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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Jun 11. 2021

사랑과 음악이 어우러진 멋진 소설

레이철 조이스 [뮤직숍] 책 리뷰



1. 응답하라 1988 in Bristol!

   레이철 조이스의 장편소설 [뮤직숍]은 훈훈하고 그리운 과거 이야기로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과 같은 시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한창 올림픽이 개최되고 나라 전체가 발전하던 시기로 드라마는 찬란했던 청춘의 순간들을 추억하는 많은 분들로 인해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뮤직숍]은 이야기의 장소만 대한민국 쌍문동에서 영국 브리스톨의 유니티스트리트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소설입니다.


   제목이 뮤직숍인 것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곳이 바로 주인공 프랭크의 음반가게이기 때문입니다. 이 음반가게는 단순히 음반을 파는 곳에서 그치지 않고 동네 사랑방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주인공 프랭크가 동네 주민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그들 스스로도 잘 몰랐던 가장 잘 어울릴 만한 음악을 감각적으로 골라주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장소가 됩니다.


   [뮤직숍]은 격변의 1988년을 살았던 영국인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잔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1988>이 전작들보다 주인공 외 조연들인 골목 이웃들에게 비중을 더 주었던 것처럼 이 소설에서도 주인공 프랭크는 물론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스토리가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이야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챕터 자체가 음악 작품명일 만큼 소설 전반에 음악의 역할이 지대합니다. 매 챕터마다 프랭크가 주변인물들에게 추천하는 음악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다보니 독자 입장에서도 소개되는 음악에 대한 호기심이 일게 되고 중간 중간 음악을 들어가며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소설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형식 자체가 음악이 함께하는 라디오 드라마 같다 보니 라디오 세대들에게 더 정감있게 다가오는 듯 합니다. 이런 형식의 소설은 꼭 소설속에 등장하는 음악을 감상하면서 천천히 읽는 것이 좋습니다. 음악 소설을 가장 재미있게 읽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때로는 등장인물의 감정에 완전히 동화되기도 하고 어떤 음악에 이르러서는 '응? 전혀 공감이 안되는데...'라고 반응하기도 합니다. 독자마다 음악적 취향과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듣고 반응할지 각자에 달려 있어 더 다채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다양한 직업적 경력을 잘 녹여낸 저자 레이철 조이스

   레이철 조이스는 애초에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고 그 이후에는 드라마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BBC 라디오 극 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할 정도로 드라마 작가로써 역량을 뽐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소설가로 변신합니다. 소설도 많이 출간했고 수상도 무척 많이 했습니다.


   [뮤직숍]의 구성을 보면 저자의 이런 이력이 잘 녹아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배우로 활동해서인지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동선, 감정처리 등이 무척 입체적이고 구체적입니다. 소설의 구성이 마디마디 한편씩 에피소드로 이어진 드라마와 유사합니다. 독자입장에서는 끊어읽기 유리하고 작은 에피소드들에 전체 큰 스토리가 결합해 있는 구조가 익숙하기도 합니다.


   여러가지 장점이 보이지만 특히 등장인물을 한 사람도 허투루 쓰지 않고 개성을 잘 살려낸 점이 인상적입니다. 성장기의 아픔을 간직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세심하게 대하는 주인공 프랭크는 물론 사제 신분이었으나 은퇴 후 종교 선물 가게를 운영하는 앤서니 신부, 오랫동안 유니티스트리트를 지켜온 쌍둥이 장의사 윌리엄스 형제, 그리고 온몸에 타투를 새기고 다니는 문신 가게 주인 모드, 가끔 정서가 불안한 듯 보이지만 마음씨 착한 청년인 음반 가게의 종업원 키트 등 모두가 사랑스러운 캐릭터입니다.


   특히 엉뚱 발랄하면서도 각종 사건사고의 원인이 되는 종업원 키트는 독자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는 중요한 유머 포인트로 작용합니다. 프랭크와 불안정하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러브스토리를 보여주는 독일여인 일사 역시 매력적이면서도 배경을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함으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프랭크와 일사가 음악 강습을 빙자해 데이트를 즐기는 가게의 여종업원 역시 스토리 전개에 큰 역할을 합니다. 등장인물을 적극 활용해 소설을 구성해내는 저자의 능력이 탁월합니다.


   저자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도 조예가 유난히 깊어 보입니다. 소설의 중심이 되는 음악은 아무래도 클래식이기는 합니다. 그 중에서도 사계와 월광소타나, 메시아는 소설의 뼈대를 구성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클래식에 국한되지 않고 소울 째즈, 락 음악 등을 넘나듭니다. 또한 그냥 음악을 소개하고 듣게 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과 작곡가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줌으로서 귀로 듣는 음악을 글로 읽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놀라게 됩니다.



3. 개발과 보전 사이, 빛나는 공동체 정신

   1980년대를 넘어오면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영국도 재개발 바람이 불었던 모양입니다. 소설의 주 무대가 되는 유니티스트리트는 상업적으로 성행중인 메인스트리트가 아닙니다. 동네주민 외에는 그다지 사람들이 찾지 않는 한적한 골목상권인 곳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상가가 있는데 건물들은 다 낡아서 안전상 위험도가 큰 상황이지만 매출이 없다보니 수리도 쉽지 않은 그런 뒷골목을 상상하면 딱 맞을 듯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오랫동안 터를 닦고 살아온 주민들에게는 애정과 삶이 밴 곳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지역에 재개발 전문 기업이 등장하고 사람들을 선동해 스트리트 자체를 바꿔 놓으려고 시도합니다. 이런 대 변화와 위기 상황에서 이웃처럼 살아온 동네주민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 바라보면 소설에 더욱 몰입할 수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프랭크와 주민들의 형편과 반응이 우리의 과거, 그리고 현재와도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남의 이야기 아닌 만국 공통의 이야기를 풀어내 공감과 향수를 불러 일으킵니다.


   프랭크의 음반가게를 중심으로 돈독하게 지내는 이웃들, 경제적으로는 너나 할 것 없이 쪼들리고 힘들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그 시대의 정신을 보고 있노라면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웃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격변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모습은 짠한 마음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 와중에 계속 등장하는 음악들이 감정을 더욱 고조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개인주의가 너무나 일상화되고 코로나 이후 더욱 당연시되는 언택트의 시대를 지나는 요즘 시대에 꼭 읽어보아야할 소설입니다. 사람은 원래 사회적인 동물이고 다수는 아니더라도 소수의 가까운 사람들만이라도 함께 어울리며 정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레이철 조이스의 소설 [뮤직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처럼 말입니다. 비록 그들의 미래가 모두 밝고 희망찼던 것은 아니더라도 그 당시의 기억 속 마음만은 따뜻하고 아름다웠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삶이 팍팍하고 힘든 모든 분들에게 음악을 찾아서 들어가며 이 소설을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적어도 이 소설을 읽고 음악을 듣는 그 순간만은 분명 위로와 격려로 인해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실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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