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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Jun 22. 2018

암막의 게르니카

반전 주제가 강렬한 하라다 마하의 아트 서스펜스 소설



1. 스페인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 융단폭격, 걸프전쟁, 9.11 테러, 이라크 공습, 그리고 <게르니카>


    "낙원의 캔버스"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하라다 마하는 뉴욕 근대 미술관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미술품과 미술계에 얽힌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긴장감 넘치게 잘 쓰는 작가입니다. 물론 전혀 다른 성격의 소설도 많이 쓰신 것 같지만 일단 제가 읽은 작품은 "낙원의 캔버스"에 이어 이 작품이 두 번째입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유명한 미술가와 미술작품을 소재로 그려나가는 이 소설은 하라다 마하만의 대단한 장점이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게르니카에 대해 자세히 몰랐는데 작품을 통해 알게 되면서 찾아보니 참으로 어이없는 슬픈 역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자는 스페인 내전 당시 나치 독일의 폭격에 의해 마을 인구 1/3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학살 당한 스페인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 그리고 그 사건에 분노한 피카소가 그린 초대형 작품 "게르니카", 2003년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이라크 공습을 개시하며 기자회견을 했던  UN 본부 뒤로 걸린 "게르니카"의 태피스트리(복사본)가 암막에 덮인 사건 등을 모티브로 이 대단한 미술품과 피카소의 주변 인물들에 얽힌 이야기를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풀어내고 있습니다. 


   "암막의 게르니카"는 전작 "낙원의 캔버스와" 상당히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트 서스펜스 미스터리 장르라는 생소하면서도 독특한 분야를 개척하면서 본인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과거-대과거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던 전작의 스타일보다는 조금 구조가 심플해졌지만 과거와 현재 이야기를 교차로 전개하는 방식은 여전했고, 과거 인물과 사건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과 연관성을 짜임새 있게 구성한 면은 진일보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미술작품과 작가, 미술계를 관통하는 흐름에 맞게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구성해내는 능력은 하라다 마하의 특별한 장점입니다. "암막의 게르니카"에서도 그 장점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한편으로는 전작과 결이 조금 다른 소설이기도 한데 작가가 착안한 소재의 특성 때문인지 이 분이 의도적으로 소설의 방향을 이렇게 잡았는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2. 예술, 전쟁과 싸우는 무기 그리고, 소설


   모든 소설이 프로파간다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이 소설은 그중에서도 매우 강렬하고 격렬하게 적극적으로 계몽적입니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은 "반전"이고 어떠한 형태의 전쟁, 테러, 폭력은 일체 일어나지 말아야 하며 우리는 적극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술은 장식이 아니다. 적에게 맞서 싸우기 위한 무기다."라는 파블로 피카소의 말을 극적으로 형상화한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유사 이래 서로 증오하며 싸워왔다. 어느 시대에도 전쟁이 있었다. 전쟁을 벌이는 것은 늘 위정자였으며, 시정 사람들은 그저 거기에 말려들어 당혹스러워하고 슬퍼하고 상처 입을 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제부터는 자신들의 목소리로 평화를 부르짖어야 한다. 싸워야 한다. ‘전쟁’ 그 자체와. 자신들의 힘으로. 그거야말로 <게르니카>에 담긴 메시지였다. p331~2   


   저자는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를 빌어 인류가 지난한 세월 동안 질리지도 않고 변함없이 지속해온 권력자들의 파괴적인 행태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모든 형태의 자유를 핍박하는 불의에 대항하는 강력한 수단인 예술의 역할에 대해 강조합니다. 


<게르니카>는 반전의 심벌이자 ‘피카소의 전쟁’의 상징이야. 그리고 그건 ‘우리의 전쟁’의 상징이기도 해. 피카소의 전쟁. 그것은 곧 우리의 전쟁. 알겠니, 루스? 피카소가, 우리가 싸우는 적은……‘전쟁’ 그 자체란다. 우리의 싸움은 이 세계에서 전쟁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악의 연쇄가 사라지는 날까지 계속될 거야. p245~246


    소설 전반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반전'에 대한 메시지는 매우 선동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미래를 위해 마땅히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 주장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저자가 소설 속에 그리고자 했던 인류 공공의 적과 맞서 싸우는 예술품의 위대한 힘은 소설이라는 문학작품으로도 그대로 발현됩니다. 바로 저자의 작품 "암막의 게르니카"라는 소설로 말이죠. 게르니카가 반전의 상징이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상징적인 존재인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3.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약점들, 그럼에도 시의적절한...


   사실 전작인 "낙원의 캔버스"도 너무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중반부가 제법 지루해진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암막의 게르니카"의 경우 장르소설로써 읽는 재미면에서만 보자면 "낙원의 캔버스"보다 더 단점이 많이 보이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주제의식이 지나치게 과하다 보니 저자가 힘을 너무 많이 줬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도 매우 동의하는 주제기도 하고 마땅히 주장할 만한 내용이기에 부담스럽거나 불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재미로 소설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무척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이 과하게 들어갔다는 생각은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형상화된 문장이나 문단이 소설 한편에 많게는 대여섯 이상 거의 똑같은 표현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사실 조금은 짜증나는 부분이었거든요. 마치 어딘가 장기 연재를 하면서 지난 연재에 대한 줄거리 정리를 하기 위해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는 것처럼 여러 번 반복적인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게 좀 과합니다. 말미에 가서는 '하아... 적당히 좀 하지. 또 똑같은 말이군...'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까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유기적인 구조는 참 좋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스토리 자체는 매우 단순한데 이야기가 너무 길어요. 좀 더 간결하게 압축할 수 있었다면 소설이 나타내고자 했던 주제가 더욱 강조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습니다. 간단한 스토리를 길게 이어가다 보니 필연적으로 이 소설도 조금 지루한 면이 있었습니다. 같은 내용에 대한 설명을 여러번 반복하는 것도 뭔가 타이트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남기는 큰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막상 읽고 있는 부분 자체는 상당히 긴박감 있고 흥미롭게 이어지는데 전체적으로는 좀 늘어졌다는 생각이 드는 묘한 단점이 있었어요. 좀 더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었더라면 훨씬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이자, 서로 다른 체제의 오랜 대치국면이 해소되고 있는 역사적인 시기에 매우 시의적절한 소설을 읽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따뜻해지는 날씨만큼이나 서로에게 남은 오랜 앙금과 난제들이 녹아내리고 독일처럼 장벽이 무너져 내리는 기적을 기대합니다. 이제는 기대해도 될 것만 같습니다. 이 소설의 주제의식처럼 모든 국민들의 결속을 통해 진정한 승리와 자유를 얻는 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싸워야 할 상대는 정부도 파시즘도 아닌 전쟁, 폭력, 증오다. 무기를 들지 않고 사상과 문화와 예술의 힘, 그리고 사람들의 결속으로 이러한 어둠의 존재와 싸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진정한 승리와 자유를 가져다준다.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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