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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Jun 03. 2023

10가지 컬러와 패션을 통한
인류 문화 돌아보기

컈롤라인 영 <패션, 色을 입다> 책 리뷰






1. 색에 시대의식과 문화가 숨어있다.

올 초에 제주도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첫째가 중학생이니 모든 의사 결정은 첫째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4박 5일의 제주 여행 일정이 온통 첫째가 가고 싶은 장소 위주로 정해집니다. 그렇게 정해진 장소들은 하나같이 인스타그램 사진 스팟이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사진을 찍는 것이 여행의 주요 목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인스타에서 핫한 모 식당에 갔는데 인테리어도 좋고 음식도 너무 예뻤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을 멘붕에 빠뜨린 건 실망스러운 음식 맛이었습니다. 그래도 사진은 잘 나왔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사진이 잘 나오는 장소, 음식, 패션이 일 순위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소위 '인스타그램 빨 받는' 것이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된 세상입니다. 인스타그램 화면 속 프레임을 위해서 중요한 요소는 배경, 피사체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눈길을 끄는 화려한 색감도 무척 중요합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다채로운 컬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패션, 색을 입다>의 저자 캐롤라인 영은 영미 문화를 중심으로 저널리즘 공부를 한 분입니다. 저널리즘 전공자가 왜 패션에 관심을 가졌을까 싶었는데, 전공 공부 후 헤럴드 스코틀랜드에서 패션 작가와 디지털 편집자로 일하면서 패션 산업과 패션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신 모양입니다. 의, 식, 주 중 그래도 개인의 개성이 발휘되기 쉬운 영역이 패션입니다. 역사와 문화 전반에 걸친 리서치를 거치고 저자의 통찰력을 더하니 생각지도 못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탄생했습니다.


디자인 관련 강의를 많이 하셔서 강사로도 인정을 받으신 모양인데, 강의 과정에서 강의 자료만 모아도 책이 여러 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마 이 책도 그 일환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책 자체의 구성은 상당히 독특한데, 각 챕터의 내용은 마치 강의를 하듯 독자에게 차분차분 설명해 주는 방식입니다.


저자는 색깔 자체를 통합해 다루지 않고 10 가지 색을 개별적으로 살펴보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이 책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계의 패션 역사에 있어 색을 다루는 인식이나 기술, 문화가 이렇게 변천해 왔다.' 정도로 그치지 않고 검정, 보라, 파랑, 녹색, 노랑, 주황, 갈색, 빨강, 핑크, 흰색까지 색을 하나하나 분리해, 이 색들의 역사적 발전과 인식 변화 등을 상세히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살면서 특정 색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인식되어 왔고, 어떤 특정 사건에서 촉발되어 그 색에 대한 생각들이 변화되었는지, 누구 때문에 더 활용하게 되었고, 파격적인 변화를 겪어 왔는가 등을 생각해 볼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조금 버겁기는 했지만 그만큼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전혀 몰랐던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고 저자의 통찰을 나눠 가지는 경험은 상당히 의미 있었습니다.






2. 색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스토리가 된다.

챕터마다 설명되는 개별 색의 히스토리를 살펴보는 과정 자체가 상당히 재미있는 스토리가 됩니다. 각 색깔들마다 현대인들이 가지는 감정이나 느낌이 있고, 그 색을 활용한 옷을 입었을 때의 기분, 그 색을 입은 사람을 대할 때의 느낌들이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동일 시대와 장소에서 느끼는 입장은 유사하다 보니 이해도 쉽고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그러나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지금과 사뭇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옛날에는 검정이 색인지 아닌지부터 논란이 있었고, 많은 사건들을 거치면서 검정도 색으로 인정받아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각 색에 대한 이미지는 시대에 따라 무척 다양한 양상을 띄었었고, 10가지의 색이 다양한 자기만의 스토리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왔습니다. 이 스토리를 아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대한 이해도가 부쩍 높아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10가지 기본색의 역사를 소개하고 어떤 변천을 거쳤는지를 읽어나가면서 인류의 다이내믹한 가치관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시대상을 반영한 사회적 합의가 색을 정의하고 사용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상당히 지루하고 관심을 가지기 어려운 내용이기도 한데, 패션이나 색에 대한 센스가 별로 없는 저도 그럭저럭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필력이 상당히 훌륭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토리텔링이 꼭 사람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딱히 형체가 없는 각 각의 색에 대한 스토리텔링도 이런 식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너무 많은 정보가 책 속에서 막 쏟어져 들어와서 사실 읽기가 쉽지 않아야 하는데 마치 아는 사람의 과거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있었습니다. 독자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문학작품이나 영화, 특징적인 사건과 인물의 이야기가 스물스물 흘러들어옵니다.


방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저자는 각 각의 색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소개하는 데 있어 과거부터 현재까지 시간순으로 리뷰하고 있습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정리해야 할 정보가 무척 많은 편이기 때문에 적어도 시간 순은 지켜주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고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대순까지 중구난방이었다면 머릿속에 정리가 되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저자의 선택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3. 색을 알면 시대를 입을 수 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펼칠 때만 해도 그냥 패션에 대한 기본과 TPO에 맞는 색상 매치 원칙 같은 것을 들려주거나, 시대적으로 주목할 만한 패션 센스를 가진 사람을 소개하거나 하는 책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전혀 다른 접근법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10가지 색상을 하나하나 별도로 소개하고 있고, 그 색상들이 오랜 과거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 왔으며 특정 시기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사용되어 왔는지를 설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 어떤 원료나 가공방법으로 해당 색을 만들어 내었는지에 대한 정보도 빠지지 않고 알차게 들어있습니다. 같은 계열의 파랑이라도 시대별, 나라별로 사용한 원료도 다르고 추출 방법도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방식이 대량 생산이 가능했는지는 물론 인체 유해성에 대한 무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과거의 일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중독 등의 상해가 일어난 일들을 읽고 있노라면 멀지 않은 과거인데 어떻게 이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녹색 같은 경우는 눈을 편안하게 해주고 자연의 이미지가 있어 차분하면서도 튀는 특징적인 패션을 선보일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적으로 이런 녹색이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중독과 상해를 입힌 색 중 하나입니다. 합성 녹색인 에메랄드그린이 대유행했지만 구리와 비소의 합성 안료라 만드는 작업자는 물론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도 건강상 치명적이었습니다. 녹색이 가진 지금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녹색이 시대별로 거쳐온 히스토리는 험난하기만 합니다.


녹색은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12세기부터는 유럽 전역에서 악마와 악마의 피조물과 연관됩니다. 여기에 녹색은 격렬한 사랑과 부정행위를 나타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는 부패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근래에 와서야 '그린라이트' 즉, 긍정적인 이미지에 녹색이 생명과 자연을 포용하는 색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런 내용들을 어느 정도 숙지할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 색상과 시대에 맞춰 패션을 구현할 수 있고 자기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 언급된 각 색의 이미지 변천과 시대별 특징들을 잘 고려해 본인의 패션에 적용한다면 기존보다 훨씬 뛰어난 안목으로 센스 있는 패션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론적으로 색의 특성과 히스토리를 아는 것이 바로 내 패션 센스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길게 보아 시야가 넓어지고 안목이 생기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패션에 관심이 있거나 깔 맞춤을 좋아하시거나 컬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보아도 좋겠고, 이런 분야에 아예 젬병인 분들이 읽어도 너무 좋을 책입니다. 한 번쯤은 이런 특색 있는 책을 읽는 것이 독서력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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