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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Jul 09. 2023

"모성" 그 당연함과 지겨움에 대해

미나토 가나에 <모성> 책 리뷰





1. 지금 시점에 미나토 가나에?

미나토 가나에의 이름을 들어본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제가 한창 미스터리 소설에 관심이 많을 시절에 최 전성기를 누리던 일본 여류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녀는 "고백"이라는 걸출한 작품을 시작으로 국내 번역되던 일본 장르소설의 한 축을 담당한 작가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속죄", "N을 위하여", "야행 관람차"등 속속 번역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당시 일본 장르소설 좀 읽는다 하는 분들은 대부분 섭렵하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처음에는 "모성"이란 작품명과 "미나토 가나에"의 결합 때문에 혼란스러웠습니다. 미나코 가나에의 모성은 이미 오래전에 출간되었던 책인데 뭔가 '같은 제목으로 번역이 되었지만 신간인가?' 하는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그때도 모성이란 작품을 알고 있었지만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의아함을 가지고 책을 보니 신간이기는 하지만 이미 북폴리오에서 2013년에 출간되었던 동명의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복간된 이유는 작년 말에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토다 에리카"와 "나가노 메이"가 주연한 이 영화는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내에는 개봉되지도 않았고 크게 화제가 되지도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제가 포스터를 본 기억이 나는 걸로 봐서는 아름아름 관심을 받기는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연유로 출간 10년 만에 복간된 이 소설을 읽어볼 기회를 갖게 되었으므로 저에게는 의미가 있는 복간이었다 싶습니다. 오랜만에 일본 작가의 소설을 읽어 신선했고 특유의 분위기와 화풍을 느낄 수 있어 만족스러웠습니다.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은 거의 읽어보지 않았지만 일본 소설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집요함과 이질감을 즐겁게 즐겼습니다.





2. "모성" 원래 그런 것, 그 당연함의 지겨움에 대해...

"미나코 가나에"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실체적으로 느껴지는 불편함에 대해 천착하는 작가라고 봤을 때, 그 테마에 가장 빛날 수 있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모성"이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저자는 이 소설을 쓰면서 '작가를 그만두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썼다'라고 알려졌습니다. 저에게 얼마나 와닿았는가와는 별개로 "모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불편하리만치 노골적인 질문을 하고 있는 것 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모성"은 타고나면서부터 강하게 가지고 있는 인간 본성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입니다. 통계적으로 그런 태도를 자연스럽게 가지기 때문에 본성으로 정의하는 것인지, 현대 사회가 여성에게 아이에 대한 애착을 강제하면서 생긴 사회적 명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체로 다수의 어머니들이 강한 모성을 보이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모성"이 아이를 사랑하는 본능이라고 봤을 때 우리 사회가 가지는 "모성"의 일반적인 의미와 지금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모성"은 이미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배타적인 명분을 가지고 아이들을 통제하고 인생을 좌우하려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당연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소설에 나타나는 모녀 관계는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보기 쉬운 관계와 역전된 관계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이로써 이중적이고 모순된 복잡 미묘한 관계의 문제를 조망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어머니와 깊이 애착되어 인생의 의미를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으로 정해놓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사고합니다. 행복의 원천은 어머니의 반응입니다.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극단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반면 어머니의 존재에 대한 자신의 설정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본인의 딸에게는 전혀 애정을 보이지 않습니다. 어머니냐 딸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극적인 사건이 있기는 하지만 아이를 임신한 순간부터 그다지 탐탁해 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므로 기본적인 모성 자체가 결여되어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는 정말 모순된 태도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욕망이 좌절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사랑받고 인정받은 만큼 딸에게 애정을 쏟아부어야 자연스러운데 그녀는 딸의 존재를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를 방해하는 요소로 인식하고 배척합니다.


결국 관계의 문제가 핵심이므로 캐릭터가 가장 중요한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저자가 보여주고 싶은 모성에 관한 아이러니한 양상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소 극단적인 캐릭터의 모습을 창조해두었습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여러 캐릭터의 행동과 입장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면서도 비현실적인 면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은 넓어지는 기분입니다.





3. 이야기의 재미를 더 하는 소설적 기교에 대해...

이 소설은 상당히 독특한 전개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 시점이 순차적으로 반복되며 이야기를 쌓아나갑니다. '모성에 관하여 - 어머니의 고백 - 딸의 독백'이라는 세 가지 파트가 총 7번 반복하며 이야기를 완성하는 구조입니다. 소설에서 화자를 어떻게 가지고 가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어떤 느낌으로 전하는가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어 소설의 질감 자체가 달라집니다.


구조를 잡는 데 있어 주제 의식을 강조할 수도 희석할 수도 있고, 집중적이냐 다층적이냐를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문제는 인간 사회라면 빠질 수 없는 온 인류사적 문제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기도 합니다. 하나의 틀에 집어넣을 수도 없는 은밀하고 미묘한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주인공의 속마음을 최대한 끄집어 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고해성사'라는 장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신부가 듣기는 하지만 가장 숨김없이 자신의 생각이 나 행동,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이런 설정은 독자가 주인공의 고백을 있는 그대로의 진솔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기 용이합니다.


주인공의 입장과 딸의 입장이 같을 수가 없고, 주인공이 바라보는 딸과 실제 딸의 생각이 서로 어긋나기 십상입니다. 일상생활의 인간관계에서도 각자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자는 어머니인 주인공의 고해성사 바로 뒤에 같은 상황에서 딸이 느낀 생각과 입장과 행동을 고백의 형식으로 드러냅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서로 어긋나는 모녀의 생각과 행동을 바라보는 재미와 감정 이입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 지나치게 특수한 케이스로 여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 첫 부분의 '모성에 관하여'파트를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와 크게 관련 없어 보이는 교사가 등장해 주인공들에 얽힌 사건을 관찰하고 평가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다루고 있는 관계의 문제를 일반화하고 우리 모두의 문제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양상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소설의 구조와 기술 방식, 독자의 극적인 감정 변화를 유도하는 장치의 효율적인 사용 등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고,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입니다. 소설을 읽으며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험도 오랜만인 거 같아 반갑습니다. 한번은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소설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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