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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Jan 10. 2022

수정처럼 빛나는 처연한 소설

김서령 <수정의 인사> 책 리뷰



1. 산뜻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는 최고의 소설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 전에 장 해독, 간과 담낭 담석 청소(플러싱) 프로그램을 했습니다. 채식 위주의 식사로 몸이 가벼워지고 특히 음식을 먹을 때 재료 본연의 맛이 느껴지는 것이 큰 소득이었습니다. 맨밥에 알배추만 찍어 먹어도 너무 맛있다는 느낌, 순한 맛이 깔끔하고 오히려 깊다는 느낌을 되찾아 먹는 행복이 커졌습니다.


   이런 와중에 제주 여행을 다니면서 맛집을 검색하고 방문하면서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고 좋아하는 맛집은 맛이 정말 강렬하다 것, 참기 힘들 정도로 간이 세고 자극적입니다. 개인적으론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다는 감상과 함께 음식점 리뷰를 써서 비추라고 하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음식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재료 본연의 맛...이라고 해도 요즈음 트렌드에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맛집의 조건 중 최상위를 차지하는 건 '인스타그램 사진이 얼마나 이쁘게 잘 나오는가?'인 모양입니다. 너도나도 맛집을 찾아 사진을 올리고 자랑합니다. SNS 유저들은 그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며 맛있겠다고 감탄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SNS의 시대에 모양은 공유해도 맛 자체를 공유할 순 없으니 보이는 것이 중요한 세상입니다.


   거두절미하고 김서령 작가의 경장편 소설 <수정의 인사>는 근래 만난 소설 중 단연코 최고입니다. 음식뿐 아니라 근래 웹소설, 웹툰, 넷플릭스 드라마 등 전반적으로 강렬한 장르 위주로 보고 읽고 있는데, 매우 자극적이었습니다. 솔직히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갈증이 꽤나 컸습니다. '이런 거 밖에 없을까?' 정도의 감상이 남는 재미랄까... 재미있고 강렬하고 좋은데 뭔가 아쉽습니다. 채워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계속 있었습니다.


   <수정의 인사>는 저의 이런 갈증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해준 작품입니다. 슴슴하지만 깊은 맛이 살아있는 소설입니다. 재료와 조리법, 플레이팅의 조화가 완벽해 여러 번 놀라는 소설이었습니다. 심지어 분량도 짧아서 산듯하고 깔끔하지만 끝까지 깊은 그런 웰메이드 작품입니다.




2. 무엇이 웰메이드인가?

   이 소설의 특장점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가장 직접적으로 와닿았던 부분은 독백체, 서간체 느낌이 환상적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이 떠오르는 작품이었습니다. <환상의 빛>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서간체 문학의 백미와 같은 작품입니다. <수정의 인사>도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의 동화 같은 독백체가 매우 매력적입니다. 문체는 무척 발랄하고 통통 튀는데 독자는 쓸쓸하면서도 처연하게 느끼게 만드는 기교는 가히 환상적입니다.


   또 하나 큰 장점은 겉과 속이 다른 겉촉속독 같은 반전 매력에 있습니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형식은 촉촉한데 이야기 속을 들여다보면 소름 끼치게 잔인하고 냉정한 인간 세상의 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겉은 촉촉, 속은 매우 독한 그런 소설입니다. 마치 신나고 빠른 멜로디에 잔인하고 슬픈 이별 가사가 흘러나오는 90년대 댄스음악 같은 느낌입니다.


   최근 주로 만나는 영화, 드라마, 애니, 웹툰 등에서 드러나는 미덕은 익숙함, 클리셰 덩어리에 약간의 참신함의 가미인 것 같습니다. 뻔한 듯 하지만 약간의 새로움만 있으면 성공 보장인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전통적인 의미의 소설이란 부담일 수 있습니다. 사는 게 골치 아픈데 소설 읽으면서 머리를 써가며 감정을 소비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죠. 늘 읽던 그 패턴과 익숙함으로 쭉쭉 읽히면 좋습니다. 그렇다고 같은 소설을 반복해서 읽을 순 없으니 내가 편한 한도 내에서 약간의 신선함을 추가해 주면 최고입니다. 그런 느낌 때문에 수십만 명이 읽으며 대 성업을 이어가는 웹소설의 제목이 신기할 정도로 비슷하고 유치합니다.


   물론 웹소설 시장이 워낙 커지면서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작품들도 큰 인기를 끌고 있어 양상이 변하고 있기는 합니다. 흥미로운 변화입니다. <수정의 인사>는 그런 익숙함에서 오는 재미와 결이 다른 소설입니다. 근래에 만나기 힘든 소설 본질의 재미를 잘 살린 작품이라는 점이 크게 와닿습니다. 읽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3. 피해자와 가해자, 인권 대 인권

   <수정의 인사>에서 이수정 대리는 터무니없는 범죄의 피해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와 가까웠던 지인들과 가족들은 큰 고통을 겪습니다.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지고 위로해 주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지만 현실 세계는 의외로 그렇지 않습니다. 가해자가 일방적인 범죄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럴만해서 그랬을 것이라는 억측이 난무합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혀서, 단순한 악의가 겹쳐서 의도와 진실이 오염됩니다.


   이 소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일상적이지만 이상적이지 않은 양상을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로 상반된 입장과 감정 대립, 법의 비상식적 판단 등이 전개되면서 내가 저 사람 입장이었다면? 내가 시장통의 저 상인이었다면? 하는 상상을 해가며 읽었습니다. 드러난 결과는 매우 비상식적이었지만, 그 개개인의 입장으로 들어가 보면 저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는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인간은 각자의 입장과 태도와 처지가 있기 마련이고 이런 욕망들이 부딪히면 배가 산으로 가는 엉뚱한 결론에 이르기 쉽습니다. 이 소설 말미의 판결문이 바로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작 최대의 피해자인 당사자는 이 상황을 담담하면서도 처연하게 관조합니다. 마치 남의 일처럼 메마른 감정으로 관찰합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입장이 되어버린 상태입니다. 어디에도 관여할 수 없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역설적으로 더 부각해서 드러내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주제 의식 차원에서 매우 영리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끝내 전하지 못한 수정의 인사는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가해자의 논리를 피해자 가족도 누리기를 바라는 이수정 대리의 마지막 배려입니다. 배려하는 자는 끝까지 배려하며 피해를 보고, 자기만 생각하는 자는 끝까지 자기 논리로 피해를 최소화하며 인간의 도리조차 다 하지 않습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그런 인간들은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타인의 입장과 감정을 살피는 일은 생각보다 고도의 지능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지능이 떨어져 타인의 입장까지 생각할 능력이 안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결론이 신선합니다. 저는 좀 똑똑한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안 주려고 노력하는 정도의 눈치는 있는 인간이고 싶습니다.


   <수정의 인사>는 자극적이고 클리셰 가득한 소설에 너무 익숙해진 분들에게 일독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소설의 또 다른 재미와 함께 뜻하지 않은 위로와 감정의 정화를 경험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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