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만 어려운 것, “사랑”
나는 암 진단을 받고 난 뒤 이제까지 내가 해왔던 모든 일들의 의미가 한순간에 다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첫 회사에서 퇴사하고 거의 2년 동안 재취업 준비하느라 고군분투했던 일, 지금 생각해 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스트레스받고 힘들었던 일들이 정말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나이에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나는 그동안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취직하려고 기를 썼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 나는 그동안 못해본 일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은데 이런 일이 벌어지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마른하늘에 갑자기 벼락이 떨어졌는데 그게 바로 내 머리 위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항암 치료받느라 정신없었던 시기가 좀 지나고 정신이 조금씩 차려지기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와닿지도 않았던 그 말의 의미를 난 이제야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이 병에 안 걸렸다면 자연스럽게 흘러갔을 일들에 다 제동이 걸리기 시작하면서 내 인생은 마치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특히 “사랑”, “연애”와 관련된 일은 갑자기 공사장에서 출입 금지 울타리를 치듯이 다 차단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그 애가 갑자기 연락을 해 왔을 때도, 나를 한번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이 전화를 했을 때도, 그때는 내가 진단받고 얼마 안 되어서 제일 위축되어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나는 아무 행동도 적극적으로 할 수 없었다.
내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이 그렇게 중요할까? 사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듯이 암 진단을 받고 보니 사실 바로 내일도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들이 중요한 것인데, 지금 바로 내 옆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할 수 있는 가족, 친구, 그리고 그 상대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가 이 순간,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이 시간들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예전에 한창 유행했던 ‘프리 허그’가 생각나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진심으로 서로를 껴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왠지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그런 감정이 지금 나한테는 필요한 것 같다.
그러니 당신도 지금,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얘기할 수 있고 서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옆에 있는 바로 그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소중한 것임을 느꼈으면 좋겠다. 죽음이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음을 깨닫게 되면, 바로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