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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Mar 15. 2020

조영주 작가의 그 어떤, 작가의 일

조영주 작가 에세이집 [어떤, 작가] 책 리뷰




1. 조영주 작가의 두 번째 에세이집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조영주 작가가 두 번째 에세이집을 냈습니다. 추리소설만 쓸 것 같던, 에세이 같은 건 쓸 일이 있겠느냐던 작가가 어느새 스리슬쩍 두 권이나 출간을 했군요. 얼마 전 에세이집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가 출간되고 역시 좋구나 싶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또 나왔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2018년 12월부터 1년여 동안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채널예스에 "조영주의 적당히 산다"라는 칼럼에 기고했던 글을 토대로 나온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칼럼에 없던 글도 꽤 추가된 것 같습니다. 


   책은 크게 4부분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가장 먼저 경기도 귀촌 관련 내용인데, 사실 뭐 귀촌이라고 하기에 경기도는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비해 조금만 떨어지면 시골 풍경이 펼쳐지는 특성을 생각하면 귀촌이라는 단어가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서울 살다가 경기도로 이사 간 것이 뭐 그리 특별한 일이겠냐 싶지만, 저자가 독립하고 서울서 아파트 생활을 할 때의 말 못 할 고충, 특히 층간 소음 때문에 고통받던 작가의 이력을 생각하면 특별히 한 파트로 구성한 것도 그럴만하다 싶습니다.


   서울 기준으로 동북쪽으로 이사를 가고 나니 하필 서울 서쪽에 위치한 망원동 쪽에서 일을 하게 돼서 왕복 5시간을 출퇴근에 쓰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 망원동 '카페 홈즈'에서 일하면서 생긴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두 번째 파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과거 바리스타 일을 하면서 겪은 일들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저자가 '카페 홈즈'에서 일하게 된 이후로 좋은 일이 많이 생긴 것 같아 작가 인생에서 아주 잘한 선택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카페 홈즈'를 매개로 좋을 일이 많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여행은 늘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감상을 선사합니다. 조영주 작가도 제주도와 유럽 여행을 통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주는데, 이 내용들이 바로 세 번째 파트를 이룹니다. 여기에 본인의 정체성에 해당하는 작가로서의 일상과 생각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마지막 파트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총 네 가지 파트의 이야기를 통해 조영주 작가의 일상과 생각과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의 반려견 "개몽돌씨" (출처 : 조영주 작가 인스타그램)





2. 독립 출판 "공(KONG) 출판사"


   저는 적어도 제가 아는 작가의 책이라면 책의 내용뿐 아니라 최소한 어떤 인연과 경로를 거쳐 책으로 출간되었는지 정도는 알고 싶어 합니다. 약간의 오지랖이라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저의 궁금증을 채우기 위해 작가를 닦달해 알아내거나 하지는 않지요. 개인적인 친분을 가장해 작가를 귀찮게 하는 행동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원래 궁금하다고 하늘의 별을 따버리면 안 되잖아요. 별은 저 멀리 우주에서 빛날 때 가장 별 같으니까. 우리는 그런 아재 팬 스타일입니다. 


   다행히 책 속에 이 책이 출간된 그 어떤 인연과 과정을 대충 유추할 수 있는 정도의 에피소드가 하나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에피소드 제목이 아주 선정적입니다. "그 코스에 18금 홍등가 넣어주세요."라는 매우 바람직한 제목이로군요. 


   이 책을 출간한 "공(KONG) 출판사"는 공가희라는 작가이자 시인이신 분이 만드신 1인 출판사입니다. 자신 있게 설명하기에는 딱히 아는 게 없기는 하지만 이 출판사의 대표작이 "어떤 OO" 시리즈입니다. "어떤, 작가"는 그중 다섯 번째 책입니다. 


   굳이 출판사를 언급하는 것은 1인 출판사가 책을 출간하고 가장 어려운 부분이 마케팅이라는 것이 늘 후두부 어딘가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이라는 것이 단순히 내용만 좋으면 많이 많이 읽히고 팔리는 제품은 아닙니다. 그냥 봐서는 똥인지 된장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일단 구매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봐야 찐인지 알 수가 있죠. 독자들은 결국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데 남의 추천을 마냥 믿기에는 이 시장이 클린 하지도 않을뿐더러 책의 선호도는 객관성도 드럽게 없어요. 취향이 하도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형국이다 보니 독자들은 애초에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선택하거나 믿을 수 있는 출판사 책을 반복적으로 구매하게 됩니다. 


   이런 특성은 규모가 작은 출판사, 1인 출판사들의 책이 독자들에게 선택받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됩니다. 잘 만들면 어련히 알아주겠지...라는 희망 고문을 당하지만 독자들이 그렇게 신중히 책을 고르기에는 쏟아지는 책들이 너무 많고, 좋은 정보는 한정적입니다. 요즘은 효용이 없어 많이 하지 않지만 대형 출판사에서 백 권 단위로 리뷰단 책을 뿌리는 일들을 1인 출판사가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여튼 책 리뷰에서 출판사와 출판사 사장님을 길게 언급하는 것도 매우 이상한 일이라 아래 링크로 대체하고 훌훌 텁시다. 거 뭐, '같이 먹고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하는 심정이라면 이해하실라나...


http://ch.yes24.com/Article/View/40186






3. 조영주 작가의 일


   책 내용이 다 진솔하고 재미있습니다만, 이 책의 초 농축 액기스 킬링 파트는 네 번째 "글 쓰다 문뜩 떠오릅니다" 파트입니다. 귀촌 일상이나 바리스타의 일, 여행기 등 모든 부분이 인간 조영주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자 조영주 로봇을 구성하는 입체적인 파츠입니다만, 독자들에게는 어쨌거나 작가로서의 조영주에 대해 더 궁금할 수밖에 없겠지요. 


   마지막 파트의 에세이 하나하나가 조영주 작가의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가치관, 소설 쓰기를 대하는 자세 등을 알려주는 소중한 기록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팬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내용들이라 할 수 있고, 잘 모르는 분들이라면 조영주 작가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는 힌트가 되는 글들입니다. 



작가의 일이란 감나무 밑에 드러누워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감이 떨어지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는 점 정도일 거다. 하지만 규칙이 하나 있다. 감을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된다. 나무를 흔들어서도 안 된다. 무언가에 손을 대서 억지로 떨어뜨린 감은 떫은 맛이 난다. 작가는 감의 맛이 최상이 되도록 만들어서, 반드시 떨어져야 할 때 떨어지도록 해야 한다. 너무 늦지 않게, 너무 이르지 않게 그 감이 자신의 입으로 떨어지게 하는 일. 그게 작가의 일이리라.

'요즘 나는 작가의 일을 한다' 전문


모든 일이 이러하지 않을까. 대부분 시작은 늘 어깨너머 보는 것이다. 그저 보고 흉내 내다보면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사람이 있고, 중간에 포기하거나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무언가를 보고 그 사람처럼 되는 것, 그것 또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중요한 재능 중 한 가지이리라. 아마도, 소설가에게는 이것이 가장 필요한 재능이 아닐까 싶다.

'소설가의 재능' 중


대부분의 경우, 작가에겐 동료가 없다. 작가는 각기 공간에서 어둠 속 스탠드 불빛 하나를 벗 삼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고독, 그것이 작가의 일이다. 그러하기에 많은 작가들이 SNS에 빠져드는 것이리라. (중략) 작가는 자신의 고독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힘을 낼 수 있는 흔치 않은 생물이기에.

'고독, 그것이 작가의 일' 중


새벽의 나는 늘 텅 빈 잔과 같아서 무엇을 담아도 그럴듯한 맛을 낼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마음에 든다. 아마도 이것을 가리켜 에드거 알란 포우는 새벽에 찾아오는 신성한 글쓰기의 병이라 일컬었으리라. 커피를 한 잔 마셔야겠다. 집안 가득 향을 풍기며 다음 글자를, 문장을, 문단을 써서 결국은 하나의 글을 완성해야지.

'새벽의 나는 늘 텅 빈 잔과 같아서' 중


무언가를 적으며 생각하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생각하고, 소설을 보다가도 생각하고, 넷플릭스를 보면서도 생각한다. 그래도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진담이기 때문이리라. 소설만큼 거짓말 그 자체이면서 진담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그런 깨달음을 얻으며 다시 한번 첫 문장을 상상한다.

'소설이란 첫술에 배부르는 흔치 않는 작업이더라' 중



   어떤 작가가 발표하는 소설은 그 작가가 구축한 새로운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어놓는 일과 같습니다. 독자가 그 파티가 마음에 들면 작가가 주체한 다른 파티도 가서 즐기면 됩니다. 다만 그 파티에 작가가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습니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작가와 소통하기 위한 창구로 파티에 대한 소감을 각자 적절한 공간에 씁니다. '재미있었다.', '무서웠다.', '주제가 마음에 들었다.' 등으로 말입니다. 


   어떤 작가가 발표하는 에세이는 의미가 좀 다릅니다. 작가의 집에 독자들을 초대해 파자마 파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독자들은 파티에 참석해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작가'에 대해 알아갑니다. '작가'의 일상과, 말과 행동, 생각과 가치관, 세계관을 공유하고 공감합니다. 그렇기에 에세이는 작가가 얼마나 솔직하고 진솔하게, 효과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조영주 작가의 "어떤, 작가"는 아주 훌륭한 파자마 파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조영주 작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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