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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Oct 07. 2021

다양한 재미가 넘치는 역사 팩션
소설의 진수

정명섭 작가 [조선의 형사들] 책 리뷰



1. 팩션 소설의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정명섭 작가

   팩션 소설은 기록으로 남아 있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렇기에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에게 생생한 스토리로 다가오는 장점이 있습니다. 등장인물이 실존 인물로 대중적으로 알려진 경우는 더 흥미를 자극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역사적 기록이라는 것이 지면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큰 사건이 한두 줄의 요약본처럼 써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팩션 소설 얼마나 좋은 이야기인가는 기록되지 않은 행간을 채운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습니다.  팩션 소설의 승패는 결국 역사적 기록 중 독자들의 흥미를 끌만한 사건을 발굴해 선택하는 능력에 사실이라는 뼈대를 메우는 피와 살이 얼마나 충실하고 수려한가에 달려있습니다. 정명섭 작가의 [조선의 형사들 - 사라진 기와]는 역사적 기록과 작가적 상상력의 조합이 어떠해야 바람직한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와도 같은 작품입니다. 


   조선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 스토리는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당시 정치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주변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는 상황 자체가 매력적인 소설의 배경을 제공합니다. 왕권과 권력을 둘러싼 정쟁이 끊이지 않는 정치적 여건이 이미 소설적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일상적이지 않은 사건이 발생하면 바로 음모론적 상상과 자동으로 연결되기 딱 좋습니다. 


   팩션 소설의 대가인 정명섭 작가는 몇 줄 안되는 역사적 기록에서 재미있는 스토리의 냄새를 맡는 데 이미 경지에 이르른 것 같습니다. 소재 선정으로부터 상황 설정, 인물 선택과 플롯 배치와 서사의 흐름 등이 자연스럽게 연계되면서 팩션 소설은 바로 이 맛이 아닐까 하는 감탄을 하게 만듭니다. 




2. 의문의 사건과 흥미로운 등장인물들의 활약

   이 소설이 흥미로운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 엉뚱하고 의아합니다. 통상 미스터리는 누군가가 살해된다거나 사라지는 등 자극적인 사건으로 시작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달랑 기와가 사라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위패를 모시는 사당의 기와가 사라지는 일은 내부적으로 책임 소재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고 실제로 큰 소동이 일어납니다만 독자 입장에서는 '기와 따위를 왜?'라는 의문과 동시에 강렬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치로 사용됩니다. 이야기의 끝까지 긴장감과 호기심을 유지한 채 즐길 수 있는 좋은 장치로 작용합니다. 


   캐릭터의 설정과 활용도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존재 자체가 스토리인 네임드 정조의 존재감이 큽니다. 또 한 명의 네임드 정약용은 왕의 총애를 받으며 실질적인 실세로 활약합니다. 정약용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아주고 스토리가 정상적으로 이어지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필드에서 실제로 뛰어다니며 하드보일드 한 재미를 더하는 좌, 우 포도청 군관 이종원과 육중창도 이야기를 살리는 훌륭한 캐릭터입니다. 날렵하고 말이 많으며 지능적인 이종원과 우직한 하드웨어로 범인들을 압도하는 이름도 육중한 육중창은 서로 너무 다른 캐릭터지만 힘을 합쳤을 때 최고의 시너지를 자랑합니다. 


   이에 대항하는 세력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영웅 서사에서 빌런이 약하면 스토리가 흐물거리기 마련입니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배후 세력이 탄탄하고 이들의 범죄 동기가 강할수록 텐션이 살아납니다. 여기에 배후 세력을 돕는 내부 인물의 엉뚱한 짓도 스토리를 풍성하게 해주는 좋은 장치인데 이 소설에서도 포도부장이라는 인물로 이런 재미를 잘 살리고 있습니다. 


   사라진 기와 사건으로 시작해 포도청 군관들이 활약할 무대를 만들고 어이지는 살인 사건으로 스토리를 복잡하고 다양하게 전개하다가 다시 처음의 기와 사건으로 귀결되는 흐름이 자연스럽고 막힘이 없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뛰어나고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3. 팩션 소설 속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

   [조선의 형사들]이 더 좋은 소설로 여겨지는 이유는 단순히 흥미 위주로 사건을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계층 사회인 조선시대는 양반에 의한 횡포가 만연한 사회입니다. 사회 약자들이 기본적인 보장조차 받지 못하던 사회이기에 그 시대 상황을 빌어 현대의 사회적 문제를 역설하기에 좋은 구조입니다. 


   정명섭 작가는 단순한 역사적 기록에서 행간에 담긴 사회적인 문제를 수면 위로 잘 끌어올렸습니다.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고 있지만 기득권 권력 세력 간의 암투와 욕망의 단면을 적절히 배치했고, 권력자의 자녀가 무뢰배보다 더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단죄를 받지 않는 모습을 통해 최근에 불거진 몇몇 사건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포도청에서 빠른 사건 해결을 위해 무작정 아무나 데려가 심문을 하고 범인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선택적 조사와 사건 만들기 등의 무리수가 드러나는 현대의 상황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진실을 밝히려는 조사관들을 오히려 역적으로 몰아서 매장하는 모습도 지금과 다르지 않아 씁쓸함을 자아냅니다. 


   한 가지 현실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소설에서 결과적으로 죄를 지은 사람은 단죄하고 불순한 의도로 범죄를 시도하는 자는 실패하고 잡히게 된다는 점입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일임에도 소설적 판타지의 허용으로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은 독자에게 시원한 감정의 정화를 선사합니다. 


   이 외에도 역사 소설이라 가능한 생소한 용어들의 등장도 흥미로웠습니다. 쇠도리깨가 어떻게 생겼는지 찾아보게 되고 철릭은 뭔지 전립은 어떻게 생긴 건지 확인해가며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검계라는 조직에 대해서도 따로 찾아보니 흥미로웠습니다. 

 

   실재 사건과 실존 인물을 다루면서 작가적 상상력으로 흥미진진한 미스터리를 뚝딱 만들어낸 이 소설은 사건도 캐릭터도 너무 매력적이고 그 속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까지 더해 최고의 팩션 소설을 창조해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읽은 소설로 팩션 소설의 재미를 느껴보고 싶으신 분이나 워낙 팩션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 모두에게 권해드리고 싶은 소설입니다. 


   앞으로 조선의 형사들 시리즈로 지속적으로 출간되어도 계속 사랑받을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화되어도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추후 이 소설이 어떻게 발전되어 갈지 지켜보는 것도 큰 재미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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