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전진하는 길밖에 없다
미국 유학했던 시절에는 어학연수도 한번 안 했던 내가 모든 걸 영어로 대학 수업을 받는다는 것이 점점 너무 힘들어서 몇 번이나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10년도 더 지난 미국 유학 시절이 요즘 들어 유난히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생각해 보면, 오로지 학교 수업을 듣고 공부하는 데만 집중하면 됐던 그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내 몸 하나도 건사를 못하는 상황인데 그때는 어떻게 미국에 혼자 가서 그 모든 일을 혼자 다 했을까. 지금의 내가 미국 유학 시절 때의 나에게 신기한 점이다.
마치 고3시절 담임선생님이 말했었던, “너희가 나중에 선생님 나이가 되면, 이때가 제일 좋았다고 생각이 들 거야.”라는 말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때는 수능 준비하느라 너무 힘들어서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니 그 말이 자연스레 이해가 되고 지나간 모든 시간들이 그리워진다. 왜 항상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일까.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때가 그립고 그때가 제일 좋았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계속하고 있는 지금, 지나간 시간들을 계속 돌아보면, 나 자신만 힘들어질 뿐이라는 것을 요즘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아니, 하루하루 버틴다는 표현이 맞는 내 일상에서, 점점 깨닫고 있다. 지금의 내 인생에서는, 앞으로의 전진 말고는 다른 선택의 길이 없다. 아무리 힘들고 외롭더라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전진“하느냐 아니면, 제자리에 남아서 계속 힘들고 괴로워하느냐, 두 가지 길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는 오로지 다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그 무겁고 본질적인 사실이, 내 마음속 한 구석에 계속 어둡게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