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처럼 흐리고 비가 온 날씨
나는 주사실에 누워서 내 팔에 꽂아진 주사 바늘로 항암 치료약이 똑똑 떨어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항암 주사 맞을 때는 대부분 잠이 오는 경우가 많지만, 어제는 항암 치료약이 똑똑 떨어지는 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그것은 마치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인 것 같았다.
어제의 날씨는 종일 흐렸고, 비가 내렸다 그쳤다 반복하는 내가 싫어하는 날씨였다. 나는 정기적으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데 병원 가는 날에 비가 오면 기분이 더 우울해지는 것 같아서 이런 날씨를 정말 안 좋아한다. 심지어 어제는 치료를 받는 날이었는데 주사실에 갔더니 나를 제외하고 다 남자 분들이었는데 그런 적이 처음이었다.
이제는 병원을 너무 자주 와서 점점 병원과 집만 오가는 환자의 루틴(?)같이 변해가는 것 같이 느껴진다. 어제도 정말 그렇게 되기 싫은데 점점 친숙해지려고 하는 병원 건물을 들어서면서 생각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5년을 지나가지만, 사실 난 지금도, 이 순간까지도 나는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아직까지도 인정을 못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암 치료 받은 지 그렇게 오래됐으면서 왜 아직도 인지를 못하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처음에 암 진단을 받을 때도, 암에 걸렸다는 자체만으로도감당하기 어려운데 그 놈의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냥 의사 선생님의 말이 웅웅 떠도는 듯이,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내가 그 사실을 믿기 싫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에이, 설마 그렇겠어?’하는 생각이, 불행히도 내가 예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대로만 흘러가는 것을 감지하는 순간, 마치 내 생각이 자동으로 셧다운(shut down)되듯이, 더 이상의 생각을 차단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때로는, 내 인생에 “Reset” 버튼이 있으면 누르고 싶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내가 지우고 싶은 시간들만 삭제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예전에 봤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강물에 빠진 후 다시 물 밖으로 나오니 몇 천년 전으로 순간 이동이 되어 있었는데 나도 그렇게 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인생은 연속적이라는 것이다. 인생은 원하는 구간을 지우고 다시 그 구간만 녹음할 수 있는 테이프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계속 “암”이라는 말을 ‘깊이 던져두고 모른척 했던 말’로 만들어 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