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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Mar 17. 2020

인류 보완계획과 유년기의 끝

아서 C. 클라크 SF소설 [유년기의 끝] 책리뷰




1. 가장 모범적이고 이성적인 정통 SF의 거장, 아서 C. 클라크


   아서 C. 클라크를 거론하면 항상 세뜨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패키지 상품이 빅뜨리 아시모프와 하인라인 형님들입니다. 이 형님들은 명성만큼이나 다들 훌륭하지만 명확하게 구분되는 특징들이 있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은 거의 못 읽어봤지만, 로봇의 3원칙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과학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낙관적이면서도 과학만능주의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하인라인 형님은 천재적이지만 사상적으로 오락가락 극단을 치달으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입니다. 당시에는 여러 가지 비판에 시달렸을지 몰라도 이제 와 독자 입장에서 보면 종잡을 수 없는 스탠스가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반면 클라크 형님은 매우 반듯한 느낌입니다. 모범적이고 차분하면서도 치우치지 않는 이성적인 자세를 유지합니다.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단단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어떤 작품을 꺼내 들어도 실망하지 않을 믿음직한 느낌이 드는 작가입니다. 


   언제 읽어도 후지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드는 세대를 초월하는 안목이 돋보입니다. 다른 두 빅 유닛들이 인간적이든 작품 내용으로든 조금은 까칠하게 따질 여지가 있는데 비해 이 양반은 워낙 빈틈이 없다 보니 감탄하는 것 외에 길게 언급할 내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2. 가장 오래되었으면서도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최초의 접촉, 인류와 외계 존재의 관계


   [유년의 끝]이 발표된 시점이 무려 1953년입니다. 거의 70여 년 전인 당시에 인류가 우주의 지적 생명체와 조우하고 관계를 맺으며 진일보하는 과정들을 예측하고 상상하며 묘사했다는 사실이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유년의 끝] 발표 이후 수많은 작품에서 이 소설의 가설과 묘사와 설정을 차용하고 변주해왔는데, 지금 와 이 소설을 읽고서는 '다 아는 것들이라 새로울 것이 없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실로 무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우주의 지적 생명체와의 조우를 떠올릴 때 쉽게 생각하는 초딩적 발상이 '외계인이 인류를 공격하고 정복하려 한다. 먼저 해치워야 한다.' 뭐 이런 것들입니다. 세계의 경찰이라 자처하던 미국 같은 나라를 중심으로 손쉽게 소비되는 할리우드식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발상은 인간의 무지의 소치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외계 생명체에 대해 정보가 없고, 알지 못하므로 무섭고, 두렵기 때문에 해를 끼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일단 적으로 간주하는 시나리오입니다. 극적인 스토리를 써내기에 쉽다는 장점과 결합하면 무시무시한 외계인의 지구 정복 시나리오는 쉽게 그려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클라크옹은 이런 유치한 사고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당시로서는 매우 충격적이고 전위적인 방식으로 First Contact를 다루고 있습니다. 일종의 제안 같은 느낌입니다만, 만약 먼 우주에서 우리 지구로까지 효율적인 과학 수단을 이용해 나타날 수 있을 만큼 고등과학 기술을 가진 존재라면 무작정 무력으로 정복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인류보다 고차원적인 존재라면 보다 의미 있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겠냐는 다분히 지적인 발상이지요. 

   지금이야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되고 연구되기도 한 너무나 일상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무려 70년 전에 이미 소설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결론은 어떤 존재가 고차원적인 위치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폭력적인 수준을 넘어서야 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인간보다 덜 불안정하고 더 지적이고 합리적일 것이라는 가정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부분은 외계인의 존재와 방문 목적에 대한 흥미로운 대담집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 종말의 문제에 관하여"의 한 구절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매우 발전된 존재입니다. 영적으로 매우 발전했다는 것은 두 가지 능력이 매우 발전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혜와 사랑이 그것입니다. 지혜가 있어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이지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큽니다.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 종말의 문제에 관하여. 최준식,지영해. 김영사. 2015년]


   인류와 비교가 불가할 정도의 격차로 발전된 문명의 외계 생명체는 기술적으로도 상대가 안 될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차원이 달라 인류가 가진 가장 큰 문제인 이기심과 욕망, 비이성적 선택 등을 하기에는 너무 지혜롭기 때문에 인류를 도울 수 있다는 접근법입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에서 만나는 외계지성체도 결코 공격적이거나 파괴적이지 않습니다. 인류를 도와야 자신들도 생존할 수 있다는 설정입니다.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일종의 경계의 공간을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고, 지구가 오염되고 망가지면 자신들의 공간까지 영향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충분히 가능한 가설입니다. 

   이 소설 "유년기의 끝"에서도 격차가 큰 외계 존재 오버로드로 인해 오히려 인류가 가진 가장 큰 위협이자 문제인 국가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가진 한계(국가 간 이해관계와 이익 때문에 전 인류적인 문제에 대한 합의된 의견과 행동이 불가능하며, 인류를 위한 대승적 결정을 했을 경우 자국민 우선적 행동을 하지 않은 정부에 대한 즉각적인 투표로 정권을 교체해버리는 민주주의적 체제, 그리고 와 생산과 과소비로 자원을 낭비하는 자본주의적 경제체제의 문제들)를 단번에 해결해 버립니다. 그저 오버로드가 시키는 데로 하는 아이들이 돼버린 것이지요.

   클라크 형님은 인류에게 닥칠지도 모를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를 이런 방식으로 매우 그럴법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인간과 외계인 오버로드와의 관계를 인류의 해결사, 조력자, 컨트롤러 같은 위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냉전시대에 강력한 적을 상정하고 무찔러야 하는 명분을 프로파간다로 표현하기 바쁘던 시기에 클라크 형님의 "유년기의 끝"이 발표되었다는 점은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참으로 대담하고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3. 인류 보완계획과 유년기의 끝


   [유년기의 끝]에는 인류보다 탁월하고 고차원적인 존재인 오버로드와 이들 오버로드를 조정하는 한 단계 더 진화한 고등 존재인 오버 마인드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인류를 그대로 방치하면 지구를 망치고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하에 한 단계 진일보할 수 있도록 돕는 자세를 취합니다. 그런 전제하에 절대적으로 그들의 입장과 방식으로 인류를 돕습니다. 

   도움을 주는데, 어떻게 도울지 도움을 받는 당사자에게 묻지 않습니다. 인류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받아들이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지구에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일방적으로 실행합니다. 차분히 준비해 인류를 진화시켜 버립니다. 

   [유년기의 끝]에 등장하는 인류의 진화 방식은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잘 드러납니다. 그 유명한 "인류 보완계획"입니다. 다만 에반게리온에서 등장하는 계획은 인간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고, 결론도 정 반대로 나타납니다.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개별 개체가 하나가 되는 방식은 고차원으로 진화할수록 개개인의 욕구와 욕망에서 벗어나 온 세계와 물아일체가 나타난다는 힌두교적 해탈의 아트만 사상과도 연결됩니다. 이는 채 사장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서도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영화 "루시"를 들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스칼렛 요한슨의 미모에 가려 주제의식이 약해 보일 수 있지만 인간이 가진 뇌 사용량의 한계를 넘어서면 결국 개별 육체를 뛰어넘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문제는 아직 진화하지 않은 개개인의 인간이 이런 진화를 반기느냐입니다. 누가 자기 자신의 정체성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상황을 인류의 진화라며 기뻐하고 받아들이겠느냐 말이지요. 저는 싫습니다. ㅋㅋ 

   클라크 형님은 [유년기의 끝]을 통해 문제 많고 한계가 명확한 인간들이 한 차원 성장해 나아갈 방향 중 경우의 수 하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좋은 소설은 소설을 통해 저자가 던져지는 주제의식, 문제의식에 대해 독자들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답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우리 인류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를 풀어나갈 것이며 다음 단계로 나아갈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현생 인류의 발전과 보완으로 진행될지, 또 다른 신생종이 지구를 차지할지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에서처럼 인류가 유년기를 끝내고 먼 우주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리는 일은 사절입니다. 좀 불안정하고 문제가 많아도 저는 이런 인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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