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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Jul 22. 2021

무속과 전설의 결합, 한국적 호러의 매

박해로 소설 [섭주] 리뷰




1. 가장 한국적인 것이 매력적인 것... 호러도 "K-호러"다.

   최근에는 한국의 매력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그 흐름이 소설계에도 차츰 반영이 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국내 장르소설이 상당히 많이 소개되고 있고, 소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장르소설 중에서도 변방 중에 최 변방에 위치해 있다고 평가되는 "호러"의 영역은 제가 애정 하는 전건우 작가를 비롯한 몇몇 작가들 외에는 여전히 일본 호러 소설의 강세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음악이나 음식 같은 문화 전반에 한국 고유의 특성을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이때를 기회로 소설계에도 한국적인 매력으로 무장한 작품들이 출간되어 전 세계에 사랑받을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해로 작가의 신간 "섭주"야말로 이런 한국적 소재와 설정을 차용하면서도 전 세계에 통용될 특성들이 적절히 융화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호러 소설 "섭주"는 전통 무속신앙의 악신 이야기입니다. 악신이 깃든 무구인 방울과 거울을 매개로 사람들을 해치는 호러이자 스릴러, 판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장르적 요소가 유기적으로 잘 결합되어 다양한 매력이 넘치는 소설이 되었습니다. 전통 무속 신앙에 대한 작가의 역량이 유난히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작가가 관련 분야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고 독자 입장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구조를 치밀하게 잘 짜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기본 토대인 호러 소설이 가져야 할 미덕에 충실해서 좋았습니다. 좋은 호러는 읽으면서 등골이 서늘하게 무섭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와중에도 다음 내용이 기대되고 여러 가지 감정이 요동치게 만들어야 합니다. "섭주"를 읽으면서 '어이쿠야', '아휴, 씨바 씨바'해가며 읽었습니다. 역시나 장르 소설은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중 호러소설은 재미있게 무서우면서도 무섭게 재미있어야 합니다. 이런 기본에 가장 충실한 소설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 무속적 특징과 흥미로운 전설의 예술적 결합

   한국 전통 무속 신앙의 핵심은 "무당"입니다. OO보살, XX신녀 등으로 대표되는 무당은 아무나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신내림"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일종의 자격 검증입니다. 이런 특징적인 과정은 무당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할 수 없기도, 하기 싫은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신내림"을 받아야 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 자체가 드라마틱 한 이야기들을 양산해내기 딱 좋은 설정이 됩니다. 

   "신내림"을 받는다는 말은 내림을 해주는 주체인 "신"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이 "신"이 누구냐, 누구를 모시냐에 따라 무당의 능력이 결정되기도 하고 고유한 특징이 발현되기도 합니다. 또한 신력이 깃든 신물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신적 존재와 연결되어 소통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신내림을 받은 이들을 통해 일종의 내림 신들의 대리전 같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큰 틀에서 보면 이 소설  사람들을 해치고 인간 세상에 해악을 주는 악신과 악신의 똘마니, 그 존재에 휘말려 매개가 되어버린 인간들의 연합 진형과 이들 악한 존재를 없애 자연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세력과의 일대 전쟁 스토리라 할 수 있습니다. 

   무당은 물론 신기가 있는 일반인이 악신과 연결되는 절차와 메커니즘이 흥미롭게 묘사됩니다. 무속 신앙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 자체가 재미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설의 중 후반에 이르면 소설 속 악신의 존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는 "사파왕과 우녀의 전설"이 소개되는데 이야기 속 이야기 같은 구조의 전설도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전설 소개를 통해 독자가 소설 속 빌런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설득력 없는 빌런만큼 매력 없는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파왕이라는 존재의 등장은 서양 세계에서도 악의 현신으로 여겨지는 "뱀"들의 왕이기 때문에 이런 설정 자체가 "뱀"을 스토리 속에 잘 활용할 수 있어 다양한 재미와 무서움을 유발합니다. 뱀이 인간의 몸속으로 파고들면서 영혼을 잠식하는 설정 등은 곱씹을수록 무섭습니다. 앞으로 살다가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 몸속에 뱀이 들어간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이 소설이 생각나겠지요?



3.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 그리고 인간들이 모여 있는 "인간 사회"

   제가 사회파 소설을 좋아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고 다양한 인간 군상이 모여 있는 "인간 사회" 속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들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전혀 예측 못했던 끔찍한 일이 발생하는데 차근차근 따지고 보면 그럴만한 인간과 사유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무서운 장면을 목격한 것보다 더 서늘한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그렇기에 비현실적인 존재로 인한 공포도 좋지만 현실 세계에 기반한 공포가 의외로 더 무서운 것입니다.

   소설 "섭주"가 훌륭한 점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무당과 악신의 이야기, 오래된 전설의 이야기를 현대 사회 속에서 실존하는 사회 현상과 자연스럽게 믹스 했다는데에 있습니다. 특히 다름에 대한 몰이해와 인간의 우월감, 지배욕 등에서 벌어지는 왕따와 차별 문제를 끌어온 점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인간은 궁지에 몰릴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누구나 납득할 만합니다. 이런 상황 설정이 소설 속 비현실적 상황을 받아들이기 좋은 명분을 제공합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고, 읽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하게 하는 것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 "서경"은 다양한 문제를 가진 캐릭터입니다. 어릴 적부터 남다른 환경에 놓입니다. 부모님의 보호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자랍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의 경우 자존감을 갖기 어렵고, 타인에게 무시당하고 공격당하는 표적이 되기 십상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서경"이 속한 학교 선생님 커뮤니티는 정상적인 관계를 맺기 어려운 서경을 따돌리고 무시하고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자신을 돕는 친구도 있습니다만, "서경"은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주인공 "서경"을 필두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아픔을 가슴속  깊이 간직한 새엄마, 목사지만 사실상 극단적인 정치 활동에 빠진 아빠, 저마다 자기 입장이 중요한 교장과 교감, 그리고 선생님들, 형사들과 무속인들 등 평소 익숙한 캐릭터는 물론 일반인이 흔히 접하기 힘든 캐릭터까지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여기에 미지의 악신까지 엮여서 스토리가 흘러갑니다. 좋은 이야기가 항상 그렇듯 소설 속 캐릭터들이 매우 입체감 있게 각자 살아움직이는 모습을 보입니다. 당장 이야기의 중심에 있지 않은 배경 캐릭터까지 놀지 않고 혼신의 연기를 펼치는 느낌입니다. 스토리가 전개됨에 따라 각 캐릭터들의 심리나 태도의 변화를 보는 맛도 상당히 좋습니다. 

   이야기의 결말부로 넘어가면서 지나치게 우연에 의존했고 그전부터 너무 단서를 흘려서 예측을 한 장면이기는 하지만 동, 서양의 대통합과 같은 묘한 마무리도 좋았습니다. 그 이상 어떻게 더 나은 모습으로 스토리를 갈무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작가가 전작들을 통해서도 "섭주"라는 가상의 공간을 묘사해왔다고 들었는데, 전작들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한국적인 소재와 설정을 잘 활용해 좋았고, 다소 비현실적인 오컬트적 설정임에도 읽는 내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짜인 이야기도 훌륭했습니다. 캐릭터들의 말과 행동이 그럴 법한 주변 환경과 히스토리가 있어 납득이 된 부분도 너무 좋았습니다. 무조건 무섭기만 하거나 잔인한 이야기보다는 뒤통수가 서늘하면서도 다양한 매력이 담긴 이색적인 공포를 원하신다면 박해로 작가의 "섭주"를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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