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나는데 겨우 2년 차가 바라는 건 큰 욕심이라고 얘기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원했던 능력이 내 연차와 내 실무 경험에는 갖기 매우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위로가 됐다.
그러면서 상담사님은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내가 그 일을 천천히 했다는 것, 어떤 일을 하기 싫어서 자꾸 미룬 것을 단순히 인정하고 핑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왜 그랬는지, 그렇게 하지 않은 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심리상담을 계속 나갈 수록 좋은 점은 그동안 이해하기 어려웠던 내 행동이나 그동안 어렴풋하게만 짐작가던 감정과 성격, 행동들이 명확하게 이해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도움이 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뭔가 답답하게 느껴졌던 행동이나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들이 이해되면서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어느 정도 고칠 수 있는지를 안다는 게 무엇보다 도움이 된다. 그래서 특별히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더라도 우리가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듯, 심리 상담을 받아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