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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ia Oct 19. 2024

무엇에든 취하라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나지 않는 꿈처럼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좀 지나고 돌이켜보면, 나는 지금까지 불쑥 일어나는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들을 다 어떻게 견뎌냈는지 모르겠다. 암세포가 머리에도 전이되었다는 것을 주치의 선생님한테 들은 그날의 밤은 아직도 나에게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내 인생에 처음 해 보는, 아니, 병원을 들락날락하는 상황이 되고부터는 병원에서 하는 일들이 다 처음 해보는 거긴 하지만, 머리에 하는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병원에 가서 방사선 치료를 해야 했기 때문에 병원과 가까운 숙소에서 치료받는 동안만 엄마와 함께 지냈다. 이 상황이 닥치기 전에는 그냥 꾸준히 항암 치료를 받으면 언젠가는 많이 나아질 거라는 내 생각은 자만이었나 보다. 그 틈을 못 참고 암세포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내 몸에서 더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뇌까지 전이되었다는 것을 들은 그날도, 내가 처음으로 암 진단을 받았던 그때처럼, 이 모든 일이 꿈인 것처럼 잘 인지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그날도 방사선 치료 때문에 엄마랑 병원을 다녀오고 내색은 안 했지만 많이 힘들었던 몸과 마음을 누인 늦은 밤, 잠이 잘 오지 않아 창 밖 거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내 눈에 의도치 않게 갑자기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동시에 갑자기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길래 이런 벌을 받는 거지?’ 그러면서 그동안 나의 모든 잘못했던 행동들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특히 엄마와 같이 병원에서 힘든 순간들을 겪어서 그런지, 엄마에게 잘못했던 행동들이 하나둘씩 생각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래서 이렇게 벌을 받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만약 죽음이 온다면, 엄마보다는 나에게 먼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미 시작되어 버린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슴프레 동이 터오는 하늘을 볼 때까지 나를 잠 못 들게 했다.  


내가 예전에 공감이 되는 글을 써둔 게 있는데 유독 그 밤에 많이 생각나는 글이었기 때문에 소개하려 한다.




취하라.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게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당신의 어깨를 무너지게 하여

당신을 땅 쪽으로 꼬부라지게 하는

가증스러운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당신은 쉴새없이 취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취한다?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어느 것이든 당신 마음대로다.

그러나 어쨌든 취해라.

그리고 때때로 궁궐의 계단 위에서

도랑가의 초록색 풀 위에서

혹은 당신 방의 음울한 고독 가운데서

당신은 깨어나게 되고

취기가 감소되거나 사라져 버리거든

물어보아라.

바람이든 물결이든 별이든 새든 시계든

지나가는 모든 것

슬퍼하는 모든 것

달려가는 모든 것

노래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게 지금 몇 시인가를.

그러면 바람도 물결도

별도 새도 시계도

당신에게

대답할 것이다.


이제 취할 시간이다.




이 글처럼 무엇에든 취해서, 나를 무너지게 하는 가증스러운 죽음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쉴새없이 취해 있어야 한다는 이 글에 정말 공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나에게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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