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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Aug 23. 2023

서부 개척시대 이주민들의 대서사시

에이미 하먼 <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 책 리뷰





1. 생소한 미국 개척시대 소설을 읽는 재미

한 여름 호러 소설 제목이 연상되는 <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은 역사 소설입니다. 그것도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 이야기입니다. 서부영화에서 마차를 타고 거친 황야를 여행하거나 마차들끼리 둥글게 세워두고 비바람과 야생동물, 또는 원주민의 공격 등을 피하는 장면 정도 밖에 정보가 없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대륙을 횡단하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여러 가지 변수가 등장하고 의외의 사건이 발생하는 극적인 스토리를 그리기 좋은 이야기인 것은 분명합니다.


185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서부 개척시대에 대한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합니다. 미국 동부를 중심으로 시작된 미국의 역사는 영국으로부터 할양 받거나 프랑스로부터 매입하는 방식으로 동부로부터 중부까지 영토를 확장합니다. 1840년대 말까지 멕시코 전쟁을 거치면서 서부 캘리포니아 지대까지 확장해 지금의 미국 영토 대부분을 확보하기에 이릅니다.


가장 마지막에 확장한 서부의 캘리포니아 지대 개발과 금광 발견이라는 골드러시가 맞물려 1850년대에 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서부로 서부로 새희망을 찾아 목숨을 건 대 이동을 하게 됩니다. 이른바 서부 개척시대의 서막입니다. 에이미 하먼의 <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은 바로 이 기간에 일어난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서부 개척 시대의 대이동 루트 중에서도 오리건 트레일이라고 지칭하는 이동로를 지나던 이주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오리건 트레일은 미주리주 인디펜던스 부근에서 산 넘고 물 건너 스네이크강 등을 지나 포틀랜드가 있는 서부 끝의 오리건 주까지 이어지는 이동로입니다. 이전에는 올가미 사냥꾼이나 교역자, 선교사 등이 지나던 길이었다가 1840년대 골드러시에 금에 눈이 먼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서부 이주 메인 라인의 터를 닦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이주자와 목장주, 카우보이 등도 이 길을 이용했을 뿐 아니라 유타 지역에 정착한 몰몬 교도들도 자주 사용했다고 합니다. <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은 이런 배경하에 미주리주 세인트 조지프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이주하며 벌어지는 일입니다. 특히 인디언과 백인 혼혈인 존 라우리와 백인 여성 나오미 메이 간의 사랑과 생존 투쟁을 눈부시게 그리고 있습니다.


쉽사리 집중하기 어려웠던 초반부를 지나고 나면 서부 개척 시대의 험난하고 척박한 환경 속으로 서서히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더욱더 감정이입해 몰입하게 되고, 소설이 끝날 무렵 벅찬 감동과 먹먹한 감정에 고무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강렬하고 인상적이고 원초적인 이야기입니다.

미국 역사 소설이지만 어느 시대, 어떤 환경에도 인간의 생존과 사랑, 배신과 미움, 다툼과 화합은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 공감하기 쉬웠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겪는 극한 감정과 육체적 괴로움은 극적인 요소를 증폭시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슬로 스타터지만 갈수록 재미를 복리로 더해가는 폭발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2.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에 놓은 자들의 생존 전략

미국의 개척시대 역사에서는 원주민 인디언들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습니다. 당시 세계열강과 미국인들에게는 미지의 새로운 땅을 정복하고 개척하는 프런티어 정신이 빛나는 스토리지만, 원래 땅에 정착하고 있던 원주민에게는 폭력과 상실의 역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보니 대체로 미국인들 중심으로 미화하기 마련이지만 원주민 입장에서는 침략의 가혹한 이야기입니다.


역사 속 개척자와 원주민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하고 서로의 입장 차가 첨예할 수밖에 없습니다. 군인이 아닌 이상 개척시대에 이주하는 미국인들도 괴롭고 힘들기는 마찬가지였고, 척박한 환경과 전염병, 야생 동물과 인디언 원주민의 공격 등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인들이 개척을 위해 인디언들의 터전을 빼앗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주자 개인의 문제로 봤을 때는 낭만적인 이야기 보다는 처절한 생존 스토리에 가깝습니다.


한편 인디언들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대로 살아오던 땅을 빼앗기고 내몰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변하고 생존환경은 달라지는데 대체로 조상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원주민들은 급박한 환경 변화에 대처하기가 버겁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침략자인 백인들과 공존하는 전략 가운데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존재들입니다. 강인하지만 안타깝게도 원시적이고 변화에 취약합니다.


에이미 하먼은 특유의 섬세함과 진지함으로 이 아슬아슬한 상황을 서술해 갑니다. 저자는 소설 속에서 미국인과 인디언 사이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습니다. 양쪽의 입장을 최대한 입장없이 전달하고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백인과 인디언 혼혈인 존 라우리를 소설의 중심인물로 설정한 것은 탁월한 선택입니다. 저자 남편의 직계 조상이라 주요 스토리를 짜기에 용이하기도 하고 실제 경험담에 의존하기 때문에 실감나는 이야기가 되는 장점도 있습니다.


존 라우리는 극적으로 다른 두 세력 사이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경계인입니다. 혼혈의 문제는 단일 세력이 강한 곳일수록 심각합니다. 단일 민족이라 자랑하는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과거 혼혈인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배타적이었는지 생각하면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됩니다. 해외에 나가 있는 재외 한국인들과 그 후손들이 겪는 정체성의 문제도 비슷합니다.


존 라우리는 백인들에게도 인디언들에게도 "우리와 다른 존재"로 인식됩니다. 그렇기에 어디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습니다. 인디언들을 야만인이라며 쉽게 죽이는 백인들과 사람을 산 채로 가죽을 벗겨 죽이는 인디언들 사이에 누구 편도 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상징적으로 그의 이름은 두 발 이라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두 세력 사이에 한 발씩 담그고 있는 형국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야기하면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있는 존재기도 합니다. 지혜롭게 처신하면 양쪽 다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실제로 경계에 놓인 존 라우리는 백인들의 생활 기반에서 자라지만 원주민 종족과도 교류합니다. 양 민족들 간의 반목, 인디언 종족 간의 대결 속에서 결국 살아남고 상처와 고난을 이겨냅니다. 일행인 백인 동료 때문에 전 재산을 잃기도 하고, 원주민에 의해 가까운 사람을 잃고 빼앗기지만 결국 사랑하는 나오미 메이 만은 지켜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선천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한탄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합니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굉장히 큰 소설입니다.





3. 진정한 사랑과 연대의 위대함

저자는 백인이자 당찬 여성인 나오미 메이와 백인 인디언 혼혈 존 라우리가 이야기의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 관계가 될 것을 암시합니다. 이는 극적이자 쉽지 않은 사랑 이야기의 떡밥이기도 합니다. 존 라우리와 나오미 메이가 마주치는 장면에서부터 벌써 이 들의 관계를 예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 어쩌면 이야기 전체에서 이 두 사람의 관계에 흥미를 가지고 집중하게 만드는 좋은 장치가 아닐까 합니다.


이 두 사람의 관계를 방해하는 장애물은 너무도 많습니다. 존 라우리는 백인 어머니에게 자랐지만 어떻게 봐도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란 환경의 영향으로 외모와는 달리 백인 문화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입니다. 어릴 때부터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으로 자라나서인지 누군가에게 애정이나 호감을 표현하는데 무척 서투릅니다. 연예라고는 해 본 적 없는 숙맥들이 그러하듯 호감을 느끼면 오히려 더 밀어내는 모습을 보입니다.


나오미 메이는 당차고 매력적인 여성입니다만, 소설이 시작하는 시점에 이미 한번 결혼을 했다가 사별한 상황입니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 남편이 죽었는데도 남편 쪽 가족들과 남남처럼 지내지 못합니다. 심지어 이들과 함께 서부 이주를 떠납니다. 그러니까 존 라우리와 나오미 메이 사이에는 가까워지기 어려운 장애물이 겹겹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남녀 간의 사랑이란 것이 환경이 열악하고 어려울수록 더 애틋하고 강렬한 법입니다.


스포일러가 되어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사건들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견디기 힘든 어려움을 각자, 그리고 함께 겪으면서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어주면서 견고한 사랑을 쌓아갑니다. 언제 파탄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이들이 사랑을 유지하고 더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의 우직함과 강인함 덕인 것 같습니다. 소설 속에는 두 사람과 이들 가족, 그리고 원주민 간의 사랑과 연대가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상황은 다르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도 마냥 즐겁고 풍족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환경적인 위협에 여전히 노출되어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또 다른 의미의 서부 개척시대 이주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갈 길을 잃고 떠도는 사람들도, 터전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려운 삶에 새로운 힘과 신선한 자극을 느끼고 싶으신 분이나 역사소설 자체를 좋아하시는 분, 미국 서부 개척시대 이주민과 원주민들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있으신 분들은 읽으시면 분명 대만족하실만한 너무 좋은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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