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배불리 먹지 말것] 책 리뷰
오랜만에 묘한 책을 만났습니다. 제목만으로도 뭔가 고개가 끄덕거리게 만드는 책이다 보니 그동안 읽을 책 리스트에만 넣어오다가 드디어 읽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목만 보고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해도 괜찮을 책이었습니다. 제목 외에 크게 얻을 정보나 교훈이 없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책의 표지나 저자 이름을 보면 포스가 느껴지면서 심오한 내용이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특히, 과식과 비만으로 건강을 걱정하거나 다이어트로 자신을 잘 가꾸고 싶은 필요가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구매해 볼 만한 뉘앙스를 팍팍 풍기고 있다 보니 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소식의 유익함이나 과식의 위험, 인체의 반응, 생리학 이론과 다양한 예시 등을 통해 배불리 먹지 않는 생활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이겠거니 예상을 했고 나름의 기대를 가지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100여 페이지 남짓한 짧을 분량임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배불리 먹지 않아야 한다."라는 당위론만 반복해서 펼치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변주의 문장이 등장하지만 결국 내용은 "인간이 평생 먹을 음식의 양은 정해져 있으므로 많이 먹으면 가난하고 실패한 삶을 살다가 빨리 죽게 된다. 세 번 먹을 걸 두 번으로 줄이고 음식을 절제하는 삶을 살면 건강해지고 부유하고 성공한 삶을 살면서도 오래 장수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왜냐? 배부르게 먹는 건 인명을 해치는 일이니까. 이런 논리입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시퀀스는 소식 → 절제 →건강 → 성공 → 장수 → 행복입니다. 주장을 이어보면 대충 이런 흐름이라는 거지 이게 또 뭐 그렇게 체계적이지도 않습니다. 저자가 18세기 사람으로 관상가이면서도 관상을 보다 보니 음식을 절제하는 것이 사람의 운도 바꿀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달아 심히 진지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반복해서 주장을 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훌쩍 넘어갈 뻔하기도 했습니다. 읽다 보니 제 판단과 무관하게 완전 가스라이팅 당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책의 기본 주장인 배불리 먹지 않는 소식과 절제의 생활 태도가 좋다는 것에는 십분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 주장을 위한 설명에서 지나치게 극단적인 면이 있고, 현대와 맞지 않는 내용도 제법 느껴집니다. "고기 같은 건 황제나 고관대작이나 먹는 거지 우리 정도의 사람은 두부 찌꺼기를 먹어도 된다." 이런 글을 대하면서 '음.. 맞는 말이지. 참으로 옳은 주장이야.'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배불리 먹어도 잘 먹고 잘 살며 의학의 도움으로 좋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많은 요즘 세상에 배불리 먹으면 인생 망하고 빨리 죽는다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적게 먹는 것만으로 인생이 성공하고 오래오래 산다는 이야기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역시나 쉽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주장에는 그에 맞는 근거가 필요하기 마련이고 여기에 설득력이 생깁니다만, 저자는 '내가 살아보니 그래! 인생의 지혜야!' 이런 느낌이라 좋은 말이 그냥 좋은 말에 그치게 됩니다.
이 책의 내용은 사실 심하게 말하면 짧은 팸플릿 정도면 충분할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파트가 4개나 있어서 다음 파트가 나올 때마다 혹여나 새로운 내용이 등장할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읽었는데 반복되는 중언부언 같은 이야기가 끝까지 나오다가 갑자기 내용이 끝나서 놀랐습니다. 이 훌륭하고 시의적절한 제목에서 이렇게 내용 없는 책이 만들어지다니 그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책을 읽기도 전에 미리 내용을 예상하고 기대를 하게 되면 예상과 다른 전개에 당황할 수밖에 없기는 해서 내용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텐데 개인적으로 이 책은 당황을 넘어 헛웃음이 나오는 수준이어서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