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과 사극과 좀비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

영화리뷰 - 창궐

by 돈다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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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중 스포일러가 "야귀"처럼 갑자기 튀어나올 수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반의 반쪽의 성공, 성격을 확실히 정하지 못한 야귀 액션 블록버스터 창궐


부산행 이후로 제작된 한국 장르 영화의 성공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야지 놓기는 못하겠고, 뒤늦게 전혀 임팩트 없을 때 아쉬움에 리뷰를 해 봅니다.


"물괴는 피했는데 창궐은 못 피했네..."


영화 창궐의 한 줄 평 중 하나입니다. 큰 기대와 함께 창궐을 보셨던 분들 중에 실망하신 대표적인 느낌이 아닐까 싶습니다. 찾아보니 나름 160만 가까이 관객이 들었으니 참패는 아닙니다. 5년 전 개봉했던 본격 좀비 영화 "월드 워 z"가 520만을 넘은 것을 고려하면 매우 아쉬운 성적이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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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궐"은 흥행을 기대할 만한 요소가 꽤 있었습니다. 우선 조선 시대 좀비물이라는 참신한 설정도 있었고, 이에 따른 본격 액션 영화인데가 블록버스터를 표방했으니 볼거리가 화려해 어지간하면 즐겁게 볼 여지가 많았습니다. 현빈, 장동건 투톱에 탄탄한 조연까지 기대를 한껏 할 만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 채 물괴의 구덩이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원래 결과론으로 "이랬어야 한다, 저랬어야 한다" 같은 이야기를 주절거리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주절거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결정적인 아쉬운 부분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래도 애정을 담아 장점과 단점의 비중을 맞추려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2. 우선 장점을 살펴보자


재미있게 잘 봤다는 의견도 제법 있었습니다. 그만큼 볼거리는 제공한 영화입니다.


1) 야귀 때가 나온다 야귀 때!


뭐니 뭐니 해도 조선판 좀비인 야귀 때의 등장 신은 아주 괜찮았습니다. 야귀들의 야심찬 액션은 역시 좀비 연기 강국 다웠습니다. 영화를 보는 와중에도 '와.. 참 애쓴다. 프로페셔널이다!'라는 감탄이 들 정도였습니다. 자다가도 온몸을 비틀면서 일어나지 않으실까 싶은 야귀들이었습니다.

3.jpg 단아하고 능력 있는 조연으로 등장했던 서지혜씨가 갑자기 야귀로 변해 왕을 공격하는 용도로 쓰이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습니다.


영화의 도입부 야귀가 처음 등장해 주인공 이청(현빈) 일행과 싸우는 장면부터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연회장면 사방에서 덮쳐오는 야귀 때 장면은 물론 결말 부 대궐 내 온통 야귀로 가득한 장면 등은 충분히 임팩트가 있었고, 나름 블록버스터라는 용어를 사용할 만했습니다. 정말 좋게 말해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로 한다면 나름 볼거리가 충분한 부분이었습니다.



2) 연기자 자체 발광!


현빈이 참신한 역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습니다. 현빈과 장동건 투톱이기는 하나 장동건 선생님은 출중한 외모와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흥행과는 거리가 먼 고독한 분이시라 좀 거시 커니 하기는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2001년대 초반의 "2009로스트 메모리즈", "해안선", "태극기 휘날리며"등의 영화는 좋았습니다. 미국으로 넘어가서 도전한 "워리어스 웨이"도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그 이후로는 크게 돋보이는 영화는 없는 것 같습니다. VIP 정도는 봐줄 만하겠군요)

4.jpg 현빈 씨도 장동건 씨도 자체발광, 저런 얼굴이라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겠네...


주연이 아니지만 왠지 주연 같은 조연들의 화려한 면면도 영화의 장점이었습니다.

5.jpg 김의성 슨상님은 어떻게 이렇게 얄미운 역할이 잘 어울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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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캐릭터의 조연들(그지같은 당시 복장이 디테일하게 잘 구현되었음)



3) 디테일한 미장센, 미술!


주인공인 줄 알았더니 액세서리였던 "야귀"들의 실감 나는 특수분장은 어디다 내놔도 꿀리지 않습니다. 특히 시커먼 핏줄 묘사는 아주 좋았습니다. 야귀로 변해가는 과정도 볼 만했습니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인 만큼 복장이나 무기, 말, 건물 등 모든 면에서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4) 절대 빠질 수 없는 화려한 액션!


현빈 씨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있던 세자 이청 역을 하면서 할 일이 없었는지 매일 무술 연마만 한 설정인지, 아니면 이연걸 씨나 견자단이랑 어울려 놀았는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무술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설정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대 활약하는 슈퍼 액션 신을 자주 선보일 수 있었겠지요. 덕분에 긴 호흡으로 독특하고 화려한 액션을 선보입니다.


특히 청나라 복장과 중국식 두꺼운 도를 들고 선보이는 초반 액션과 조선 의복과 한국식 검을 들고 펼치는 동작의 차이를 관심 있게 보면 더욱 흥미롭습니다. 이 정도 무술 실력이면 야귀고 뭐고 밤새도록 덤벼들어도 끄떡없습니다.


여기에 병조판서 김자준(장동건)의 무적 액션도 놓치면 안 됩니다. 병조판서라 그런지 의외로 싸움을 잘합니다. 나중에는 무슨 조화인지 엄청난 좀비 파워까지 선보여 무서운 힘과 카리스마를 보여줍니다. 잘생긴 배우는 뭘 해도 멋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검과 창, 화살 등으로 각기 색다른 액션을 선보이는 조연들의 모습도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3. 그렇다면 특단점을 알아보자.


제법 성공한 요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실망을 안겨준 영화로 남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야귀 때가 나온다 야귀 때!


조선형 좀비 "야귀"의 등장은 이 영화의 핵심 차별화 포인트였습니다. 조선시대 좀비라니 신선한 설정이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좀비 영화는 좀비 영화만의 문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좀비 영화의 미덕을 전혀 따르지 않아요. 아니 이해나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좀비 영화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좀비 영화가 주는 쾌감은 '좀비가 등장한다'라는 사실에 있지 않습니다. '좀비를 때려잡는다'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핵심은 '좀비 아포칼립스 상태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을 만큼 파괴적이다'라는 지점입니다. 좀비의 확산은 무차별적이고 비가역적이어서 도무지 살아남은 인간들이 되돌리거나 모조리 말살하기에 무리입니다. 그렇기에 인간들은 무기력하고 답이 없으며 그저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런 기본적인 설정에서 핵심은 좀비에 있지 않고, 살아남은 인간들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입니다. 좀비 영화는 극한의 상황을 부여하기 위한 소재입니다. 좀비 창궐 상황에서 물자도 부족하고 살아남기도 벅찬 환경에서 인간들은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인간의 본성은 어떠한가, 생존에 내몰린 인간은 얼마나 추하고 이기적인가? 그 와중에도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주인공의 발버둥이 어떻게 공감을 불러올 것인가? 등 다채로운 인간 군상을 보여주기에 아주 적합한 장르이기에 잘 만든 좀비 영화를 보고 나면 단순히 액션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 깊이 있는 휴먼 드라마를 본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부산행은 다양한 인간 군상을 잘 표현해주고 있어 관객으로 하여금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창궐'은 어떻습니까? 이 영화에서 "야귀"라는 존재는 우선 밤에만 활동할 수 있는 반쪽짜리 좀비입니다. 좀비와 뱀파이어의 이종 교배 물 같습니다. 살아있는 시체인 좀비가 햇볕을 왜 무서워하는지, 왜 타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설정입니다. 그것도 좋습니다. 그렇다고 칩시다. 이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야귀"를 완벽하게 통제합니다. 군대가 오지 않더라도 적어도 "야귀"가 마구 퍼지는 것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막습니다. 양화진 쪽에서 창궐한 "야귀"는 그냥 계속 그 동네에 머물고 있습니다. 낮에는 못 움직이니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정치적 암투를 위해 한양으로 일부러 수입하지 않고선 지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통제 가능한 재해는 재해가 아니지요. 위협도 아닙니다. 그러니 영화 속 재난과 같은 "야귀의 창궐"은 전혀 위협적이지 못합니다. 그런데 관객이 긴장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런 형편이니 "야귀가 창궐하는데 왜 하품이 나는가?" 이런 평이 나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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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밤에만 활동하기 때문에 위협적이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야귀" 하나하나의 전투력도 떨어집니다. 그냥 밀어내면 밀려나요. 좀비 특유의 인간을 물어뜯겠다는 본능이 좀 약합니다. 양반들도 아닌데 체면을 차립니다. 어지간히 힘 좋고 무술 실력이 있으면 그다지 위협거리가 아닙니다. 부산행의 마동석 캐릭터를 생각해 봅시다. 힘 좋은 조폭 같은 캐릭터인데 이 양반이 기차 안에 좀비들을 완벽하게 막아내지 못해요. 힘이 세서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오래 막아내다 뿐 결국은 좀비들에게 밀리고 자신도 좀비로 변합니다. 개인이 좀비 떼를 당해낼 수가 없어요. 그런데 "창궐"에서는 무술 좀 한다 싶은 사람은 다 자기 몸을 지킬뿐더러 일반인들도 지켜냅니다. 우리의 주인공 이청(현빈)은 아녀자 손을 붙잡고 구해가면서 "야귀"를 도륙합니다. 이러니 무슨 긴장감이 생기겠습니까?


'아.. 어차피 주인공한테는 손대 못 대는 "야귀"들인데 밤새 싸운들 무엇 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반 야귀"로 변한 장동건 씨는 무슨 조화인지 홀로 완전히 "야귀"화가 되지도 않고 이성도 유지하고 차분한 데다가 곰과 같은 기운이 치솟아 힘이 엄청 쎄 집니다. 이것도 전혀 공감도 설득도 안되는 설정이라 헛 웃음이 나는 부분입니다. 계속 '왜? 왜 갑자기 이 양반만????'하는 의문이 지워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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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물'로 인식되는 "야귀 때의 창궐"로 컨셉을 잡지 말던가, 사극이면 사극, 좀비 면 좀비, 액션이면 액션, 정치물이면 정치물 분명한 스탠스를 정했어야 하는데 좋은 건 다 집어넣었더니 똥국이 되는 이런 상황이 되어 안타까움에 한숨이 절로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연기자 자체 발광!


두 주연은 물론 조연들도 자체 발광하는 매력 넘치는 연기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연기자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캐릭터가 아주 입체적이라고 제적 노트에 쓰여있던데 제가 보기에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단편적인 인물들만 가득했습니다.


모든 인물들이 설득력이 없었어요. 공감도 안되고 삐거덕 거립니다.


왕을 봅시다. 김의성 씨가 연기한 왕은 무능하고 멍청한 인물입니다. 게다가 콤플렉스 가득한 모습도 보입니다. 어릴 적부터 나름의 고등 교육을 받았을 텐데 아무것도 못 배운 인물처럼 보입니다. 자질을 보고 왕을 뽑는 것은 아니니 그렇다고 칩시다. (연기를 워낙 잘하시니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주인공 이청은 청나라에 있다 보니 모든 것을 청나라 위주로 생각하는 설정입니다. 애초에 조선에 남고 싶지도 왕이 되고 싶지도 않고 그저 형의 유지 때문에 순순히 조선으로 오지만 곧 청나라로 돌아가겠다고 말합니다. 그 와중에 "야귀"를 만나도, 임금을 만나도 백성들을 만나도 자기는 왕이 되기 싫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계속 도와요.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그래도 "왕이 되기는 싫어요~~~"라는 소리를 계속합니다. 그런데 또 자기 한 몸 바쳐 "야귀"와 싸웁니다. 이런 이중적인 태도를 계속 취합니다. 게다가 "야귀" 때 속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아우 많어~~' 뭐 이런 여유를 부립니다. 뭔가 매력적인 캐릭터를 창조하기 위해 계산된 이런 연기가 진지한 장르물과 오락물 사이를 오락가락하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놓입니다.


나름의 빌런, 악역의 장동건 씨를 봅시다. 이 분은 당시 역성혁명이라는 무시무시한 도발을 감행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 심각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심각합니다. 이 영화에서 혼자만 계속 심각합니다.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하는 겉도는 악역입니다. 게다가 어이없이 허물어지고 마지막에는 폭주하게 됩니다. 강력한 힘을 설득력 없이 얻는데 어차피 이기지도 못할 싸움인 것을 관객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위협도 안되는 악역입니다. 안타깝습니다.


나머지 조연들은 그야말로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내 한 목숨이야 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죽어도 되니 내가 나서겠어요. 백성들이 중요하지요."라고 말합니다. 아무도 자기 목숨에 관심이 없습니다. 대의를 위해 초계와 같이 목숨을 버리고 의연히 희생합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이 희생적입니다. 이런 인물들만 있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정의 그 자체가 되었을 것만 같습니다. 영화적 판타지도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해야 공감이 되는 것입니다. 보통 현실에서는 악인이 잡히지 않고 악이 응징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영화 속에서는 응징을 한다거나 그 정도가 마지노선인 것입니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다 정의롭고 희생적이라면 누가 공감하겠습니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목숨에 위협이 될 때는 이기적으로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공감도 하고 이해도 하고 자위도 하는 것이 재난 영화의 핵심입니다. "야귀"라는 엄청난 재난에 아무도 이기적이지 않은 영화는 입체적이지도 문학적이지도 철학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극장이 아니라 집에서 편안히 누워 IPTV로 아무 기대 없이 즐기기에는 적합한 영화일지 몰라도 극장에 일부러 찾아가 보기에는 끝 맛이 쓴 영화가 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아쉬운 모습을 반복할지 모를 한국 장르 영화입니다. 아무쪼록 위축되지 말고 더 나은 영화가 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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