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건우 작가의 "마귀" 책 리뷰
전건우 작가의 신간 "마귀"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보여줬던 작가의 장점이 빠짐없이 녹아 재미를 보장하는 호러 스릴러 소설입니다. 끝~~~이라고 하면 좋겠지만, 이렇게 한 문장으로 끝내기에는 할 말이 좀 많습니다. 대관절 어떤 점이 전건우 작가의 장점이란 말이란 말입니까?
전건우 작가의 뿌리는 누가 뭐래도 호러입니다. 그중에도 악의를 품은 미지의 존재와 이를 따르는 왜곡된 인간들이 원 플러스 원 세트로 등장해 주인공을 옥죄는 분위기를 내는데 독보적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아예 대 놓고 마귀, 사탄을 메인 빌런으로 등장시켜 스케일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이 엄청난 존재 마귀를 세상에 꺼내놓기 위해 애쓰는 인간 빌런 강 목사의 존재가 공포와 의문의 상황을 극적으로 만들어 나갑니다. 강 목사는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사타니즘을 연구한 특출한 존재입니다. 사탄숭배자와 사탄의 조합이 잘 떨어져 소설 내내 위기감과 긴장감을 유지해 줍니다.
여기에 다소 엉뚱하고 부족한 점이 많은 두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사고뭉치 고등학생과 특별한 과거를 가진 경찰의 조합입니다. 심성이 착하고 마음이 강하며 성장 가능성이 높은 주인공들의 케미가 볼만합니다. 이 둘의 활약이 균형감 있게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이들을 통해 호러 스릴러 소설에 하드보일드 액션 요소가 가미되어 가히 최고 수준의 가독성을 보장합니다.
한편, 전건우 작가는 원래 한국 전통 호러적 요소를 잘 활용하는 작가인데 이번 소설에는 퓨전적 요소를 차용했습니다. 동양적 주술과 서양의 사타니즘이 동시에 등장하고, 이를 믹스 앤 매치시켜 독특한 재미를 더했습니다. 이는 이런 유의 스토리가 다소 식상한 느낌을 줄 수 있는 한계를 극복하는 큰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공간적인 요소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작가는 종종 단편을 통해 고립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구사해왔습니다. 외부의 도움을 기대하기 힘들고 도망칠 수도 없는 공간적 한정은 독자들을 이야기에 집중하게 해주고 쫀득한 서스펜스 상황을 연출하기에 유리합니다. 이후 스토리를 통해 깊은 시골 마을이 배경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설명하는 친절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인 유려한 스토리텔링까지 더해 장르 소설의 최고 미덕인 읽는 재미가 완벽한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제가 읽은 작가의 모든 작품이 재미있었지만 때로 좀 늘어지거나 긴장감이 떨어지는 경우도 더러 있었는데, 이 소설은 전건우 작가의 커리어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소설 중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주로 전통적인 호러 요소를 적극 활용하는 저자의 이력을 생각하면 이번 작품에 드러나 서양적 사타니즘은 이색적입니다. 통상 인간의 악행에서 발생하는 억울한 원혼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이나 악한 인간 자체가 벌이는 소동이 사건의 주요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번 소설은 양상이 조금 다릅니다. 이미 여러 소설과 영화 등을 통해 충분히 소개되어 받아들이기에 어색함은 없지만 이 소설에서 활용한 사타니즘은 생각해볼 바가 좀 있습니다.
사타니즘이란 사탄숭배 사상을 말합니다. 이 사상이 드러나는 형태는 매우 다양한데, 사탄을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악마 자체를 숭배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반 기독교적이거나 타 종교의 모든 사상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한, 사타니즘의 중요한 대상 중 하나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되기도 합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타니즘은 일반적인 개념에 속합니다. 산골마을 소복리에 소동이 벌어지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종의 스포일러가 되기에 자세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만, 흑마술과 소환술 등의 서양적 요소가 차용되어 소설의 흥미를 더합니다. 자꾸 서양적이라고 하는 이유가 단순히 정성으로 빌면 뭔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응하는 대상을 내놓아야 하는 등가 법칙의 지배를 받는 특징을 잘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 사건을 주도하는 세력과 대응하는 주인공들이 매우 평범하고 현실세계에서 별 볼일 없다는 점이 미지의 악이 더 도드라지게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위태위태한 상황 속에서 부족한 사람들이 힘을 합쳐 근근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이야말로 현실에 기반한 장르소설의 각종 미덕 중 최고봉이 아닐까 싶습니다. 귀신과 마귀, 빙의 등이 난무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판타지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본질은 평범한 주인공들이 악전고투해 살고자 하는 하드보일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독자가 이 소설에 밀착해 공감하고 마지막까지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평가가 다소 갈릴만한 지점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각종 설정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너무 익숙하고 때로는 식상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악마 숭배나 흑마술, 소환과 부활 등의 각종 설정도 이미 여러 작품을 통해 익숙한 설정입니다. 고립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믿기 힘든 사건도 여러 작품들을 통해 흔히 만나볼 수 있는 구성입니다.
비정상적 종교 집단과 이들의 기행, 이를 저지하려는 퇴마사 무리 등은 무리 없이 받아들일 만큼 익숙해 대부분 독자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기 어렵습니다. 이런 문제로 인해 '그냥 무난하다', '별 특별할 것이 없다', '식상하다' 등의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평가하는 독자조차도 이 소설을 아마 재미있게 호로록 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중들이 창작물을 평가할 때 흔히들 '독특하다' , '참신하다', '차별적이다' 등의 표현을 많이 씁니다. 창작이라는 작업은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가 있으니 당연히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대중이 과연 남다른 참신함을 선호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세상에 본 적 없는 독특한 창작물이 등장했을 때, 대중이 한결같이 열광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다수의 대중은 매우 익숙함 가운데 약간의 변화를 더 편안해하고 즐기는 경향이 짙습니다. 평론가와 대중의 평가가 갈리는 지점에 이 문제가 있습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한국적 호러를 써온 전건우 작가 역시 벗어날 수 없는 고민일 것입니다.
작가들은 글을 통해 예술의 영역에 발을 담그고 있기는 하지만, 생활인으로 생계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자신만 쓸 수 있는 영역을 구축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너무 중요하지만, 당장 생활이 안정적이어야 그것도 가능한 것입니다. 생계를 담당하는 계층과 철학과 저술을 담당하는 귀족으로 나눠진 고대가 아닌 이상에야 이런 긴장감을 버리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작가들은 돈이 되는 글을 써야만 합니다. 게다가 각종 매체의 발달로 글을 통해 돈을 벌기란 더욱 어려워지고 작가의 문턱은 턱없이 낮아지고 있는 이중고를 넘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익숙하면서도 때로 신선하고 뭔가 남다른 미묘한 경계선을 잘 찾아내고 그 길을 비집고 나가 대중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소설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전건우 작가의 이번 작품 "마귀"는 매우 훌륭한 균형감을 가지고 있는 수작입니다.
이 소설의 스코어가 어떻게 될지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내용만으로 볼 때 이 소설이 전건우 작가의 커리어에 중요한 작품이 될 거라는 판단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소설에 대한 개취는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지만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