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돈다돌아 Aug 05. 2020

정겨운 학원 미스터리의 귀환

[귀문 고등학교 미스터리 사건 일지] 책 리뷰




1. 모든 이야기의 근원, 학원 미스터리의 즐거움


   중, 고등학교 시기는 한창 호기심 많고 풍성한 이야기 거리를 간직한 시기입니다. 그렇기에 학원 미스터리는 다양하고도 풍성한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곤 합니다. 학원 미스터리 소설의 재미는 이런 이유로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그 이름도 기괴한 "귀문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개성 강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귀문 고등학교 미스터리 사건 일지"는 척박한 국내 추리소설계에서 자기 자리를 다져온 다섯 명의 작가들이 의기투합해 출간한 소설집입니다.


   "귀문 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기본적인 설정만 공유한 채로 각자의 개성에 맞게 자유롭게 쓴 이야기를 모은 연작소설인 이 작품은 귀문 고등학교라는 특수한 장소 외에 각 작품에서 공유하는 설정이 딱히 없습니다. 그렇기에 각 소설들을 읽다 보면 신기할 정도로 다채로운 이야기가 쏟아져서 색다른 재미가 가득합니다.


   통상 학원물의 경우 학원 내의 구성원들끼리 일어나는 일을 다루면서 내부적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귀문 고등학교 미스터리 사건 일지"의 경우는 학원 내의 문제를 넘어서는 사회적인 부분까지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어 이야기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은 편입니다. 그리하여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뿐 아니라 사회파 추리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장점까지 함께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발생하는 근본적인 부담감, 사회 속에서의 어려움과 한계, 구조적 모순 등 독자가 생각해볼 만한 사회에 대한 문제점까지 다루고 있어 학생들은 물론 어른들이 읽기에도 좋습니다.




2. 작가들의 독특한 세계관, 다양한 이야기의 즐거움


   이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읽다 보면 참여한 작가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강하고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분들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작가 데뷔부터 남다른 이력으로 관심을 모았던 김동식 작가의 "한 발의 총성"은 비교적 전형적인 학원 추리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전개는 무척 귀엽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서 연작 소설의 첫 작품으로 딱 좋은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진행은 부드럽고 마지막 반전은 상당히 짜릿한 완성도 높은 작품입니다.

 

   항상 작품 속 캐릭터에 대한 묘사를 깊이 있게 하는 장점을 보여왔던 조영주 작가는 이번 작품 "사이코패스 애리"에서도 역시나 두 명의 여주인공에 대한 촘촘하고도 실감 나는 묘사로 이야기의 긴장감을 더하고 있습니다. 사이코패스라는 소재는 제법 식상한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전개 방식, 사이코패스를 지근에 둔 주인공이 마치 관찰자 시점처럼 서술하는 이야기 구조 등, 살짝 변형을 줌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더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대중 소설은 익숙함 속에 약간의 새로움, 신선함을 조합하는 것이라고 볼 때, 아주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딱 떨어지는 결말보다 애틋한 열린 결말로 마무리한 부분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다작 "정명섭" 선생의 작품 "또 하나의 가족"은 한때 많이 회자되던 가출팸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입니다. 마치 학원 미스터리 연작을 기다리며 준비해놓은 이야기를 아낌없이 풀어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학교 내 문제를 넘어서는 사회파 소설로 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거리로 내 몰리는 안타까운 현실은 물론 그들이 모여 이룬 공동체조차 어른들의 사회와 다를 바 없이 냉혹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상세한 묘사로 부각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여기에 학생과 탐정, 경찰까지 등장해 이 문제가 단순히 학교 내의 문제로 치부하기 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우리의 문제로 보아야 할 근본적인 문제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스토리텔링이 탁월한 정해연 작가의 "짝 없는 아이"는 손이 닿으면 상대방의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읽게 되는 능력을 가진 교사를 등장시켜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나가는 신비로운 이야기입니다. 설정만 보면 뭔가 상당히 익숙하지만, 읽다 보면 기존 소설들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 역시 대중적으로 잘 짜인 소설입니다. "죄책감을 읽는다"라는 설정에 걸맞게 인간의 죄책감에 대한 깊은 고민을 잘 펼쳐내고 있습니다. 한편, 소설의 주인공을 살려 시리즈를 계속 써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까운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러 소설 분야에서 최고의 방점을 찍어 나가고 있는 전건우 작가가 쓴 "기호 3번 실종 사건"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섯 작품 중에 가장 정통 추리소설 다운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학생회장 선거라는 이벤트를 중심으로 기득권 세력의 2세와 다양한 배경을 지닌 학생들 간의 입장 차이에서 오는 문제를 특별한 실종사건에 버무린 좋은 작품입니다. 탐정 추리소설에 주로 등장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밀실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스타일이 어린 시절 읽었던 탐정소설을 연상시키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전건우 작가는 호러 소설 전문이지만 추리 미스터리 소설이 더 잘 맞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입니다.




3. 개성을 넘쳐나는 자유로운 재미 Vs 통일성이 부족한 한계


   앞서 기술한 것처럼 이 소설집은 작가 개개인의 개성이 충분히 드러나는 자유로운 이야기들이 돋보이는 소설집입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집을 읽어나가면서 저의 전두엽 우 하단 즈음에서 느껴지는 의문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이 정도의 자유도를 허용할 거라면 왜 굳이 "귀문 고등학교 미스터리"라는 공통점으로 묶었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굳이 같은 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라는 설정으로 엮여야만 할 명분이 딱히 없습니다. 명분이 없어요 명분이...


   그리하여 이 소설들을 연작소설로 읽어야만 하는 독자인 제 입장에서는 귀문 고등학교라는 학교에 나름의 공통의 규칙이나 주요 캐릭터들을 공유하는 방식 정도의 통일성은 있었어야 본 제목에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 아쉬움이라는 것이 각 작품들의 수준이 낮다거나 재미가 없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굳이 모아서 "우리가 남이가?"라고 하려면 각 소설들이 묶여야만 하는 공통점, 교집합이 조금은 더 있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방식의 연작 소설집은 독자들에게 다양한 작품을 읽는 재미를 보장합니다. 좋은 작가, 좋은 작품으로 엮어 내는 한 권의 책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완성도를 높이려면 각자 쓰시기 전에 조금 더 공통분모에 대한 설정들을 공유하는 작업을 선행해 주면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작업을 통해 이 소설과는 다른 또 다른 재미가 넘치는 작품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