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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쩨리 Aug 30. 2020

<툴리> 리뷰 - 엄마를 돌보러 왔어요

사실 다 아시죠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래도 집순이였지만 계속 집콕 생활을 하다 보니 드라마와 영화 시청시간이 확 늘어났다. <테넷(Tenet)>을 보러 대체 언제 영화관에 갈 수 있을까... 새삼 OTT 서비스에 감사하고 부러워하며 <툴리(Tully)>를 보았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출처 : 네이버 영화

세상이 그동안 임신과 출산의 경이롭고 아름다운 면만 강조해서 얼마나 보여줬는지는 이제 말하기도 입 아프다. 모성애가 어쩌고 저쩌고, 어머니의 힘이 어쩌고 저쩌고... 그것이 경이롭고 아름답다고 하는 것에 대해 반박하고 싶진 않지만,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반드시 겪어야 하는 현실적인 모습에 대해서 지나치게 축소해서(거의 말해주지 않았다) 그리는 것은 불만이다.


<툴리(Tully)>에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것처럼 그 모든 과정을 보여준다. 임신의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도, 출산 후 겪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마치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그려낸다. 


남편과 대화를 하며 부른 배에 튼살크림을 아무렇지 않게, 매일 하는 일을 하듯 그렇게 바르고, 다리 저림을 좀 줄여보고자 발 마사지기를 무심하게 발 밑에 둔다. 출산을 한 후 오로 때문에 기저귀를 찾고 있는 모습도, 출산 후 배뇨 작용을 확인하는 과정도 매우 매우 당연한 일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카메라로 담아낸다.


<툴리(Tully)>가 임신과 출산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담아내는 것은 그런 과정들이 아무렇지 않은 과정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모두 겪어야만 하는 일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것이 얼마나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여겨져 왔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만 중요한 게 아니라

출처 : 네이버 영화

<툴리(Tully)>의 주인공 마를로의 상황은 더 힘든 편이다. 이미 아이 2명이 있는 데다, 그중 둘째 조나는 '독특'하기 때문이다. 임신부터 출산 후까지 마를로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피곤한지 영화를 따라가면 우린 자연 스럽게 알 수 있다.


커피에서 커피 좀 마셔볼라 치는데 옆에서 임산부에게 카페인은 좋지 않다며 디카페인도 카페인이 들었다고 말해주는 아주머니, 셋째는 얌전하다며 본인도 해본 육아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올케부터 조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해서 (영화의 첫 장면이자) 솔질해 주는 장면, 아이가 조금 독특하다며 다른 학교를 알아보라는 교장 선생님의 말을 들을 때, 주차장이 다르다며 뒷좌석에서 소리를 지르고 발길질을 해대는 조나의 모습을 보면 마일로의 스트레스가 가히 짐작이 간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출산 후에는 새벽에 일어나 아기에게 밥을 먹이고,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동안 잠만 잘 자는 남편의 모습, 건조기를 돌리는 동안 졸면서 아기를 재우는 모습, 점점 아이들 밥도 챙겨주기 힘들어 인스턴트로 대체하는 모습, 밥상에서 조나가 뭔가를 쏟아 옷이 젖어버리자 그 자리에서 옷을 벗어버리는 모습, 아이가 울고 도움이 절실한데도 헤드셋을 끼고 게임을 하는 남편, 그리고 다른 학교를 알아보라는 교장 선생님의 말에 참다가 짜증을 폭발시키고 차로 돌아와 아기에게 '제발'을 연신 내뱉으며 공갈 젖꼭지를 물리는 장면을 통해 육아를 혼자 견뎌야 하는 여성의 고단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억압을 느끼는지는 인어가 헤엄치는 그의 꿈속에서도 엿볼 수 있다. 출산을 하기 전 TV 속 애니메이션에서 인어로 변하는 여자 주인공들을 보며 마일로는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아름다운 인어가 아니라 자유로운 두 발을 잃어버려 하나의 지느러미로만 헤엄칠 수밖에 없는 모습에서 마일로는 자신의 미래를 본 것일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아이는 3명이나 되고, 조나는 특별한 케어가 필요하다. 마일로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 누구도 그의 스트레스와 피로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보모를 권하는 남동생이나 남편에게도 자신이 키워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이는 흔히 보모를 부르는 엄마에게 씌우는 수식어인 '게으른' 엄마가 아니며, 마일로가 길고 긴 육아의 스트레스와 지침의 끝에서 불렀다는 것을 말해준다.



"엄마를 돌보러 왔어요."

출처 : 네이버 영화
엄마를 돌보러 왔어요


그렇게 고용하게 된 야간 보모가 마일로 입장에서는 조금 특이하다. 일단 보모라고 하기에 너무 젊고, 옷차림도 특이하다. 게다가 엄마를 돌보러 왔다고 하는 툴리. 


처음에 툴리를 이해할 수 없었던 마일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을 이해하게 된다. 툴리가 오고 나서 마일로는 지느러미가 아닌 두발로 헤엄치는 꿈을 꾼다.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되고, 다시 아이들에게 요리를 해서 주고, 조나가 떠나야 했던 학교에 컵케잌을 만들어 나눠주고 전학을 온다. 생일 파티에서 페이스 페이팅을 하고 딸과 사람들 앞에서 딸과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그렇게 마일로는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 그러나 과연 진짜 나아졌을까?


여자들은 치유되지 않아요.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컨실러 범벅이죠.

룸메이트 문제로 툴리가 상담을 할 때, 마일로가 상처를 주지 말라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는 사실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다. 마일로는 툴리와 지내면서 자신의 누적된 피로와, 끊임없는 스트레스, 그리고 자신을 잃어가는 듯한 무력감에서 점점 벗어나는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툴리에게 의존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마일로가 브루클린에 놀러 가서도 겪어야 하는 젖몸살과 이제 일을 할 수 없다는 툴리에게 떠나지 말라며 부탁하고 술을 마신 채 운전을 하는 데에서 우리는 여전히 마일로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원은 스스로 해야 하지만, 혼자는 힘들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마일로는 병원에서 눈을 뜨고, 툴리를 떠나보낸다. 그러고 나서 마일로는 혼자서도 스스로의 고단한 일상에 변화를 준다. 조나에게는 솔직히 솔질이 필요한지 모르겠다며 솔직하게 얘기하고, 아이를 위한 도시락을 싸며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다. 마일로도 돌보러 왔다는 툴리조차 브루클린으로 놀러 가기 전 이런 말을 한다. "자기 자신(self-care)을 잘 돌봐야 좋은 엄마가 되죠"


툴리의 말은 결국 나를 제일 잘 돌봐줄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뜻한다. 툴리가 언젠가는 떠냐 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은 언제가 내게로부터 떠날 날이 온다.


그러나 육아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저 평온한 일상 속이라면 모르겠지만 마일로처럼 독박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와, 무력감,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때는 툴리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 거기에는 '도움' 뿐만 아니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일로의 이어폰을 나눠 낀 남편처럼 응당 같이 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육아는 엄마 혼자 아이만을 돌보는 과정이 아니라, 당연히 남편도 같이, 아이를, 그리고 엄마도(엄마가 엄마 스스로를, 그리고 가족이 엄마를) 돌봐줘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툴리>는 임신과 출산, 육아가 필연적으로 동반할 수밖에 없는 고단함, 수많은 어려움,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 극한의 스트레스를 보여주며, 결코 그것이 '엄마'의 책무만이 아님을 얘기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 과정에 사라지는 '엄마'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고, 돌봄이 필요한 대상은 아이와 엄마 모두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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