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서 가을 내음 나는 하루
자고 일어나니 창문으로 제법 바람이 들어왔다. 이 바람은…가을 냄새 나는 바람인데? 드디어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여름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바람이었다. 막상 여름이 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니 괜히 뭔가 아쉬웠지만 숨이 턱턱 막히는 찌는 듯한 더위보다 차가운 날씨를 좋아하는 나는 왠지 설레기 시작했다. 이번 여름이 유난히 너무 더워서 여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나는 이번 가을이 오고 있는 것이 유난히 기대된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노래도 바람에서 가을 냄새가 날 때 들어야 더 마음을 파고드는 감성이 느껴져서 좋다. 에어컨을 안 틀고 집에 있으면 숨이 턱턱 막히는 답답함 때문에 이번 여름은 에어컨이 있는 곳만 찾아다닌 것 같다. 이상하게 나는 옷도 가을, 겨울 옷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병 진단 받은 이후로 멀리 나가는 일도 드물어지고 아직도 병 치료의 소소한 후유증은 항상 같이 하고 있지만…이제는 뒤를 돌아보는 것도, 후회하는 것도 어느 정도 다 소용 없는 일이라는 것을 느낀 후라서 오히려 무념무상(?)의 상태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우선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라고. 지금 할 수 있는 일? 그레서 니는 글쓰기부터 시작했다. 병 진단 초기에는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종종 서점에 가서 사왔는데 갑자기 몸 상태가 안 좋아진 이후로 그렇게 다 읽지도 못하고 꽂아놓은 책이 벌써 여러 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몸 컨디션이 안 좋아진 이후로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 내 방에 마치 오랫동안 돌보지 못한 숲처럼 점점 우거지고 있다. 이제는 어디서부터 정리를 시작해야 될지도 몰라서 아무렇게나 쌓아둔정리할 것들이 마치 내게 “언제 정리할 거야?“라고 물어오는 듯하다.
정리를 자꾸 피하게 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정리하다 보면 내가 병 진단 받기 전의 평범한 일상 속의 추억들이 여기저기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었던 그 때의 기억들과 추억들이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듯이 한 번 건드리면 봇물 터지듯이 터져나와 내 마음을 괴롭힌다. 그래서 최대한 멀리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모른 척하는 사이 이제는 내 방 여기저기서 마음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계속 물어오는 듯하다. 이제는 정리를 재촉하는 듯한 어지럽게 널린 책들, 사진들, 일했을 때의 흔적들이 자꾸 나에게 묻는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