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돈다돌아 Dec 21. 2018

영화음악의 거장 히사이시 조가 일하는 방식

책 리뷰 : 히사이시 조 - 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





1. 일본 최고의 영화음악 감독 히사이시 조는 어떻게 일하는가?


"히사이시 조"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음악을 비롯해 일본의 작가주의 감독으로 분류되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에 주로 참여한 유명한 영화음악 감독입니다. 막귀인 제가 딱히 영화음악에 조예가 있을 리가 만무하지만 그래도 좋은 건 왜 좋은지 몰라도 딱 들으면 압니다. "좋아 효~~"라는 느낌 정도는 누구나 있는 것이지요.


누가 안 물어봐서 제가 직접 밝힙니다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인생의 OST 중 한 곡을 꼽으라면 그 유명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중 [인생의 회전목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곡을 왜 좋아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제가 3박자 왈츠를 좋아한다는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왈츠가 뭔지는 알지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이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좋아하는 곡들은 대부분 왈츠더군요. 두 번째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돌고도는 인생의 수레바퀴 같은 이미지 역시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닉네임이 괜히 돈다돌아는 아니겠지요. 인생의 회전목마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곡입니다. 이 곡으로 저는 저의 취향과 정체성을 일부 찾았으니 이 곡을 작곡한 조 형님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생각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생의 회전목가 -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대머리라 더 호감 가는 이 형님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어떻게 한다? 당연히 저서가 있는지 찾아보고 읽어보아야겠지요. 구글링으로는 깊이가 부족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하여 읽은 책이 [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입니다.


   이 책은 2000년대 초 무렵에 히사이시 조가 자신의 음악 인생 전반에 걸친 소회와 에피소드, 향후 결심 등을 담은 책입니다. 이 책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드려야 할 부분이 있는데, 애초에 일본에서는 2006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이 2008년 한국에 [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그닥 큰 반향이 없던 가운데 2016년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라는 뭔가 다른 뉘앙스의 제목을 달고 재출간 된 것입니다. 


   저는 절판된 구판으로 읽었는데, 책의 내용으로 봐서는 구판의 제목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만 도대체 왜 제목의 뉘앙스가 이렇게 바뀐 건지 또 쓸데없이 궁금해서 구글 번역기를 동원하여 일본어판 원제를 따져보니 이러합니다. 무식하게 직역을 해 보았습니다. 


감동, 창조는 이러하다 - 일본 최고의 사운드트랙 감독 히사이시의 음악몽


   그러니까 책의 제목으로 유추하자면 이 책은 히사이시 조 형님이 영화음악으로 이룬 업적을 중심으로 음악을 만들어 낼 때 어떻게 감동을 줄 수 있었는지 그 스토리를 한 번 풀어헤쳐 보겠다. 이런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실제 책의 내용도 정확히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굳이 따지자면 구판의 제목이 원제의 의도를 더 정확히 전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절판되었지만 말입니다. 두 책을 비교해보니 본문의 번역은 거의 97.2% 정도 동일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제목이 바뀐 것, 그리고 소제목이 너무 자잘하게 많아서 딱 잘라 절반으로 줄인 점 정도, 본문에서 살짝 번역이 눈에 안 띌 정도로 다듬은 것 정도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전체적인 가독성은 재출간 된 판본이 더 낫습니다. 






2. 아니 그래서 히사이시 조 감독은 어떻게 일을 한다?


   [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는 총 6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감동을 마주 하라", "직감력을 연마하라", 영상과 음악의 공존", "음악, 그 신비함에 대하여", "일본인과 창조성", "시대의 바람을 읽는다"의 여섯 가지 챕터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시바 졸라 열심히 해라. 죽을 만큼, 이러다 뒤지것다 싶을 만큼 남들보다 극한으로 하라


창조력을 발휘해서 큰일을 하는 사람들은 예정 조화를 싫어한다. 그래서 나도 매번 진검승부를 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고 나 자신을 한계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그래야만 일반적인 범주를 초월한 작품이 태어나는 것이다.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힘들지만, 상상을 초월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것이 바로 일의 재미가 아니고 무엇이랴. p11


   그렇습니다. 대충 해서 되는 일이 없습니다. 세계적인 거장은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서 호로록 말아 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서 이번이 이생의 마지막 작품이얏~ 하는 정신 상태로 하라는 것입니다. 뭔가 상당히 일본스럽다는 느낌도 나지만 전 세계 누구에게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식상하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충분히 놀랄 만큼 대단한 업적을 이룬 대가가 자신의 경험을 십분 발휘하여 솔직하고도 담백하게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묘하게 설득력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읽다 보면 공감되는 것을 넘어서 감동에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엄청난 부자가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해!' 하는 것과 쥐 뿔도 없는 사람이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해!'하는 것의 무게감이 다른 것처럼 이미 결과물로 보여준 다음 "니 내가 누군 줄 아나? 내가 말이야 느그 소장하고 어이~ 밥도 묵고~ 어이~ 사우나도 하고~ 다 했어 임마" 라고 하면 뭔가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3. 그러니까 히사이시 조가 뭘 어떻게 했다고 쓰여있단 말인가?


이 거참 이거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구구절절 고개를 끄덕끄덕할 수밖에 없는 훌륭한 지침서이자 에세이를 뭐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책 전체를 발췌할 수도 없고, 일일이 읽어서 오디오 파일을 올릴 수도 없고, 거참 답답합니다. 책이 다 좋아요. 어느 한 부분을 설명하면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과 밸런스를 훼손하기 때문에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할 수밖에 없단 말입니다. 이 양반들아!


읽어보세요. 읽어봐!! 책이 또 나름 얇고 가격도 싸! 그것도 힘들면 전체 6 챕터 중에 1,2 챕터만 읽어도 좋습니다.


   1, 2 챕터가 주로 창조성에 관한 주요한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3, 4챕터로 가면서 영화음악을 중심으로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무게 중심이 옮겨졌다가, 5, 6 챕터로 가면 일본인의 특성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와 아시아의 일원으로서 본인이 경험한 일과 향후 하고 싶은 일로 마무리됩니다. 음악적인 부분에 크게 관심이 없으시다면 1, 2챕터만 읽어도 좋을 책입니다. 


   참, 후반부에 가면 일본이 역사적으로 아시아에 끼친 해악에 대해 스스로 왜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는지에 대해 비판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역시 사람은 배우고 익히고 생각을 해야 상식을 장착하고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

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은 아시아 주변 국가들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 태평양전쟁에 대해서 모르더라도 ‘전쟁은 슬픈 일이다’ ‘가슴 아픈 일이다’라고 느끼는 마음만 있으면 의식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의식을 가질 수 있으면 지식은 저절로 따라온다. 그런데 느끼는 마음이 희박하면 어떤 영화도, 어떤 사실도 그 사람의 머리와 마음을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무지로 이어진다. p171


   이뿐 아니라 자기 분야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미 이룬 분이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시대적 흐름을 읽고 최대한 맞추고자 노력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데에서 또 한 번 감동이 일었습니다. 성공하면 자기의 스타일을 고수하다가 자존심만 세우고 새로운 세대에 밀리는 안타까운 모습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 분의 유연한 자세는 매우 바람직하고 배울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조 형님의 뒷머리가 얼마나 더 벗겨지는지, 어떤 음악 행보를 보이실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겠습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아저씨입니다.




히사이시 조 아저씨가 참여한 지브리 애니메이션들


히사이시 조 아저씨가 참여한 기타노 타케시 감독 작품들


히사이시 조 감독이 참여한 한국영화 "웰컴투 동막골"


히사이시 조 감독이 참여한 국내 드라마 "태왕사신기" OST 

이 곡에 대해서는 책에서도 짧게 언급되어 있음.

매거진의 이전글 웨스 앤더슨 감독과 그 작품에 대해 알고 싶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