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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Aug 17. 2020

저열하고 인간의 속내를 치밀하게 묘사하는 스릴러 소설

정해연 작가 [두 번째 거짓말] 책 리뷰



1. 한국형 스릴러, 지루할 틈 없이 휘몰아치는 이야기


   정해연 작가의 "두 번째 거짓말"은 요다 출판사의 요다 픽션 두 번째 작품입니다. 두 번째 작품이라 두 번째 거짓말.. 일리는 없지만, 우연치 않게 그렇게 되었군요. (시작부터 헛소리를...) 정해연 작가의 소설은 항상 초반부터 강렬한 임팩트로 마지막까지 숨 쉴 틈 없이 몰아가는 특징이 있습니다. 팽팽한 긴장감을 이야기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계속 이어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이 양반은 그 어려운 것을 자꾸 해냅니다.


   시작부터 멀쩡한 사람이 죽으면서 푸다닥 뛰어다니는 사건으로 시작한 이 이야기는 독자가 채 마음의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멱살을 움켜지고 스토리 속으로 집어던집니다. 어벙벙한 상태로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이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와 미처 몰랐던 사실들이 하나 둘 밝혀지면서 어어어.. 하는 사이에 이야기는 수많은 변주를 거치면서 어느새 결말로 치닫습니다.


   이번 신간 "두 번째 거짓말"을 읽고 있으면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게 됩니다. 때로는 등장인물을 동정하고, 한 편으로는 애가 타며,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합니다. 작가가 풀어놓는 이야기 속에서 허둥거리며 인간의 희로애락 사이를 오가는 경험은 장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최상의 즐거움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읽으면서 '역시, 내가 이 맛에 스릴러를 읽는 것 아입니꺼?'라며 누가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데 혼잣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스릴러나 하드보일드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장르를 물으면 항상 하드 SF라고 대답하곤 했던 저를 생각하면 뛰어난 수작 앞에 저의 취향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순박한 모습으로 방송용 마이크 높이가 낮자 자신의 몸을 낮춰 마이크 높이를 맞추는 작가의 겸손한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아마도 작품 속 무시무시한 묘사와 대비되는 순한 맛의 외모 때문일 것입니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진부한 교훈도 떠오르고 말입니다.




2. 저열하고 내밀한 인간의 속내를 치밀하게 드러내는 탁월한 묘사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의 지저분한 내면을 묘사하는 능력은 정해연 작가의 가장 큰 장점으로 손 꼽히는 점입니다. 이 이야기만 하면 정해연 작가의 첫 장편소설 "더블"을 읽었을 때의 충격이 되살아납니다. 그 충격과 놀라움은 저도 모르게 절친에게 책을 사서 건네주며 꼭 읽어보기를 권하는 전도 행위로 발현되었을 정도였습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다음 작품이 기대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했던 기억도 있지만 그 와중에도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며 스토리에 엮어 내는 작가의 능력만큼은 여전히 발군이었습니다. 이후 출간된 작품을 놓치기도 했지만 이 소설은 발표된 작가의 작품을 모두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할 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 쉬울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이유는 그만큼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다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묘사의 편의를 위해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특징을 단순화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해연 작가는 인간의 다층적인 면을 더욱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의 재미를 더하는 정면승부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정해연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정확히 어떤 성격이라 규정하기 어렵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인간은 원래 한마디로 정의할 수없이 복잡한 존재입니다. 다만, 특정한 면을 강렬하게 부각함으로써 입체적이면서도 독특한 인간의 내면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특히 여주인공 미령의 감정과 태도 변화를 살펴보면 작가가 등장인물을 묘사하는 다채롭고 치밀한 방식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등장인물의 선택과 감정을 따라가며 공감하기도 하고 염려하기도 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3. 사회의 부조리와 복잡다난한 한계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사회파 스릴러 소설


   사회파 소설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두뇌 싸움에 집중하는 기존 추리소설과 구별하는 특징으로 등장한 표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현대 장르소설 대부분은 사회의 문제와 모순 속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해연 작가의 스릴러 소설인 이 작품에 굳이 '사회파'라는 표현을 넣은 것은 작가가 그리는 소설 속 세계가 우리가 겪는 이 사회의 문제와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고, 소설을 읽는 중에 독자로써 현실 세계 속에서 느끼는 부조리와 한계를 여지없이 느끼며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회파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발생한 범죄의 범인과 범행 수법에 집중하기보다는 범행 동기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를 돌아보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소설은 살인 사건이 일어났지만 누가 범인인지 보다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는지, 이런 비극을 막지 못하는 사회는 책임이 없는지, 어떻게 우리 사회가 이런 일들을 막아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혹자는 이 소설을 두고 진부하고 식상한 소재나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비평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연 스릴러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차용되어 왔던 성폭력의 문제와 디지털 성범죄, 청소년 범죄, 왕따 등의 문제가 식상하다는 표현으로 외면할 수 있는 문제인가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문학에서 더 다루고 목소리를 높여야 할 분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소재가 소설 속에서 다루어질 때 어떻게 가공되고 전달되는지의 문제입니다. 정해연 작가는 압도적인 재미로 식상함을 덮어 버리는 역량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여아 둘을 키우는 부모기에 더 감정이입을 했을 수도 있지만 장르적 재미와 주제의식, 문제의식, 캐릭터 묘사 모든 면에서 훌륭한 대중소설을 또 한편 발표했다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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