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작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책 리뷰
1. 사랑에 대한 거의 완벽한 예시
사랑은 인류가 당면한 수많은 문제들 중 가장 익숙하고 대중적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이며 난해하고 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어렵고 정의하기도 힘듭니다. 그럼에도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 때문에 울고 웃고 실의에 빠지고 우울하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기뻐하고 행복감을 느낍니다. 사랑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감정이자 저 아래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자극하는 최상의 매개이자 도구입니다.
역사 이례로 수많은 학자와 철학자, 시인과 작가와 예술가들이 다양한 접근과 표현 방식으로 사랑을 정의하고 노래해 왔습니다. 이 이상 사랑 타령이 새로울 것이 있나 싶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지긋지긋하기도 합니다. 청년 시기의 풋풋하고 아련한 사랑을 논하기에 저는 이미 너무 나이가 들어버린 탓도 있겠습니다만, 그만큼 사랑은 다루기 까다롭고 힘들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존재입니다.
포르체 출판사의 날마다 인문학 시리즈 네 번째 책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는 이 어려운 "사랑"의 문제를 기어코 다루고 있습니다. 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정지우 작가의 글을 통해서입니다. 사랑은 문학과 철학이 주 영역입니다. 결과적으로 사람을 제대로 썼습니다. 정지우 작가가 사랑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나 논리, 감성, 표현이 너무 좋습니다. 반박할 이유도 없지만 의아하거나 불편한 부분이 1도 없이 너무나 공감하며 읽게 되는 글입니다.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는 사랑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을 담고 있습니다. 내용이 탄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 너무 유명하고 검증된 철학자나 작가의 개념을 기본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렇기에 기반이 튼튼하고 전반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여기에 개인적인 사유와 감성을 덧대어 충분히 자기 것으로 소화된 내용을 버무리고 있습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개념에 트렌디하고 대중적인 감성이 입혀져 훌륭한 글이 완성되었습니다. 작가의 필력과 차분한 감성이 무척 부럽습니다.
이 책에 겹겹이 쌓인 챕터들의 이야기들은 결국 하나의 예시가 됩니다. 막연한 이론이나 지나치게 사적인 경험은 불특정 다수인 독자의 공감을 얻기 힘들 수 있습니다. 저자는 공감대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틀 안에서 독자 개개인에게 힌트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예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각자 삶에서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곡을 작곡할 때, 이 책에 선보인 여러 챕터들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내용을 발췌하고 샘플링해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작곡 시간과 노력과 실수를 줄여 나갈 수 있습니다. 바로 이점이 이 책의 가장 유용한 지점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2. 사랑에 대해 알아가는 완벽한 절차
우리가 무언가에 대해 배울 때는 항상 절차가 필요합니다. 팟캐스트 방송을 준비할 때도 항상 느끼는 거지만, 무언가에 대해 설명하려 할 때면 차근차근 빌드 업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어의 정의가 필요하고, 전반적인 개념 정리가 필요합니다. 상세하고 디테일한 정보도 놓치지 말아야 하고, 전달받는 대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핵심을 정리해 전달해야 합니다. 또한, 주장에 대한 반론도 소개하면 좋습니다. 여기에 잘 적용된 예시도 찾아서 전해드리면 참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달한 내용을 요약, 정리하고 마무리하면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저자 역시 사랑에 대해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 고찰하고 정리해 하나하나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논하고자 하는 논점과 방향, 독자가 이해했으면 하는 입장에 대해 정확히 밝힙니다. 독자 입장에서 이 책이 뭘 말하고자 하는지 미리 예상하는 것은 무척 유용합니다. 1장에서 사랑에 관련된 감정적 부분, 사랑을 이루는 기본적인 모양새에 대해 살펴봅니다. 2장으로 가면 혼자 할 수 없는 사랑의 속성에 초점을 맞춰 사랑의 관계에 대해 논합니다. 3장에서는 사랑 노래가 팔리는 핵심 셀링 포인트인 이별에 대해 다룹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4장으로 가면 이별을 넘어서 사랑의 본질과 관계 안에서 문제를 극복하는 차원의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랑의 가치와 사랑의 다양한 측면 등을 살펴보고 사랑의 가장 극적인 부분인 섹스 같은 문제도 놓치지 않고 논합니다. 개인적으로 도파민과 사랑의 관계를 다룬 챕터는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5장으로 가면 마지막으로 사랑의 완성을 이야기합니다.
결국 이 책을 읽고 나면 사랑을 테마로 인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어린 독자들이 읽는다면 사랑하는 미래를 상상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부제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들"처럼 다양한 관점과 상황을 빼먹지 않고 다루고 있어서 완성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빌드업이 잘 되어있고, 논리적이며 합리적입니다.
3. 또 하나의 백미이자 즐거움 '영화로 보는 사랑과 삶'
이 책을 읽으면서 유난히 좋았고 즐거웠던 부분은 각 장의 말미에 등장하는 '영화로 보는 사랑과 삶' 파트였습니다. 사랑에 관한 영화를 주제로 저자가 이해하고 해석한 사랑의 관점을 영화 리뷰처럼 풀어내고 있는 글들입니다. 기본적으로 필력이 좋고 표현도 훌륭한 데다가 영화 속 사랑 이야기 자체가 무척 재미있고 해석이 탁월했습니다.
"라라랜드"부터 "내 사랑", "옥자", "블루 발렌타인", "우리도 사랑일까" 등의 영화를 선택해 영화 속 사랑에 대해 풀어주고 있습니다. 라라랜드 속 두 주인공이 사랑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과 입장, 이기적이고 이타적인 행동 결정, 그 속에 표현하고 있는 사랑의 여러 모습과 속성 등에 대한 풀이가 너무 훌륭합니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잘 정리된 리포트를 읽는 느낌으로 짧은 한 꼭지의 글로 영화 전체가 한 번에 정리되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영화 "옥자"에 드러나는 사랑의 양상은 여느 사랑 영화와 사뭇 다릅니다. 거대 기업의 수장이 가진 기이한 형태의 사랑, 자연보호 비밀 단체의 수장이 보이는 아이러니한 사랑의 모습을 극적으로 비교하고, 옥자와 미자의 순수하고 강렬한 존재에 대한 사랑을 두 대표와 비교해 논합니다. 이들 등장인물을 통해 비친 현대 사회의 비틀어진 사랑에 대한 열망과 조건 없고 맹목적인 퓨어 한 사랑을 대치해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에서 확장된 고찰이 점점 흥미를 더하게 하는 지점이었습니다.
영화는 워낙 상징적이고 압축적이기 때문에 리뷰를 쓰는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줄거리 요약하고 감상을 적는 정도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주제의식과 표현 상의 다양한 특징을 잡아내는 것은 배경지식도 필요하고 논리적 사고와 감각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 리뷰를 잘 쓰지 않습니다. 꼭 쓰려면 초간단 요약 리뷰 정도만 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가 선보이는 영화 리뷰 글은 신선하고 영양가 높은 고단백식 같았습니다.
사랑 문제로 고민을 거듭하고 계신 분들, 사랑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테마에 대해 편안하게 한 번 정리해 보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마음 아프신 분들 역시 위로받고 공감하기에 너무 좋은 책입니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있으시던 한 번쯤 읽고 정리하고 넘어가면 딱 좋을 그런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