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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Dec 15. 2018

김창규 작가가 그리는 멋진 거짓말의 세계

우리가 추방된 세계 - 김창규 작가 SF 소설집


1. 국내 대중에 최적화된 SF 소설을 쓰는 보석과 같은 작가


   김창규 작가는 "웹 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4 : SF"편에서 SF 소설 작법으로 만난 적이 있지만 실제 그의 작품을 읽은 것은 처음입니다. 어째서 지금까지 접해 보지 않았는지 제 스스로도 이상합니다. 이미 이분의 소설에 대한 업계에서 평판을 잘 알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아마도 조금 거부감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여러 SF 소설 공모전에서 상을 탔고, 많은 분들이 대한민국 SF의 희망이라는 식으로 묘사하던 것에 불편함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 훌륭하신 분의 소설이 왜 이렇게 대중들의 호응을 못 받는 건지 못마땅하다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표제작이자 이 소설집의 첫 작품인 "우리가 추방된 세계"를 읽고 보니 많은 분들의 후한 평가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이 소설집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면서 이 분의 작품 세계가 매우 탄탄한 데다가 단순히 잘 쓰는 것을 넘어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SF 소설계의 오랜 고민은 한마디로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출 것인가?"입니다. 얼마 되지도 않지만 과학계와 SF 덕후들로 이루어진 골수 독자층이 있습니다. 이들은 어지간한 배경 지식을 가지고 SF 소설을 써도 오류를 찾아내고 아쉬운 점을 토로합니다. 그만큼 소설가들에게는 부담인 샘입니다.


   그러나 최대한 무오 한 소설을 써 낸다 하더라도 대중의 외면을 받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통상 독자들은 잘 써진 웰 메이드 SF를 만나면 "어렵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외면받을 수밖에 없겠지요.


   이런 딜레마에 앞서 근본적인 문제는 소설을 읽는 독자의 수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입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그나마 남은 독자들에게 최대한 어필을 하면서도 SF 특유의 장르적 정체성을 지켜야 아주 드럽게도 어려운 환경속에 놓인 것이지요.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해내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느냐... 여기서 또 한 번 힘이 빠지게 됩니다. 드럽게 돈은 안되고 읽어주는 독자는 얼마 없고, 과학계나 극성 덕후들은 맞네 안 맞네 따지고, 문학계에서는 순문학과 구분하며 차별을 합니다.('아, 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맞을 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내부인은 아니라서...) 시바 해먹을 수가 없습니다.


   이 와중에 김창규 작가가 국내 대중에 최적화된 SF 작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분의 소설이 그만큼 대중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확한 통계는 알 길이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책을 읽는 독자의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딱딱한 SF보다는 SF 적인 요소와 감성적 스토리텔링을 잘 버무린 작품이 경쟁력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김창규 작가가 이런 복합적인 요소가 잘 균형 잡힌 SF 소설을 쓰는 분이라고 판단됩니다.  







2. 김창규 작가가 그리는 완벽한 거짓말 SF의 세계


책의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SF 소설에서 작중 세계가 작동하는 무게감에 대해 두 가지로 언급합니다.

'과학과 지어낸 이야기'라는 조합에서도 알 수 있듯 작중 세계에서 과학적인 가능성을 심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은 두 가지 방향으로 작용한다. 첫째, 작품 속 세계가 이질적이면서도 개연성을 획득하는 모순된 효과를 낳게 한다. 둘째, 과학적 가능성을 든든한 후원자로 삼아 다른 곳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상상을 마음껏 조립할 수 있다.


   저자의 이 설명은 "우리가 추방된 세계"에 수록된 10개의 단편 소설들이 그 예시라도 되는 듯 완벽하게 적용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현실에 기반을 둔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라는 작중 세계를 과학적 가능성이라는 탄탄한 기반 아래 적당히 이질적이면서도 개연성을 잃지 않는 수준에서 균형을 칼같이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히 천재적인 감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분이 있느니 제가 굳이 SF 소설을 써 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될 듯하여 이제서야 안심이 됩니다.


   이 분의 작중 세계가 대중적 동감을 받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발견한 가장 큰 이유는 설정이 적절하다는데 그치지 않고 이 세계를 설명해 나가는 방식이 지극히 쉽고 단순하다는 점 때문입니다. 가끔 만날 수 있는 SF 적 후까시.. 아, SF 적 허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일부러 어려운 용어나 문장을 구사하지 않습니다. SF를 쓰시는 분들이 종종 '이 나의 우수한 지적 고뇌를 보여주마'라며 상당히 철학적이고 난해한 용어들을 쏟아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독자들의 허영심도 만족시켜주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다수의 대중에게 공감을 받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김창규 작가의 스타일은 상당히 좋습니다. SF 독자들이 많아지기를 고대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어둠 속에 한줄기 빛과 같은 희망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인은 주변에서 하드 SF 전문 작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는데 정작 제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소프트 SF라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작가가 표현해 내는 소설의 기반을 이루는 과학적 토대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드 SF 소설로 분류되는 외국 서적을 여러 권 번역한 전문 번역자기도 한 저자의 과학적 이해의 수준을 생각하면 하드 SF 소설을 쓰는 작가로 분류해도 전혀 무리가 없겠습니다만, "중력의 법칙"같은 하드 SF 소설과 비교해보면 이 분의 소설이 지향하는 방식과 스토리텔링, 인문학적 주제의식 등을 따져보면 전혀 하드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SF 대중화의 기수가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는 것입니다.






3. SF, 판타지가 사랑받는 웹 소설의 무한 성장이 말해주는 것들


   그러니까 "SF 소설을 말할 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늘 반복되지만 SF 소설은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과학 이론의 배경 세계에 대해서 조금만 이해하면, 아니 그냥 그러려니 하면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것이지요. 물론 과학적 배경 세계의 설정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작가의 책임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SF 소설이 연애소설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SF라는 장르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니까요.


   유독 우리나라가 SF 소설 팬층이 없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이렇게 재밌는 장르를 왜 안 읽는단 말인가?'라는 의문은 지금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가 '어렵다'는 것 같습니다만, '어렵다'가 진입 장벽이 되는 이유는 역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처한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극악의 자본주의 체제가 공고히 자리 잡고 있는 시대에 자본을 가지지 못한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생존 자체가 버거운 세상입니다. 사는 것이 힘들고 괴로운데 무슨 여유가 있어서 '어려운' 소설을 읽는단 말입니까? '어려움'을 이겨내는 지적 유희에서 오는 즐거움을 즐기기에 우리는 너무 피곤합니다. SF 소설을 즐기기 위해 가져야 할 배경지식을 익히는 것도 괴로운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SF 소설을 편히 즐기려면 읽기에 쉬워야 합니다.


   웹 소설의 성장세에 대해 많은 매체가 다루고 있고, 주목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책 시장은 나날이 쇠퇴하고 있지만 웹 소설의 시장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웹 소설의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일까요? 저도 궁금해서 웹 소설을 조금 읽어보기도 했지만 다양성은 늘었을망정 웹 소설의 수준 자체가 크게 나아진 느낌은 없습니다. 오히려 비슷한 이야기들을 무한 반복 양산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그런데 독자는 늘고 점점 많이 읽히고 있습니다.


   이 현상이 시사하는 바를 놓치면 안 됩니다. 웹 소설의 특징은 각 장르별로 주어진 기존의 문법과 클리셰를 그대로 답습한다는 점입니다. 작가들의 역량이 문제가 아니라 독자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의 니드는 '늘 하던 대로 약간만 변형된 이야기를 편하게 읽고 싶어 한다'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가볍고 편하게 늘 그 스타일과 문법을 유지해달라는 요구입니다. 그래야 독서만이라도 지극히 가볍고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것이죠. 현실처럼 힘든 느낌을 원치 않습니다. 오히려 간단하고 변함없는 클리셰가 웹 소설 독자들에게 판타지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지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쯤 되면 왜 훌륭한 SF 소설이 의도치 않게 외면받는지 답이 나옵니다. 읽어보면 너무 훌륭한데 읽기가 싫고 읽기도 어렵고 너무 고차원적이라 굳이 힘들게 읽을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은 독자가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 이렇게도 훌륭한 김창규 작가의 소설이 각광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웹 소설에 난무(?) 하는 각종 SF와 판타지 작품들이 수십만 뷰를 기록하는 현상은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나마 제가 보기에 정말 대중적이고 쉽게 쓰는 이 분의 스타일조차 안 먹히면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만.


   순 문학이라 불리는 소설들이 일부의 충성 독자들의 고혈을 빨아 유지하는 현실에서 가뜩이나 독자가 부족한 장르 소설 시장조차 유튜브라는 철옹성에 치여 어디 발붙일 곳을 못 찾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럼에도 SF 소설이 명맥을 유지해오며 독자들의 선택을 기다린다면 유행이 돌고 돌아 언젠가는 각광을 받을 날이 오지 않을까요?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져봅니다. 안되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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