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카운트다운이 새겨진 기분
병 진단을 받고 난 뒤부터는 나는 마치 카운트다운 버튼이 눌려진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갑자기 내 인생에 시간 제한이 생긴 느낌이다. ‘평범하게사는 것이 제일 힘든 것이다’라는 말을 어디서 봤을 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제일 맞는 말이라는 걸 깨닫는다.
동네 밖에 잠깐 나갈 때, 웃고 떠들면서 커피를 마시러 나온 회사원들을 항상 보게 된다. 20~30대처럼 보이는 그들 속에서 같이 웃고 떠드는 그 나이의 내 모습이 보인다. 그들을 보면 저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던 내 모습이 자꾸 겹쳐 떠올라서 나를 괴롭힌다. 그래서 나는 점점 외출도 하기 싫어지고 종종 하던 SNS도 한동안 안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나는 내가 운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심지어 친가와 외가 둘 중에 어느 누구도 암에 걸린 사람도 없다. 유전력도 큰 영향이 있다던데 암에 걸린 사람은 우리 집에서 내가 처음이다. 처음에는 암 진단을 받고서 머리에 인식이 잘 안됐다. 아니, 심지어 지금까지도 나는 내가 암에 걸린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암 진단을 받고 누군가 내가 잘못해서 그 병에 걸린 게 아니고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병에 걸리고 제일 최악인 것은 끊임없이 내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뭐를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병에 걸렸다고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동안 잘못된 생활 습관이나 식습관이 생각나면서 결국 내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 점이 견딜 수 없이 힘들다.
어쩔 때는 너무 절망적이어서 그냥 길거리로 나가 소리지르고 울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럼 사람들은 미친 사람 취급하겠지. 감정 기복이 하루하루 너무 크다. 그리고 때때로 현실 자각 타임이 오는데 제일 세게 느껴졌던 순간은 작년 정말 더웠던 여름, 매일 병원 가서 방사선 치료를 받았는데, 부작용 때문에 정말 힘든 하루를 보낸 날 잠이 안와서 어슴프레 밝아오는 새벽에 창가에서 봤던 바깥의 고요한 풍경이었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고 온 세상이 무너지는 절망적인 기분인데 그거와 전혀 상관없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돌아가고 있는 세상이었다. 아침 일찍 평소와 다름없이 하나둘 켜지는 건물의 불빛들, 그냥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마치 나 하나가 없어져도 티가 나지도 않을 것 같은 세상, 나 하나가 없어져도 평소와 다름없이무심히 돌아가고 있는 세상, 이 현실을 마주하는 나는 앞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내야 할까.
언제든 갑자기 죽음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순간까지 하루하루 시간을 잘 쓰도록 노력할 것인가? 그렇게 죽기 전에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 반대로 가는거 같다. 막말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될 대로 되라‘ 라는 심정이었다. 죽음이 가깝게 느껴지니 나는 그 동안 못해 본 일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이 든다. 남들 다 하는 연애도 못해 보고 심지어 여행도 많이 못해봤다. 갑자기 생에 남아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혼란스럽다. 나는 아직도 정말 못해 본 일이 너무나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