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성준 <읽는 기쁨> 책 리뷰
1. 책 리뷰를 책으로 읽는 오묘한 마음
책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이심전심이라고 서평 책을 제법 찾아 읽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금방 시들해졌습니다. 당시에는 서평을 쓰는 블로그를 찾아다니며 서평을 읽고 댓글을 달고 의견을 주고받는 일이 일상이었데, 매일 읽는 블로그 서평을 몇 개 모아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책이다 보니 읽기만 할 뿐 의견을 전할 수 없으니 공감 작용이라는 중요한 요소가 빠져서 너무 심심하고 아쉬웠습니다.
책 리뷰를 엮은 책이 출간된다는 것은 출판사 편집자가 납득할 만큼 정통 스타일의 서평을 쓴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야매 리뷰를 즐기는 저로서는 피식하는 웃게 만드는 위트 넘치는 글을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단행본 책이라는 룰을 통과한 리뷰들은 대체로 너무 거룩한 글들이었습니다.
이런 서평 책 들을 몇 권이나 읽은 끝에 얻은 결론은 '책 추천은 리스트 면 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서평집이라 하면 미친 필력의 신형철 님이나, 황현산 님의 책 정도가 아니면 굳이 읽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2. <읽는 기쁨>이 남다른 기쁨을 주는 이유
편성준님의 <읽는 기쁨>은 서평집이기는 하지만 매력이 넘치는 책입니다. 그의 저서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처럼 이 분의 글은 '살짝' 웃깁니다. 필력이 좋아서 많이 웃기지는 않습니다. 좋은 글은 대체로 배시시 웃게 만들기는 하지만 배를 두들기며 웃기에는 수준이 높으니까요. 이 분의 글은 살짝 웃기고 의미도 있는 데다가 가독성도 무척 좋았습니다.
글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기본적인 스탠스가 진지, 근엄이 아니라 유쾌, 상쾌입니다. 그렇다 보니 글을 읽는 저도 가벼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먹고살기 힘들고 안팎으로 우환이 많은 시대가 아닙니까? 책마저 진지하면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좋아하는 책을 소개해 주면서 살짝 유쾌하기까지 하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이 책이 유독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저자의 태도나 문체에도 있지만 내용 자체에도 있습니다. 소개하는 책 자체에 대한 내용과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의 비율이 아주 좋습니다. 고기로 치면 속살과 지방질의 비율이 적절해 질기지도 않고 느끼하지도 않은 감칠맛 넘치는 고급 육과 같습니다.
3. <읽는 기쁨>을 빨리 읽어재낄 수 없는 이유
글도 좋고 읽는 재미도 있는데 이 책을 완독하는 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일단 책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문장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단어나 문구가 없어서 마치 대화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듭니다. 마주 앉아서 끊임없이 책에 대해 수다를 떠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읽으면서 저도 모르고 실시간으로 맞짱구를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개하는 책에 대한 내용도 공감이 많이 가고 읽었던 책이 나오면 뭐라도 얘기하고 싶은 마음에 들썩이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을 잘 소개할 때면 '아, 이 양반 뭘 좀 아는구먼!'하고 감탄합니다. 읽을 뻔했지만 넘어갔던 책을 소개할 때는 '아, 이거 읽으려다가 말았는데 읽을걸..'하고 메모장에 적게 되었습니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자꾸 책 정보를 찾고 이북이 있는지, 도서관에 있는지 확인하느라 진도를 나갈 수 없었습니다. 제가 좋아한다고 주장하지만 거의 못 읽는 SF에 대해 소개할 때는 뿌듯하기도 하고, 금방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을 소개할 때는 일부러 찾아서 읽어보느라 책 읽는 걸 또 멈춰야 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혼자 또 흥분하다가 잊어버리고 못 읽는 책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걸 소개받는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무척 행복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고 좋은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