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기회는 없을 수도 있어
나이가 30대일 때까지만 해도 가끔 들어오는 그 소개팅이라는 걸 했었다. 매번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별로 결혼, 연애에 있어서 급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인연은 내가 억지로 만든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인위적으로 만나는 것은 서로의 인연이 맞는 일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 최소한 이렇게 안일하게 있으면 안 된다고 무엇이라도 노력을 해야 했다. 이렇게 갑자기 암 진단을 받을 줄 알았다면. 내가 30대일 때만 해도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전혀 이런 돌발 상황이 일어날 줄 몰랐기 때문에, 아니, 아예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도 내 마음속엔 어떤 일이든지 지금 못하면 천천히 하면 된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른들이 “다 때가 있다”라고 하는 이유를 나는 내 나이가 40대가 돼서야, 그것도 한순간에 암에 걸린 환자의 입장이 돼서야 깨달았다. 그 “때”를 놓치면 그만큼 기회가 사라진다는 것을, 무슨 일을 하는 데 정해진 나이는 없어도 인생에 있어서 큰 일들, 결혼이나 육아 같은 일들은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그때에 해야 인생이 조금은 덜 힘들어진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지금의 내 인생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40대 여자, 그것도 나이만 먹은 미혼인 여자, 그것보다 더 최악인 것은, 다른 병도 아니고 암에 걸린 여자. 지금까지 결혼도 안 하고 부모님이랑 같이 살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 싸우는 일도 많아지고, 안 그래도 나의 부모님은 늦게 결혼하셔서 내 친구들 부모님들보다 나이가 많으시다. 이러다 보니, 우리 집은 웃을 일도 별로 없어지고, 부모님도 아마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이 손주 자랑을 하거나 사위 자랑을 할 때가 많을 것이다. 의도치 않은 불효를 배로 더 하고 있는 것 같은 이 상황 앞에서, 사실 나는 어떻게 나의 남은 인생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나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는 요즘 큰 고민이 생겼는데, 나중에 내가 혼자 남는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이다. 나는 나 자신이 생각해 봤을 때도 혼자 살아나갈 수 있는 강한 성격의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이지만, 내가 우리 엄마의 성격을 닮았다면 혼자도 잘 살아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 엄마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엄마는 부쩍 “너는 나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라는 말을 많이 하시는데, 사실 그 말에 반박할 말이 없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정말 혼자 어떻게 살지’라는 걱정이 나 자신조차도 드는데, 이 걱정이 들 때마다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내가 만약 암에 안 걸리고 건강했다면 얘기가 다를지 모르지만, 암환자가 된 지금 이 상황에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너무 답답하고 우울해져서, 생각을 되도록 안 하려고 한다. 하지만, 올해도 벌써 연말이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시간은 정말 빠르다. 결국에는 내 걱정이 현실로 빠르게 다가오는 느낌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걱정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끝이 없는 미로에 갇힌 듯한 느낌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그 “때”마다 내 인생에 있어서 큰 일들을 몇 가지는 이뤄냈어야 했다. 그 “때”가 점점 지나가도록 나는 너무 다음의 많은 기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언젠가는 하게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 ”때“를 놓침으로써 결국 내 인생에 변수인 암 진단을 받았고, 이 변수로 인해, 내 잔잔하고 평범했던 인생에, 마치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지면 생겨나는 파문을 시작점으로 나비 효과처럼, 내 인생에 마치 무시무시한 큰 파도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