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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쩨리 Oct 26. 2019

심리상담을 받았습니다 #4화

내 가방은 왜 무거울까

이제 심리상담이 절반을 넘었다. 4회 차. 언제나처럼 '그동안 잘 지냈어요?'로 시작한 상담은 '고생하셨어요'로 끝났다. 그런데도 이번 심리 상담은 뭔가 달랐다. 그동안 그냥 어떤 하소연만 한 것 같았다면, 이번에는 생각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원래 여러 모습이 있는 거예요"



이번 상담의 시작도 언제나처럼 '그동안 잘 지냈어요?'로 시작했기 때문에 최근에 갑자기 맡게 된 프로젝트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마주한 고민들과 시간이 필요했던 순간들, 대비하고자 했던 많은 경우들을 말하게 되었다. 그러자 상담사님은 내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다락방씨는 완벽주의자예요


내가? 완벽주의자라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살면서 단 한순간도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내가 책임을 맡은 상황에서는 웬만해선 다 예측하고 싶고, 대비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고민을 하고 여러 경우를 생각하는 것일 뿐, 그것이 완벽주의자 성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마주하고 고민했던 이야기를 들은 상담사님은 내가 완벽주의자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 그저 책임을 맡은 상황이 웬만하면 내 컨트롤 속에 있으면 좋겠고 그저 최대한 실수를 하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상담사님은 그런 것이 완벽주의 성향이라고 했다. 그래서 무슨 일을 시작할 때 고민이 많고, 대부분의 상황이 예상 속에 있길 원한다고.


이런 공산품들도 전부 완벽할 수 없는데 나는 완벽하기를 바랬다

그러자 문득 내가 외출 준비를 할 때가 생각났다. 나는 원래 전시회나 공연, 오래된 골목, 오래된 골목의 어떤 집이나 가게 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주말에 전시회나 특별한 장소를 정해놓고 돌아다닐 코스를 꼭 정해 놓는다. 그래놓고도 목적지로 가는 길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체력을 소모해 어딜 가고자 결심을 하면 주말 2번 정도는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나간다. 그런 얘기를 하자 상담사님은 그런 게 완벽주의자 성향이라고 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아무리 해도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나는 절대 나에게 엄격하지 않고, 매번 핑계를 만들어 빠져나온다고 얘기했더니,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는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모든 분야에 그럴 수 있겠냐며, 모든 일에 있어서 그러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 것이라고 했다. 원래 나는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생각하는 모든 경우의 수를 준비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문득 내 가방이 생각났다.


"없으면 그냥 다른 걸로 하면 되죠"


   

그때 내 가방이 생각난 이유는, 가방이 무척 무겁기 때문이다. 내 가방을 들어본 친구는 가방으로 운동하냐고 할 정도로 무겁다. 가방 속에는 얼굴이 건조할 때 필요한 미스트, 혹시나 식당에서 밴 냄새가 날 때 필요한 보디 스프레이, 혹시 그림 그릴 일이 생길 때 쓸 아이패드, 생각이나 아이디어 정리 및 글 개요를 적어놓을 노트와 연필, 누구나 들고 다니는 수정 화장용 파우치와 쿠션, 거울, 립밤, 뭘 흘렸을 때 그냥 휴지보다 나은 물티슈 등 뭔가 가득 들어 있다. 


그건 주말에 혼자 어디를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패드는 물론 카메라에, 단렌즈와 줌렌즈도 모두 챙기고 필름 카메라도 챙긴다. 그래서 언제나 내 가방은 무거웠다.


그 얘기를 듣자 상담사님은 내게 얘기했다.


다락방씨, 이게 없으면 저걸로 해도 되죠!


상담사님은 카메라가 없으면 핸드폰으로 찍으면 된다고 덧붙여 얘기했다. 누군가에게는 이 말이 별 거 아닐 수도 있고,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뭔가 머리를 딱 때리는 기분이었다. 그렇다. 이게 없으면 저걸로 하면 되는데. 왜 나는 그렇게 바리바리 챙겨 다녔을까. 사실 나는 그저 내가 예측한 상황에 대해서 만큼은 준비를 했을 뿐이다. 근데 그게 내 어깨를 너무 아프게 만들긴 했었다.




상담사님의 마지막 이야기는 이번 상담을 가장 기억나게 했다. 상담사님은 그 말을 하면서 물론 완전히 다 바꿀 수는 없을 거라고 얘기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말로 충분했다. 이제는 내 가방이 조금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아이패드를 놓고 다니기도 하고(원래도 들고 다니면서 안 쓰는 날이 쓰는 날보다 많았다) 렌즈도 맘먹고 한 개만 들고 가기도 한다. 이제까지의 상담이 내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면, 이번에는 뭔가 받은 진단에 대해 약을 하나 처방받은 상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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