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그림책 리뷰
"비에도 지지 않고"는 일본의 아동문학가, 시인, 농촌계몽가, 화가, 교육인인 미야자와 겐지의 시를 바탕으로 그린 그림책입니다. 뜬금 없이 이 책을 보게 된 이유는 <읽는 재미>라는 책을 읽다가 내용 중 소개되어 있어서 그 화풍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영업을 당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원래 책에서 소개한 그림책은 일본의 애니메이터 야마무라 코지의 그림 버전이었는데, 최근에 국내 유명 일러스터 동화 작가 곽수진 님의 버전이 나와 있어 비교해 읽으니 흥미로웠습니다.
1. 야마무라 코지 버전의 '비에도 지지 않고'
원조격인 야마무라 코지 버전의 "비에도 지지 않고"는 2015년 그림책공작소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시의 원문에 무척 충실하고 미야자와 겐지의 삶이나 작풍에 상당히 가까운 느낌입니다. 소박하고 정갈하면서도 다정한 느낌을 주기 위해 색을 최대한 빼고 연한 녹색과 흑색에 가까운 톤을 살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림 속에 등장하는 곤충이나 동물, 인물들의 디테일이 장인의 포스를 느끼게 합니다. 뭔가 그림과 글을 읽고 있으면 저절로 겸손해지고 고개가 숙여지는 숙연한 느낌이 강한 그림책입니다. 아이들 동화책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무거운 느낌이 납니다.
2. 곽수진 버전의 '비에도 지지 않고'
국내 일러스터 곽수진님의 그림으로 탄생한 "비에도 지지 않고"는 2021년 언제나북스에서 출간되었습니다. 표지부터 분위기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곽수진님은 본인의 화풍 자체의 영향도 있겠지만 기존 스타일을 본인에 맞게 확 바꾼 느낌입니다. 훨씬 밝고 화사하며 부드러운 느낌이 강하고, 편안하게 볼 수 있어 아이들에게 더 사랑받지 않을까 싶은 그림입니다. 동화스러운 그림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좋아 희망과 위로에 더 초점을 맞춘 듯한 분위기 입니다.
똑같은 시를 가지고 이렇게 다른 그림책이 탄생된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그림이 글에, 글이 그림에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림책에 그림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느낄 수 있었고, 일러스터의 역량과 개성에 따라 완전 다른 결과물을 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기회되시면 비교해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참고 삼아 미야자와 겐지의 시 "비에도 지지 않고" 전문을 올려드립니다.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욕심은 없이
결코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자기 잇속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초가집에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볏단 지어 날라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별거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 들면 눈물 흘리고 냉해 든 여름이면 허둥대며 걷고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