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잘 안다고 착각하기 쉬운 가족간 대화와 소통하기
가끔 부모들이 이렇게 얘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애는 부모인 내가 제일 잘 알지요. 우리애는 이렇답니다." '응? 즌혀 안 그런 거 같은데? 뭐지?' 그럴 때마다 "정말 그럴까요?"라고 되묻고 싶어집니다. 우리 부모님도, 장인 장모님도 예외 없이 자식에 대해서 가장 잘 안다는 세상에서 가장 흔한 착각을 하고 계시더군요. 보통 부모들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내 아이란 완존 "어린 시절"의 모습인 경우가 많습니다. 각인된 모습을 계속 가져가는 거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중요한 성격 형성 기간인 어린 시절에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라면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사회화하면서 변신 괴물로 성장합니다. 가장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시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중요한 시기에 아이들은 친구들이나 온라인 매체 등에 정보를 의존하기 때문에 부모님과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부모는 그 단절되는 시기를 기점으로 아이에 대한 인상이 멈춰 버리는 것입니다.
물론 저희처럼 퓨어하고 험블 하며 헌신적이고도 지혜로운 부모는 아이들의 변화를 잘 지켜보고 단절되니 않도록 사려 깊게 배려하게 됩니다.(일단 아직 어리니 그럴 거라고 우기고 보자) 흠... 여튼, 아이들이 훌쩍 자라면서 반 어른이 되어가는 시기에 대화가 단절되는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그럴 때도 여전히 아이 탓만 하고 '우리 애는 내가 젤 잘 알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지만요.
"어떻게든 대화한다"의 저자 나카야마 준지 씨도 그런 부모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독특하게도 저자는 자기 딸을 세상 누구보다 사랑한다는 자신감과 자기애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딸이 중학생이 되면서 아빠를 외면하기 시작하자 당황스럽습니다. 물론 저자가 딸을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겠지요. 그 사랑을 받아내는 딸의 입장이 어떨지에 대해서는 좀 둔감했던 모양입니다. 책 전반에 나타난 상황이나 딸과의 대화를 봐도 그랬겠다 싶습니다.
굳이 에니어그램 툴을 들이대자면 책 전반에 나타난 이분의 성향은 머리형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딸아이의 감정이나 입장을 이렇게까지 모르기가 싶지가 않거든요. 통상 아빠들은 회사생활이나 자기 시간을 쓰기 바빠서 아이에게 중요한 시기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보니 아이에 대해서 잘 모르게 되는데 저자는 그런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냥 자기 자신의 방법으로 아이를 사랑하는데 아이가 싫어해요.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서 둔감한 것이죠.
머리형답게 그 상황을 돌파할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바로 매 주말 시간을 정해 딸과 다이-다이(머리와 머리를 맞대다는 뜻의 전문용어)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대화 주제를 정해서 말입니다. 그리하여 매주 대화를 진행하게 되고 다행히 생각보다 아이가 많이 자랐으며, 자신의 예상보다 생각이 더 다양하고 체계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부모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과 노하우도 효과적으로 전해주면서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사이가 됩니다.
사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부모 자식의 관계 개선 방법 등의 핵심 주제보다도 제가 보고 싶은 것만 먼저 보았습니다. 부모의 성향은 어떻게 딸아이는 어떤 기질이고 중간에 등장하는 엄마와 할아버지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이 가족의 전반적인 관계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쉽게 어울리기 힘든 개성이 가득한 이 가족이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은 어쨌거나 개선을 위해 노력을 했다는 점이고, 이는 이집 아빠 나카야마 준지 씨의 가장 빛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아이들에게 애를 많이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를 키워보니 역시나 내 아이는 특별하고 더욱 귀해 보이기도 하고, 내가 못 가진 더 나은 환경 속에서 성장하게 하고 싶은 욕심도 생기게 됩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교육에 올인해서 말년이 비참한 노년들의 사례를 보면서도 말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 같은 경우는 "공부 잘해서 좋은 회사 취직해봐야 재벌들 머슴살이하는 거랑 똑같아!" 라거나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잘 안되면 우리랑 대충 같이 살면서 계속하고 싶은 거 하면 돼. 걱정 마. 정신승리만 하면 행복해!"라는 식으로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부모의 성향과 교육에도 불구하고 지멋대로 뭐든 열심히 하는 아이가 얻어걸려서 이제 고작 10년 남짓 산 친구가 목표를 향해 막 전진하는 기막힌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저는 요즘 첫째에게 많이 배워요. 그래서 예전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부모가 이렇게 나이브하게 살아서 민폐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둘째는 노세노세 어려서 놀아 타입이라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쓸데없는 소리가 길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책의 가장 큰 존재가치는 아마도 세상 모든 부모에게 힘든 존재인 사춘기 아이와 관계를 풀 수 있는 단초가 되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대화 주제를 직접 적용해봐도 좋을 것입니다. 또한, 부모 자식 간의 대화에서 조심해야 할 몇 가지 규칙에 대해 확인하는 것도 매우 유익합니다.
그래서 어떤 대화를 하면 좋은가 하면 정해진 것은 없지만 당장 아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로 시작하는 것이 좋고, 조언이나 지식 전달보다는 "듣기"를 먼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함께 대화하기에 익숙해지면 청소년기 아이가 고민하면 좋을 정체성 문제나 사회문제로 주제를 확장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더 자세한 것은 책으로 만나기로 합시다. 스포일러를 너무 하면 책이 안 팔릴 테니 말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아버지로 손꼽히는 저 같은 사람은 굳이 안 읽어도 될 책입니다. 그러나 워낙 험블하고 퓨어 한 인격을 소유한지라 그래도 더 배우고 부족한 점을 채워야 한다는 겸손한 자세 때문에 읽게 된 것입니다.(농담으로 넘기기 힘든 헛소리려나?) "어떻게든 대화한다"라는 아이와 관계 개선에 대한 정보도 깨알 같지만 읽기 편한 대화체이고 후반부에는 엄마와 할아버지까지 온 가족이 가세하기 때문에 적용해볼 만한 가능성을 많이 보여주는 의미 있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