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죽음”이 빨리 내 옆에 온 것도 이유가 있을까
나는 무슨 일이든지 이유가 있어서 결과가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나는 특정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아주 먼 나중에 와도 되는데 “죽음”이라는 것이 친구 하자며 벌써 내 옆에 가까이 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히 하늘도 내가 이 생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생을 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늘은 아직 데려갈 때가 아니면, 데려가지 않는다던데, 그럼 나는 아직 이 생에서 내가 하고 가야 할 일이 남아 있는 것일까.
그럼 내가 암에 걸린 것도 이유가 있어서일까. 그럼 하늘은 대체 내가 암에 걸려서 무엇을 깨닫고, 이 생에서 어떤 일을 다 끝내고 오라는 것일까. 별로 달갑지 않은 “죽음”을 가까이 두게 한 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일까. 암 진단을 받고 초기에는 사람들이 위로의 말을 건넬 때 그냥 교통사고 당했다고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고를 당한 게 왜 하필이면 내가 돼야 하지?‘라는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항암 치료가 내 예상과는 다르게 기약 없이 길어지면서, 요즘은 하늘이 나를 암에 걸리게 만든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일은 이유가 있어야 결과가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내 일이나 사랑, 결혼, 그 모두는 아니더라도 내가 꿈꿨던 미래의 일들의 대부분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했던 30대 중반 나이에, 나는 갑자기, 아직은 내 주변에 보이지 않아야 할 “죽음”이라는 것이 내 옆에 이미 다가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왜?‘라는 물음표가 내 머릿속을 아직도 가득 채우고 있다. 어떨 때는 ‘내가 전생에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이렇게 된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 나는 그동안 누구한테 나쁘게 한 적도 없는데 왜?‘라는 생각에 결국은 또 ‘왜 하필이면 나지?’라는 물음표로, 다시 도돌이표 같은 의문으로 돌아온다.
이 생에서 내가 하고 가야 할 일, 그것을 찾는 것이, 지금 내가 이 생을 살고 있는 이유가 될 것 같다. 하지만 그 이유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이 생에서 내가 다 하고 가야 할 일이 무엇인지 찾는 것은, 온전히 나의 일이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문득 이 글귀가 생각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말은 결국 나 스스로가 이겨내야 하는, 오로지 “나 혼자” 짊어져야만 하는 것이 있다는 의미이다. “무소의 뿔”처럼 흔들림 없이 마음의 중심을 지키고 나아가다 보면, 하늘이 내게 “죽음”이라는 것을 친구처럼 가까이 두게 만든 이유를 알 수 있을까. 그럼 내 평범했던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고, 가만히 있다가도 예상치 못한 눈물을 툭 떨어지게 만드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왜 하늘이 하필이면 내게 주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까.
나는 내 남아있는 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절실히 찾고 싶다. 그 이유를 찾으려면, ’ 하늘이 왜 이렇게 빨리 나에게 “죽음”이라는 것을 가까이 두게 만들었을까 ‘라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또 하게 된다.
모든 일이 생기는 데는 다 그 이유가 있어서라고 믿기 때문에, 전혀 달갑지 않은, “죽음”이 언제나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내가 이렇게 빨리 깨달아야 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깨달아야 하는 순간이 왜 하필이면 지금이냐는 것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지금쯤이면, 다는 아니더라도 몇 개 정도는 성과를 이뤄내고 싶었던 일들이, 단 하나도 이루지 못한 채로, 나는 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특별히 운이 나쁘다는 생각도 안 해봤는데, 아니, 오히려 운이 좋았던 경우가 많이 있었던 나로서는, 왜 암에 걸릴 확률 안에 내가 들어가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내 인생에 남아있는 시간들을 살아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면, 지금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허무함과 절망감이 좀 덜어질까. 나는 어쩌면, 그 이유를 언젠가는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