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후버 소설 <리마인더스 오브 힘> 책 리뷰
1. 올 타임 베스트! 최고의 소설
최고입니다. 일단 극찬을 박고 시작해야 할 만큼 탁월한 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 영미권 소설 중 올 타임 베스트라고 해도 좋을 작품입니다. 콜린 후버의 소설은 약 2년 전쯤 출간된 <베러티>로 만났습니다. 그때 이미 문장력, 작품 구성력 및 캐릭터 묘사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베러티>의 경우는 설정이나 캐릭터 자체가 일상과 조금은 거리가 있는 실험극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너무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지만 신기해서 관조하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리마인더스 오브 힘>의 경우는 제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등장인물과 주변 상황, 그리고 그들의 단순하지만 불안정한 관계에서 오는 놀라운 감정의 소용돌이가 있었습니다. 남의 일을 구경하는 느낌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내 옆의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목도하는 느낌입니다. 흥미롭게도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시도 마음 편한 순간이 없었습니다.
소설 한 권을 읽으면서 이 정도로 제 마음속에 복잡한 심경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저의 기억이라는 것이 민망한 정도로 휘발성이 강해서 언젠가 또 다른 소설을 두고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며 뻔뻔스럽게 주장할 것 같기는 합니다만, 적어도 이 순간 만은 진심이라고 굳이 진정성을 주장하고 싶습니다.
소설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여럿 있지만 단순 독자로서 소설의 최고 미덕은 읽는 재미입니다. 이 읽는 재미에도 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긴 글 읽기가 지옥처럼 어려운 도파민 범람의 시대에 장편 소설이 가져야 할 생존 1 조건은 흡입력입니다.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속도감 있게 끌고 가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바로 이탈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만 지겹거나 템포가 쳐져도 바로 웹툰이나 웹 소설, 또는 각종 OTT 영상과 유튜브 숏츠폼으로 달려가 버릴지도 모릅니다.
저는 최근에는 읽을 책을 고를 때 가능하면 두껍지 않은 책을 선택합니다. 두꺼운 책을 끝까지 완독하기가 쉽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나름 나이도 있고, 책도 오래 읽어온 저조차 이러한데 오죽할까 싶습니다. 콜린 후버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2000만 부 이상 팔아 재낀 작가입니다. 현실감 없는 부수입니다. 국내에서는 소설을 2000부도 찍지 못하는 형편인데 2000만 부입니다. 어마 무시한 양반입니다.
이 작품은 리뷰를 복잡하게 쓰지 않고 싶습니다. 그냥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이 자녀가 있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경험이 있다면,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경험이 있거나, 누군가와 사랑하는 감정을 키우고 있거나, 짝사랑으로 가슴이 아프거나, 회복하고 싶은 관계가 있거나, 억울하게 매도당한 경험이 있거나,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거나, 억울하게 깜빵에 다녀온 적이 있거나, 운동을 하다가 부상으로 다른 일로 전향해 본 경험이 있거나,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불안해한 적이 있거나, 세상이 허락하지 않은 사랑을 하고 있거나, 또... 뭐 하여간 뭔가 복잡한 감정이 있는 분이라면 당신이 누구던 이 소설을 꼭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러니까 안 읽으면 사람도 아니다 뭐 그런 말까지는 아니지만서도...
2. 영미 소설은 이런 것이다.
이 소설은 유독 읽으면서 '미국이로구먼'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제 머릿속에 마음대로 형성되어 있는 미국식 인간관계랄까? 가정 문화랄까 그런 것들이 매우 전형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 보수적인 한국인이 보기에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 같은 느낌이 드는데 뭐라고 하기에는 너무 꼰대스럽달까 그런 기분이 들게 합니다.
남자 주인공 렛저 입장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 스코티와 서로 마주 보는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양가 부모님과도 서로 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 멋진 친구가 어느 날 여자 친구가 생겼습니다. 둘이 좋아 죽나 싶더니 술 퍼먹고 음주 운전을 해서 사고가 나고 그 여자 친구란 작자는 혼자 사고 현장을 빠져나와 자기 집에까지 기어들어가 자빠져 잤습니다. 그 사이 절친 스코티는 그 사고로 인해 죽음을 당합니다. 여자 친구가 구조 요청만 했어도 살았을 친구가 말입니다. 그 여자는 이후 재판 과정에서도 미안한 모습조차 없어 보입니다.
그 여자는 그 당시 임신한 상태였고 깜빵에 들어갔으니 아이를 키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절친의 부모님이 그 아이를 키웁니다. 렛저는 그 아이 디엠을 마치 자기 아이처럼 아끼고 너무나도 미친 듯이 소중하게 사랑합니다. 일단 이 감정 자체가 좀 낯선 느낌입니다. 절친과 관계가 깊더라도 그 아이를 자기 인생보다 소중하게 챙길 수가 있나요? 여튼 렛저는 본인이 마치 스코티인 양 거의 그 집 사람처럼 생활합니다. 렛저의 부모님은 그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쿨하게 용인합니다.
여자 주인공 케나 입장에서는 반대의 이유로 절망적입니다. 사고 날의 진실은 자신밖에 모른 채 패닉에 빠져 있는 동안 재판은 진행되고 모든 사람들의 공적이 되어 악마화됩니다. 그 와중에 아이를 키우기는커녕 출산 이후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채 양육권을 빼앗기고 5년을 감옥에서 지냅니다.
출소 후 오직 아이를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마을로 돌아오지만 아무도 반기지도 않고 수중에 돈도 한 푼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소설적 우연이 작용해 렛저를 만나 섬씽이 생깁니다. 이후 디엠을 찾기 위한 외로운 노력과 절망감, 슬픔과 좌절, 간혹 품어보는 희망, 스코티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미안함 등의 감정이 끊임없이 뒤섞이며 혼란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렛저와의 관계가 진행되면서 로맨스가 불안하게 벌어지는데, 사람이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사랑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저게 가능한가? 싶은 생각도 있고, 또 그래도 응원하고 싶은 감정이 생깁니다. 결국 불륜처럼 누군가가 알게 되면 부적절해 보이는 관계이고 특히 스코티의 부모님이 알게 되면 엄청난 배신감에 관계가 파탄 나는 상황이라 이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마음 졸이며 살 떨리는 마음으로 읽게 됩니다.
역시 이거시 바로 어메리칸 라이프인가? 싶은 생각도 들고, 이 나이쯤 먹고 보니 이런 일이야 사람 사는 세상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싶기도 합니다. 답이 없고 꽉 막혀 있는 듯한 현실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의 끈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여튼 뭔가 아주 비상식적이지는 않지만 약간은 이상하면서도 미국은 이래도 되는가 싶기도 한마음으로 읽게 되는 이 소설은 고구마 백 개 정도 먹은 듯한 스토리를 계속 위태롭게 이어갑니다. 긴장감도 백배입니다. 후덜덜하면서 가슴 졸이고 한편으로는 응원하게 됩니다.
한편 소설 속 캐릭터들은 굉장히 매너가 있으면서도 솔직하고 매력적입니다. 이런 파격적인 설정이 한 편의 완성된 완벽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완벽할 만큼 착하고 이상적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5살 밖에 안된 디엠이 더 어른스럽기도 하고 촌철살인의 이야기를 막 합니다. 매우 극적인 캐릭터 설정이지만 다행히 불편할 정도는 아닙니다.
3. 장르 소설의 미덕이 빛나는 소설
사람이 막 죽어나가는 소설은 아니지만 이 소설은 장르소설이 가져야 할 최고의 미덕을 모두 가진 소설입니다. 일단 두껍습니다. 이 정도는 돼야 이 정도 가격에 충분히 읽은 만한 가성비 좋은 소설입니다. 페이지당 단가로 치면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이 요래 쌀 수가 없습니다. 웹 소설로 치면 엄청난 회차가 나올만한 소설입니다.
두꺼운데 지겨우면 최악입니다. 이 소설은 정말 집중해서 쏙 빠져들기 딱 좋도록 흡입력이 넘치는 소설입니다. 오랜만에 지하철에서 내릴 곳을 놓칠 뻔했던 소설입니다. 독자의 감정을 들쑤시고 휘저어 뒤집어엎어 놓는 기술이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급입니다. 읽으면서 '와 이게 뭐지?'하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여러 번 했습니다.
계속 감정에 대해 언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소설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완벽하게 블렌딩해 놓았습니다. 슬프기만 한 것도 아니고 즐겁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상황이 좌절감이 들 만큼 우울하면서 절망적입니다. 이 상황에 주인공 케나의 기본적인 감정은 우울과 슬픔, 미안함, 죄책감 등입니다. 그러나 인간인지라 기대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렛저에게 금세 빠져듭니다. 디엠을 지키겠다는 렛저에게 상처도 받고 위로와 희망도 보고 설렘과 사랑, 육체적 에로틱함도 빠짐없이 경험합니다.
렛저 역시 친구의 아이 엄마를 악마처럼 미워하는 감정으로 5년을 보냈다가 그 실체를 대하며 연약하고 상처받은 피해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사실을 나 혼자 주장할 때의 두려움과 막연함을 느끼면서도 친구의 여자였던 사람에게 쉽게 호감과 사랑을 느끼는 자신을 깨닫습니다. 제3자가 보면 비정상적인 상황이고 불륜 같지만 당사자는 실존하는 감정일 뿐입니다. 누구의 편에 설 것인지 갈등하는 괴로운 모습의 렛저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상황과 경험이 떠오릅니다.
이 소설은 두 주인공 케나와 렛저의 시점으로 번갈아 진술이 진행되며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다중 시점의 이점은 스토리를 입체적으로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만, 이 소설은 디엠이라든가, 디엠의 할머니, 할아버지 등의 시선은 개입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두 남녀 주인공의 시점만 끝까지 반복됩니다. 이 설정에서 저는 이 소설이 막장 드라마같이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상황은 녹녹치 않지만 서로 이해하고 사랑을 키워가는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로 읽혔으면 하는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아주 잘 적중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점점 감정이 메마르고 건조해지는 현실에 조금씩 서글퍼지는 시점에 이 소설을 읽게 되어서 상당히 고양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누군가 이 소설을 읽고 제 리뷰를 보시면 '에이 뭐 이렇게 오버야?'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소설의 또 다른 한 가지 장점은 누가 읽느냐에 따라 재미가 다르고 정서가 다르고 반응이 제각각이라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 이 소설을 읽으신다면 꼭 저처럼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극적인 재미를 충분히 느끼시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