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책 리뷰
1.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가 생각나는 소설
존경하는 SF 소설가 테드 창이 쓴 걸작 중편 소설 중에 그 이름도 생소한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미래를 배경으로 가상 게임인 '데이터어스'에 투입되는 인공지능 애완동물 디지언트의 운명과 이들을 교육하는 전직 동물원 조련사 애나의 이야기입니다. 신생 게임이 쏟아지는 환경 속에서 사용자가 줄어드는 게임 속 디지언트의 운명을 조명하면서 인간과 인공지능 가상 생명체와의 관계, 그리고 그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밀도 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제가 이 소설에서 특히 주목한 부분은 조련사 애나와 게임 속 디지언트들의 노력의 순도와 무관하게 벌어지는 게임 환경의 변화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구조, 그리고 그 속에 개별자로서의 인간과 인간 비슷한 존재들의 형편에 대한 묘사입니다. 테드 창은 인간이 창조한 인공지능이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고 해서 관계를 삭제해도 좋은가? 의 문제와 변화하는 환경에 자본주의 논리에 맞게 효용이 줄어든 존재는 용도폐기해도 좋은가에 대해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중 후자의 문제가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에 등장하는 늙은 노동자 한탸의 처지와 매우 유사하게 다가옵니다.
2. 업에 관계없이 책의 세계에 빠져든 노동자의 변화에 대해
35년째 더러운 환경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는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한탸는 끊임없이 배운 데로 반복적인 노동을 하는 하급 노동자입니다. 산업화 시대를 지나온 우리의 노동자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오히려 당시 이 기술은 전문직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더럽고 지저분하며 노동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한탸는 35년이나 자리를 지키며 일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버려진 책을 압축하고 폐지로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책을 가까이하게 되고 수많은 책들 속에서 보석처럼 가치 있는 지식과 지혜를 얻게 됩니다. 마치 무협지의 주인공이 뜻하지 않은 기연으로 60갑자 내공을 얻거나 구음 진경 같은 절세 무공이 적혀있는 비서를 얻은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그리하여 한탸는 일을 하다 말고 책의 세계로 빠져들기 일 수입니다.
"종이 더미 발치에 있던 나는 손에 책을 든 채 수풀 속에 숨은 아담처럼 몸을 잔뜩 움츠리고 겁에 질린 시선으로 낯선 주변 세계를 둘러본다. 한번 책에 빠지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책 속에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이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그 순간 나는 내 꿈속의 더 아름다운 세계로 떠나 진실 한복판에 가닿는다. p16"
일 자체도 혼자 하는 데다가 더럽고 형편없는 환경에 같이 일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한탸는 고독 속에 반복적인 노동을 하지만 그럼에도 끝없이 쏟아지는 책을 통해 보다 차원 높은 것을 추구합니다.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영원과 무한도 나 같은 사람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을 테지. p18~19"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본 없이 노동을 하다 보면 항상 부딪히는 고통은 고용주와의 관계에서 옵니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는 수평적일 수 없고, 그 속에서 나의 고매하고 아름다운 영혼은 늘 상처받기 십상입니다.
"소장이 왜 나를 좋아하지 않는지, 왜 나만 보면 그렇게 험상궂은 표정만 짓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로 말미암은 고통의 낙인이 뚜렷이 새겨지고 부당한 분노가 서려있는 얼굴, 그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한없이 비참한 심경에 젖곤 했다. 그지없이 고결한 주인에게 추악한 골칫거리나 떠안기는 밉살스러운 고용인, 그 혐오스러운 인간이 나인가 싶어서... p58"
이 소설이 단순히 주인공의 노동에 대해서만 서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말도 안 되는 똥 사건을 두차례나 겪으며 주인공과의 인연에서 비껴가는 여성의 이야기,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인생을 성공하는 그녀의 모습을 익살스럽고도 의미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거기에 주인공의 마지막 장면을 인상 깊게 해주는 집시 여인과의 이야기도 단조로운 이 소설에 맛을 더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 속 주인공의 고뇌하는 노쇠한 노동자로서의 모습이 크게 다가오는 것은 한탸의 모습이 우리에게 닥쳐올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3. 성실한 노동자가 맞닥뜨리는 세계의 변화, 그 잔인함과 변함없는 반복에 대해
우리의 성실함과 무관하게 세상은 빠르게 변화합니다. 아직 젊고 기민할 때는 다행히 그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시기를 넘어서면 늘 해오던 것을 선호하는 단계에 들어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꼰대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겠지요.
주인공 한탸에게도 유사한 순간이 닥칩니다.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대규모 자동화 압축 분쇄기의 등장을 목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장인정신이나 책에 대한 경외감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이 그저 생계와 휴가를 위한 일상과 분리된 '작업'으로 이 일을 하는 젊은이들의 새로운 직업관에 충격을 받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낀 장갑에 나는 모욕을 느꼈다. 종이의 감촉을 더 잘 느끼고 두 손 가득 음미하기 위해 나는 절대로 장갑을 끼지 않았으니까. 그런, 이곳에서는 그런 기쁨에, 폐지가 지닌 비길 데 없이 감각적인 매력에 아무도 마음을 두는 것 같지 않았다. p89"
새로운 변화에 당황하던 한탸는 문득 자신은 이러한 변화에 순응하고 적응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굴욕감에 잔뜩 긴장한 나는 뼛속 깊이 퍼뜩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새로운 삶에 절대로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중략)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삼십오 년을 잉크와 얼굴 속에서 일해온 내가, 더럽고 냄새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선물과도 같은 멋진 책 한 권을 찾아낼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매 순간을 살아온 내가, 이제 비인간적인 백색 꾸러미들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다니! 이런 통고를 받자 나는 평정심을 잃고 벌렁 나자빠졌다. p106"
그리고 한탸는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장면조차 잔인하거나 무섭다기보다는 애잔하고도 일면 수긍이 가는 감정이 드는 것이 이 소설의 백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은 입만 열면 제4차 산업 혁명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하여... 등등 이야기가 많습니다. 실제로 기계와 전자 장치가 인간의 영역을 대신하는 현실을 대하게 됩니다.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 미래가 이 소설 속 화자인 한탸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런 문제는 '나는 준비되어 있어, 내 직업은 그럴 일이 없어, 나만 아니면 돼'라고 하고 넘기기에는 너무나 전방위적이고 구체적이며 모두에게 밀접하게 다가와 있습니다. 자본이 없는 노동자에게 잔인한 세상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반복되는 법입니다. 그 속에서 가난한 당신은, 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