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인식가 태도에 대해
"오늘 참석 못하는 사람 없지? 이유 불문 100% 참석이다.", "아 그 XX는 또 애 보러 가야 된다고 하겠지. 요즘 것들은 개인적이야. 이기주의자야 이기주의자. 단합이 안돼." 마치 삼류 단막극에나 나올 법한 이런 대사는 불과 몇 달 사이에도 종종 듣고 있는 말입니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A.I가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이 엄혹한 시대에 변하지 않고 독야청청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기성세대의 낡고 헌 집단주의적 사고일 것입니다. 많은 조직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갈 길이 멀게만 보입니다. 제대로 된 변화를 위해서는 생각이 바뀌어야 하지만, 경험적으로 인간이란 한번 틀어박힌 생각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람 자체를 바꾸지 않고선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강제성을 가장 많이 띄는 집단이 직장이다 보니 주로 직장을 예로 들 수밖에 없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런 식의 '우리'를 위해 '나'를 희생하고 포기하라는 요구는 심심치 않게 겪게 됩니다. 이런 주장을 강하게 하는 부류는 주로 '나'와 '우리'가 경계 없이 뒤섞인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좀 더 나가면 '나'와 '너'의 차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너는 왜 나처럼 하지 않느냐?'라는 어린애 같은 생각을 당연시하는 것이죠. "'나'와 '너'의 순서만 바꾸면 당신이 저 사람을 따라 해야 하는 거라고 이 한심한 사람아..."라고 말해주고 싶게 만드는 그런 사람... 주변에 꼭 있지 않나요? 이런 분들이 내 편과 내 편이 아닌 적을 규정하고 공격하고 극단으로 치닫게 만드는 주범입니다. (세상 퓨어하고 거룩한 품성을 타고난 저도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비슷한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제 기억 속에 저를 가장 경악하게 했던 잊지 못할 기억은 역시나 이전 직장을 관둘 때 당시 부장이었던 직장 상사의 충고였었지요. 우리 회사가 글로벌 베스트가 되면 본인 인생도 성공하는 건데 지금 포기하는 건 너무 안타깝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부장님의 충고가 저의 퇴사를 결심하는데 크게 한몫했다는 것을 본인은 아직도 모르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그분은 지금 얼마나 행복하실지 만날 수 있다면 한번 물어나 보고 싶습니다.
문유석 판사님의 "개인주의자 선언"은 대한민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 속에 살아가는 가장 이상적인 태도로 합리적 개인주의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집단주의적인 군대식 사고방식이 얼마나 뿌리가 깊은 사회인지 발전된 서구사회에서는 당연히 하는 개인주의를 "선언"씩이나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선언의 의도는 서문에 해당하는 "프롤로그"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사회에는 공정한 룰이 필요하고, 그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위해 다른 입장을 가진 타인들과 타협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믿는다. 집단 내 무한 경쟁과 서열 싸움 속에서 개인의 행복은 존중되지 않은 불행한 사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이민'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으며, 감히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를 꿈꾼다. 1%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합리적 개인주의자에 대한 설명은 이 책의 초반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초반을 읽고 중반으로 넘어갈 즈음에는 마치 단편 소설집에서 단편 하나의 제목을 책 제목으로 뽑아 표제 작을 선정하는 것처럼 개인주의자 선언에 대한 이야기를 초반에 조금 하고 나머지는 이런저런 저자의 기고문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읽다 보니 결국 타인을 돌아보고 나아가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필요하면 행동하는 사람이야말로 합리적 개인주의 자라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맥락에 다양하게 연결된 글들이었습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책 전체의 주제를 포괄하는 정의는 아래 몇 문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이루어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이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수적임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사회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고, 자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음을 수긍하고, 더 나아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한다.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의식이 균형을 이룬 사회가 바로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다. 12%
실제로 이 책은 사회가 장악하고 있고 아직도 여전히 놀라운 힘을 발휘하고 있는 전체 집단주의에 당당히 맞설 것을 주장함은 물론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타인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고 말할 것이 아니라 사려 깊게 바라보고 배려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불편한 진실에 굴복하거나 눈 감을 것이 아니라, 또는 타인이 주입하는 시각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냉정하고 차분히 바라보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 잔존하고 있는 해결하기 힘든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냉소적으로 '원래 그런 거'라는 둥, '어쩔 수 없다'라는 둥의 의미 없는 비판의 의미 없음을 지적하는 부분은 상당히 와닿기도 하면서 좀... 쫄렸습니다.
팔짱 낀 채 '한계''본질''구조적인 문제' 운운 거창한 얘기만 하며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진짜 용감한 자는 자기 한계 안에서 현상이라도 일부 바꾸기 위해 자그마한 시도라도 해보는 사람이다. 94%
위에 언급한 저자의 말은 "찌질한 투덜이 키보드 워리어들"을 지칭하는 것 같습니다. 딱히 행동 안 하기로는 저도 남부럽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부끄러운 마음이 일었습니다. 니미...
3.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세상...
에.. 또... 저는 문유석 판사 생각의 대부분과 그의 성향의 상당 부분이 나와 겹친다는 데에 경이로움까지 느끼면서 이 책을 읽었습니다.(나름 패러디인데 이해 못하면 낭패...) 책 전반에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가지 주장과 생각할 문제를 던져주고 그에 대한 저자의 입장과 주장을 명시하고 있습니다만, 어느 한 부분에서도 '음.. 이건 좀 아니지 않나?'라는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주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저자가 특정한 사상이나 생각에 골몰해 있는 사람이 아니며 책 제목처럼 참으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면서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러니 좋은 건 따라 하고 보는 저 같은 따라쟁이가 당연히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저자가 판사사는 전문 직종에 있으면서 얻은 경험과 해외 출장 등을 통해 생각했던 이슈들도 고민할 것이 많았습니다. 법정에서 다툼이 있을 경우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이야기도 와닿았습니다. 북유럽 국가들이 사회보장에 대해 진일보한 태도를 갖게 된 이유와 그 제도를 곧바로 우리나라에 적용하기 힘든 이유. 그리고 문제투성이인 미국이라는 국가가 가진 이면의 힘에 대한 설명도 무척 유익했습니다.
가장 직접적으로 와닿은 부분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 "결과책임론"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특정 상황에서 A를 선택해서 행동하면 왜 B를 선택하지 않았느냐는 질책이 돌아옵니다. 유사한 상황에서 B를 선택하면 예상하는 데로 왜 A로 선택했어야 하는데 B를 한 거냐며 책임을 묻겠다고 합니다. 이게 아주 좆같은 논리입니다. 이런 더러운 사고는 일종의 꼬리자르기적 발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떻게 더 좋은 방법을 찾을 것인 가에는 관심이 없고, 일어난 일에 대한 감정적 배설을 하고 모든 비난을 특정 개인에게 떠넘기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게 아주 간편하고 다수가 빠져나가기 가장 손쉬운 비겁한 방법입니다. 잘 관찰해 보면 '어떤 식이든 문제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어야 되는데 일어났으니 네가 좀 책임져라'라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결과책임론'이 지배하는 사회다. (중략)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이런 문화가 최악과 차악 사리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은 책임자를 결정 장애와 도피 심리로 몰아넣는 측면이 있음도 직시해야 한다고 본다. 영미식의 실용주의 가치관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전제 아래 해야 할 의무를 다 이행했다면 과감하게 면책한다. 결과가 제아무리 중대하더라도 말이다. 이것은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지게 하는 사회의 비결인지도 모른다. 95%
결과책임론의 한계를 극복하고 각자의 책임을 다하도록 하기 위해 미국 사회의 장점을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의 전환은 더 이상의 세월호 사고 같은 대형 참사를 막는 구조적인 해결 방안의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감 있게 일하고,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기도 합니다.
친일 자본으로 시작한 대한민국 정권은 여전히 친일, 친미의 아성이 무섭게 작용하고 있고, 특정 대기업이 정치, 경제, 사회를 손아귀에 쥐고 쥐락펴락하며 개인들을 비웃고 있는 듯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개인이 스스로를 지키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를 위해서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고 서로를 지켜야 할 때입니다. 이런 시기에 문유석 판사의 책 "개인주의자 선언"의 의미는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