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라인 옹 작품세계에 입덕할 수 있을 것인가?

로버트 A. 하인라인 중단편집 <지구로부터 온 위협> 책 리뷰

by 돈다돌아
k542832205_1.jpg





1. 하인라인 SF의 매력... 중 일부.


나의 사랑 너의 사랑 하인라인 옹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이 양반이 SF는 물론 게임 세계에까지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심히 약한 감이 있습니다만, 영미 SF에서는 전설 같은 존재입니다. 소설 분야로 한정하면 SF는 장르소설 중에서도 하위 장르라 팬층이 극히 제한적이기는 합니다. 그렇기에 근본이자 본류인 하인라인 옹의 소설은 관심을 가질 만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를 SF의 세계로 이끌어준 분이라 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인라인의 소설은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출판사에서 산발적으로 출간되어 왔는데, 2017년 시공사에서 총 5권으로 정리한 <로버트 A. 하인라인 걸작선>이 출간되어 하인라인 옹 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한 바 있습니다(저도 물론 구매해 책장에 고이 모셔두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걸작선은 두 번째 권 "하인라인 판타지"를 제외하면 주요 장편 소설로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아작에서 출간한 하인라인 중, 단편 전집 시리즈는 하인라인 월드를 완성시켜 주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지구에서 온 위협>은 하인라인 중, 단편 전집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집입니다. 표제작 "지구에서 온 위협"이 부드럽게 시작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 작품집의 본류는 하인라인 미래사 시리즈이자 첫 장편이라고 볼 수 있는"이대로 간다면"과 이어지는 작품 "코벤트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편 "부적응자"까지 합본되어 있어 읽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작품집이 완성되었습니다.



하인라인 옹의 작품 세계나 매력에 대해서는 할 말이 무지하게 많습니다. 그러나 책 리뷰의 범주를 벗어나기 때문에 접어두고 이 책에 수록된 작품에 한정하면 맛보기 한입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대로 간다면"이나 "코벤트리"가 가벼운 작품은 아니기 때문에 맛보기 한입보다는 여러 입이라고 해야겠지만 하인라인이 가지 다양한 매력과 스펙트럼을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맛보기 내지는 입문서에 가깝습니다.


다운로드 (2).jpeg




2. 지구에서 온 위협 속 보석 같은 작품들...


사실 2010년 오멜라스 출판사에서 출간했던 <코벤트리>에 핵심 작품인 "이대로 간다면"과 "코벤트리"가 소개되었습니다. 내용으로만 따지면 "이대로 간다면"이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SF 소설 제목으로 쓰기에 좀 난해하다 보니 비중이 적은 "코벤트리"가 제목이 되었습니다. 문학적이고 서정적인 SF가 유행하는 지금이라면 사실 "이대로 간다면"이 더 제목으로 어울리는 상황인데, 당시는 그런 흐름이 없었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비중도 작고 내용상 사맞디 아니하는 "지구에서 온 위협"이 끼어들었고 작품집의 제목까지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지구에서 온 위협"이은 짧고 비중도 매우 매우 적습니다만 하인라인 작품 세계에서 한 작품군을 대표할 수 있는 매력을 살포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스타십 트루퍼스"로 대표되는 밀리터리 덕후스러운 하인라인도 사실은 가볍고 쉽고 통통 튀는 어린 주인공을 내세운 청소년 소설을 매우 잘 쓰는 작가입니다. "지구에서 온 위협"은 그런 하이틴 소설 같은 매력이 넘치는 작품입니다. 달에 건설된 시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청춘 연애소설 같은 이 작품은 읽다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 편안해지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이대로 간다면"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발표된 작품 기준으로는 최초의 장편 소설(현재는 중편으로 분류되었습니다만)입니다. 이 소설은 하인라인 소설 세계의 근간이 되는 철학적 지평을 가늠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소설의 배경인 신권 독재 시대의 엄혹함이라든가, 저항군의 이야기와 이들의 치열한 전쟁 이야기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가다 보면 시대를 초월하는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됩니다. 작금의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의 정치, 사회적 분위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소설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코벤트리"는 "이대로 간다면"의 약 60년 이후 이야기입니다. 직접적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주제의식에서 하나로 이어지는 시리즈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사회 통념으로 통제되는 사회에서 부적응한 사람들이 추방되어 내다 버려지는 장소가 바로 코벤트리입니다. 주인공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개인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간섭하지 않는 곳으로 생각해 코벤트리로 이주하게 되지만 실제 코벤트리는 거의 무법지대에 불합리와 적자생존이 지배하는 곳이었습니다. 단순하게 한 가지 사상이나 체계를 지지하거나 숭상하지 않는 저자의 입장을 엿볼 수 있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부적응자"는 매우 짧은 단편으로 화성 이주 프로젝트처럼 소행성 이주와 테라포밍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소행성 이주가 가능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설정은 배경에 지나지 않고 누가 이 일을 하는가에 주목해야 합니다. 지구에서 잘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자들을 데리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소행성 이주 계획을 실현시켜 나갑니다. 지구에서 부적응한 이들은 우주선 내 가속으로 인한 신체적 문제에도 여전히 부적응자로 보입니다. 그중 주인공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능력 덕분에 실패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이 일을 성공적으로 해 낼 수 있습니다.


다운로드 (1).jpeg





3. 하인라인 사상의 출발점, 그리고 엔지니어적 관점...


국내에 하인라인 옹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스타십 트루퍼스"일 텐데 그것도소설보다는 흥행에 성공한 영화에서 기인하는 유명세입니다. 이 작품속 묘사와 구도 때문인지 하인라인 옹이 군국주의자가 아니냐는 오해도 많이 합니다. 그러다 다른 작품들을 함께 살펴보면 극단에 서 있는 무정부주의자 같은 입장을 보이기도 해 하인라인은 정치적 입장이 오락가락하고 엉뚱하다는 평을 하기도 합니다.



하인라인의 정치적, 사상적 견지는 이 작품집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스탠스가 근본이 아닐까 합니다. "이대로 간다면"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되는 신정국가와 대항해 싸우는 저항군의 입장으로 "자유가 짱이다!!"라는 하인라인 옹 근본 주제의식이 잘 드러납니다. 특히 억압의 핵심 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위한 전쟁 직전 3세대에 걸쳐 찌든 예언자에 대한 막무가내식 신봉, 이미 익숙해져 체화된 신본주의적 사회 분위기 등에 빠른 변화를 주기 위해 정신 세뇌를 쓰고자 하는 시도에 대한 논쟁에서 극에 달합니다.



국민들이 저항군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군사적으로 성공해도 이후 지지를 얻고 토대를 쌓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생기게 되는데 이런 불안 요소를 없애기 위해 저항군의 입장을 옹호하도록 세뇌하는 것이 쉽고 빠른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따위 방법은 예언자가 하던 짓을 저항군이 그대로 답습하는데 지나지 않아 결국 누가 권력을 갖는가만 바뀐 꼴이 됩니다. 정신 세뇌를 실시할 것이냐 다소 시간이 걸리고 혼란스럽더라도 개인의 자유의지에 맡길 것이냐로 치열한 논쟁이 발생하는데, 결국 자유에 맡기는 것으로 결정합니다. 이 결정적 장면이 하인라인 옹의 사상을 소설적으로 선언하는 것에 가까워 보입니다.



뉴 예루살렘을 총공격하는 과정에서는 하인라인 특유의 엔지니어적 관점과 묘사가 볼만합니다. 하인라인 옹이 다른 두 그랜드 마스터인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와 접근 방식에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두 작가는 과학자적 관점과 기술의 거시적 관점에서 서술해 내는데 특징을 보인다면 하인라인 옹은 발명가나 현업 엔지니어와 같은 입장에서 글을 써 나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독자 입장에서도 장면 장면이 디테일하고 현장감이 넘치는 느낌으로 몰입하기 좋습니다.



작가의 창작 시기 기준으로 마술 같은 새로운 과학적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치고 써나가는 것이 아니라 당대 이미 개발되었거나 상용화는 안되었더라도 충분히 현실성이 있는 기술들을 가져와 실현할 수 있는 기술적 관점에서 장비나 장치들을 구성하고 이를 써먹습니다. 물론 그 기술들이 미래에 다 현실이 되고 상용화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접근하는 방식이 그러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저자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전쟁터에서 상호 간의 의사소통, 통신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며 묘사합니다. 당시 가능한 방법으로 초능력자들을 활용한 텔레파시 통신을 차용한 것도 지금 보면 기가 찰 일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매우 진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코벤트리"는 간단히 정리하면 "돌아온 탕자"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체제에 반항하던 주인공이 자유로울 줄 알았던 추방지로 넘어가서 이런저런 생고생을 겪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무정부 상태의 현실을 확인하고 정신 차려서 다시 체제로 돌아오게 됩니다. 저자는 극도의 자유지상주의, 자유 만병통치론을 주장하기는 하지만 반대급부로 국가에 대해 가져야 할 의무에 대해서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점을 강론하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 초기작을 통해 저자의 변함없는 스탠스인 극도의 자유 추구(그 과정에서 무정부주의자 같아 보이지만 결국은 개인의 자유가 최고라는)와 자유 추구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의무 이행(이런 모습은 종종 군국주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구에서 온 위협>은 하인라인 옹의 소설 세계로 입덕하는 가늠좌 역할을 할 작품집입니다. 가볍고 유쾌한 매력으로 시작해서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을 미리 보기 하는 듯한 기술적 과점의 묘사와 철학적 질문 등이 훌륭합니다. 오랜만에 이 양반의 소설적 매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최근 발표되는 세련되고 아름다운 SF 소설들과 비교해 읽으면 또 다른 재미를 한껏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화면 캡처 2025-12-20 104651.pn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늦바람 난 노 교수는 왜 리스본으로 떠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