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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Feb 24. 2020

공권력의 위신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킬 때 나타는 일

나카야마 시치리 소설 [테미스의 검] 책 리뷰




1. 범죄 스릴러 소설과 사회파 소설의 최적 조합


나카야마 시치리는 굉장히 하드한 범죄 소설 "개구리 남자" 시리즈로만 만났던 작가입니다. 그래서 독한 사이코를 다루는 소설을 잘 쓰나 보다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테미스의 검"은 작가의 또 다른 매력을 맛볼 수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제가 가장 선호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이기도 하면서 긴장감 넘치는 범죄 스릴러의 장점을 완벽하게 조합했다는 점입니다.


사회파 추리소설이 크게 인기가 없는 가장 큰 원인은 다루는 문제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다 보니 다소 속도감이 떨어지고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으며 독자가 개인적으로 관심 없는 주제일 경우 몰입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재미를 넘어 주제의식이 있고, 인간 군상에 대한 깊이 있는 울림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매력적인 장르입니다.


제가 경험한 한도 내에서 설명드릴 수밖에 없지만 시치리는 "개구리 남자" 시리즈를 통해 하드하고 속도감 넘치면서도 독자를 긴장시키는 범죄 소설을 매우 잘 써내는 작가입니다. 여기에 한 사회가 당면한 풀기 어려운 문제를 차근차근 이야기하는 능력에다 이를 등장인물 개인 차원의 문제로 풀어나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직조해내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작가의 수려한 포포몬스 때문에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아주 재미있는 범죄 스릴러 소설을 읽은 만족감을 느낌과 동시에 소설속에 담겨있는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에 심경이 복잡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테미스, 정의의 여신과 원죄


이 소설의 주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타이탄 12신 중 한 명입니다. 테미스가 중요한 이유는 이 양반이 최고 신 제우스보다 뛰어난 통찰력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과 동시에 세상 모든 일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군요. 이 능력을 십분 발휘해 신탁, 제의, 율법 등을 발명하였다고 합니다.


엄정하고 공정한 법 집행을 상징하는 테미스 여신상은 보통 눈을 가리고 양손에 저울과 칼을 들고 있는데 눈을 가리는 이유는 보이는 데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사실까지 꿰뚫어보는 능력을 상징하고 저울은 공정한 판단을, 칼은 허구와 거짓으로부터 단호하게 정의를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소설의 제목이 왜 "테미스의 저울과 검"이 아니라 "검"인지 대충 감이 오실 겁니다. 법의 잣대로 정의라는 명분으로 칼날을 휘두르지만 경찰, 검찰, 법원이라는 조직, 공격력이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공정함을 상실한 상태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일본 경찰 조직의 문제, 검찰 내부, 법원의 재판 상의 문제 등을 전방위로 비판하며 스토리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무책임의 문제에 있어서는 어디다 내놔도 빠지지 않는 언론은 물론 교도소 운영상의 문제까지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니죠. 지나친 가해자 인권보호와 부실한 피해자 유가족 권리 보장 등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거의 국가 대표급 모두 까기의 달인이라고 불릴 만합니다.


이렇게까지 광범위한 분야의 문제점을 빠짐없이 지적하면서도 소설의 전개가 빠르고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는 데다가 마지막에 훌륭한 반전까지 빠짐없이 때려 박아 놓았으니 상당히 훌륭한 소설임은 틀림없습니다.


공권력이 위신과 체면, 조직의 위상 등을 지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벌어지는 불의의 결과로 반드시 누군가는 억울한 누명을 쓰며 아까운 인생은 낭비하고 망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를 일본에서는 원죄라는 표현을 쓰는 모양입니다. 솔직히 저는 원죄라는 단어를 기독교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어 발생하는 가장 기본적인 죄를 의미하는 뜻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원죄(冤罪)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죄'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누명이라고 표현하지 '원죄'라는 단어는 잘 쓰지 않는데, 어쨌거나 이 소설은 피해자인 개인과 그 가족의 억울함에 초점을 맞춰 '원죄'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모두 까기를 시전하는 와중에 누명죄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으니 어찌 대단하지 않겠습니까? 거참, 대단한 일입니다.






3. 조직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원칙주의 능력자 와타세 경부


이 소설을 별 생각없이 읽기 시작할 때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지만, "테미스의 검"은 와타세 경부 시리즈는 물론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등장하는 경찰 와타세라는 인물이 경력을 시작하는 시점에서부터 등장하기 때문에 주인공의 성장과정은 물론 어떤 캐릭터인지도 매우 자세히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와타세는 매우 강직하고 원칙을 중시하는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외적으로는 독불장군 스타일로 조직 논리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상식과 정의에 입각해 행동하는 와일드한 면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에도 이런 성향이 극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범인 추적과 동시에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끊임없이 견재를 당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교활하고 결과만 중시해 도덕적 판단이 결여된 고참 파트너 때문에 어느새 원죄를 짓는 당사자가 되는데, 그 일을 계기로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치밀하고 실력 있는 경찰로 거듭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최고의 성과를 내는 고참 경찰이 되는데, 이 소설 전반부를 통해 성장과정을 차근차근 볼 수 있어 매력적이었습니다.

한편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진행 중에도 다수의 등장인물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각자의 정의를 설파하는 장면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합니다. 독자 스스로 정확한 관점 없이 읽다 보면 이 말도 맞는 것 같고, 저 말도 일리가 있는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고민하며 접근하면 그 모든 정의 가운데 사실은 각자의 이해득실이 감춰져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공권력을 대하는 극단적인 의견들이 넘쳐납니다. SNS를 넘어 1인 미디어가 수익의 수단이 된 오늘날은 비단 정치적인 분야뿐 아니라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이슈만 발생하면 세심하게 사실 관계를 검증하기에 앞서 더 자극적인 이야기로 주목받기에 급급한 모습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부정확한, 또는 의도된 가짜 정보를 양산하는 이면에 개인의 이득이 걸려있다는 점입니다. 돈만 되면 그냥 뭐든 하는 것이지요. 옳고 그름은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큰 시대유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나마 일본보다는 좀 낫지 않나 하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요.


그러거나 말거나 매력적인 소설 "테미스의 검"은 시치리의 다른 작품들도 하나하나 찾아 읽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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